재계 서열 12위, 외국인 지분이 40%가 넘는 KT그룹이 여전히 경영 공백 상태다. 민간 기업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ICT 산업 생태계의 정점에 있는 회사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지난 2002년 민영화 이후 20여 년이 지났지만, ‘CEO 리스크’란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했다. 우스갯소리로 대선 주기에 맞춰 5년 임기의 대표이사가 필요한 회사란 이야기까지 나온다.
다행히 비상경영위원회 체제에서 새로운 이사회가 정비되고, 두 번이나 무산된 차기 대표이사 선임 절차가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다만, 수개월의 CEO 부재 상황을 벗어나게 된 점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차기 대표의 리더십이 가장 중요한 때다.
KT는 지난해 연말 차기 대표 선임이 시작된 이후 상무 이상의 임원인사가 중단됐다. 전년도 인사 규모를 고려하면 그룹 내에서 40명의 인사 발령이 이뤄지지 않았고, 그에 따른 조직개편도 없었다. 약 50개 계열사에 대한 인사 역시 올 스톱 상태다. 기존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조직을 재정비하는 것이 매우 시급한 과제다.
그야말로 국가의 미래 ICT 산업 발전의 주춧돌 역할을 해야 할 기업이 표류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의 수장이 없다 보니 올해 경영계획은 물론 장기적인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을 세우는 일도 어렵게 됐다.
정치적 외풍에 낙하산 CEO 우려까지 겹치면서 기업가치 10조 원에 달했던 회사는 현재 8조 원에도 못 미치고 있다.
결국 KT의 새 CEO는 이런 묵은 숙제를 가장 빠르게 해결해야 할 인물이 맡아야 한다.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ICT 전문가는 많이 있지만 KT CEO에 어울리는 자격은 따로 있다.
무엇보다 KT 조직과 회사의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야만 한다. 주력 사업인 통신과 통신 인프라를 통한 B2B 사업 연계를 비롯해 조직 문화와 회사가 수년 동안 고민해온 과제를 체득한 인물이어야 회사가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임직원들의 신임과 사기도 매우 중요하다. 리더십의 부재로 무너진 조직의 안정화에 그치지 않고, 직원들의 신뢰 속에서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 임직원의 공감을 얻지 못한 사업 혁신은 회사를 또 빈 수레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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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선임 과정에서 주주 추천으로 사내 AI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KT융합기술원의 배순민 상무가 깜짝 후보에 오른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누구나 인터넷을 쓸 수 있게 한 정보화 혁명, 스마트폰 보급에 따른 모바일 혁명에 이어, AI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전환과 기업간거래 시장의 발굴이 중요한 시기란 의미다.
경영공백을 털어낼 리더십과 함께 AI 시대에 혁신을 끌어낼 인물이 누구인지, 심사위원들의 판단에 KT와 대한민국의 IT미래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