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 2239억원. 올해 우리나라 공공분야 정보화(SW) 사업 규모다. 과기정통부는 매년 법에 따라 국가기관(중앙 정부 등),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 약 2200여 곳의 정보화(SW구축) 사업 규모를 취합해 연초에 확정치를 발표한다. 올해 그 규모가 6조2239억원에 달했다. 작년(6조592억원)보다 1700억원 정도 늘었다. 이 규모는 2020년 5조원대를 처음으로 돌파한데 이어 2022년에는 6조원대를 넘었다.
올해 6조2239억원의 공공 분야 SW구축 사업 중 흔히 SI(시스템통합)라 불리는 신규 정보화 사업 규모는 1조3569억원이다. 전체 공공정보화 사업의 약 30% 수준이다. 사업 개발 건수는 총 1289건이다. 공공 분야 SI사업 1개당 평균 10억5300만원 꼴이 드는 셈이다.
매년 1조 넘게 투입하는 공공 분야 정보시스템에 오작동 사례가 불거지면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차세대 사회보장정보 시스템에 이어 올들어 우정사업본부 시스템과 교육부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나이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사회문제화 했다.
반복하는 공공분야의 이 같은 '오류'는 국민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디지털 시대를 여는 핵심인 SW에 대한 국민 호감도도 낮춘다. 앞으로도 이런 공공분야 대형 SW 구축 사업이 줄지어 오픈할 예정이다. 국민연금공단의 차세대 4대사회보험 정보연계시스템이 오는 11월 개통을 목표로 개발 중인데 이는 지난 2003년부터 운영하던 시스템을 교체, 온라인 포털에서만 가능한 증명서 발급과 일부 민원신고를 모바일에서도 가능하게 하는 한편 간편 인증도 5종에서 11종으로 늘리는 사업이다. 조달청의 차세대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나라장터) 구축사업도 내년초 완료 예정이다. 노후화한 나라장터 시스템을 20년만에 재구축하는 것으로, 26개 공공기관의 자체조달시스템을 통합한다.
행정안전부(행안부)의 차세대 지방세입정보시스템도 연내 개통 예정으로, 지난 15년간 운영해온 시스템을 전면 재구축중이다. 규모는 약 1천억원으로 지능형 세무행정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다. 이미 예정된 개통일을 한차례 늦췄다. 이 외에 1300억 원 규모 대법원 차세대 형사사법정보시스템 구축 사업도 발주, 내년 11월 오픈을 앞두고 있다.
대규모 공공 분야 SW구축 사업에 '사고'가 잇달으자 과기정통부는 대기업 참여 제한을 완화하는 방안을 지난달말 내놓았다. 즉, 1000억원 이상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에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3년 만들어진 법때문에 현재 대기업은 공공분야 SW 구축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 단, 신기술 적용이나 보안 문제 같은 예외 사항의 경우에만 참여할 수 있다.
이 같은 완화 방안이 실현하려면 법(소프트웨어진흥법)을 개정해야 하는데다 예외 사항으로 인정받아 이미 많은 공공 분야 SW 구축 사업에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어 실효성에 물음표가 던져졌다. 이 조치만으로는 대형 공공 SW사업의 오작동 문제를 근본적으로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공 분야의 SW구축에 문제가 잇달으자 이전과 다른 새로운 전자정부를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디플정위)도 나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오랫동안 SI 사업을 해온 산업계는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대가(代價) 산정과 함께 SW품질 문제를 먼저 바로 잡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SI기업 대표 A 씨는 "규모가 크든 작든 SW구축 사업의 1차 관문은 SW품질이다. 중견과 중소기업의 낮은 소프트웨어 품질은 공공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여기에 대기업들의 사업 역량도 이전같지 않게 하락했다"면서 "공공 SW 구축 사업에 품질이 검증된 기업들만 들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주목받는 대형 IT서비스의 경우 대부분 SW품질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면서 "SW품질에 문제가 있음을 알더라도 지체보상금 등의 문제가 있어 일단 개통을 하고 사후 고치거나 수정을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품질 문제를 포함해 공공SW 사업전반에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동차를 '달리는 SW'라고 부르는데서 알 수 있듯이 SW는 디바이스와 시스템을 운영하는 핵심 요체다. 지난 4월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주목할만한 발표를 했다. 화성에 가있는 소형헬리콥터 '인제뉴어티'가 50번째 비행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것이다. '인젠뉴어티'는 무게 1.8kg로 인류 최초로 지구 밖 행성에서 동력 비행에 성공했는데, 특히 밤 온도가 영하 86도까지 내려가는 화성의 혹독한 환경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NASA는 '인젠뉴어티' 성공에 내장 소프트웨어(SW)와 전자장치가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인제뉴어티' 뿐만이 아니다. 자동차, 조선, 철도 등 모든 디바이스(기기)들이 빠르게 전장화하면서 디바이스의 성능을 좌우하는 SW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관리하는 자동차리콜센터에 따르면 자동차의 경우 10년 전만해도 10건의 결함 중 SW 문제가 1건 이하였는데 최근 4~5건으로 늘었다. 자동차에서 SW역할이 더 커진 것이다. 자동차 가격에서 SW와 전자장치가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커지고 있다. 자동차 같은 디바이스 뿐 아니라 전력, 에너지, 원자력 등 기간인프라 시설 운영에도 SW가 핵심 역할을 한다.
최근 서비스 개통 지연으로 논란이 된 공공 분야 SW구축사업도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면 기저에 SW품질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이 같은 SW품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가 SP(소프트웨어 프로세스)인증이라고 품질문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SP인증은 SW기업 과 개발조직의 SW프로세스 품질 역량 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당국이 만든 것으로, 앞서 과기정통부는 지난 2006년 12월 SW 프로세스 품질인증 모델을 개발했고 이어 2009년 1월 당시 소프트웨어산업진흥원(KIPA, 현재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을 인증기관으로 지정했다. 2020년 12월 시행한 소프트웨어진흥법에서는 SP인증 보유시 가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10만개 넘게 추정되는 국내SW기업 중 SP인증을 받은 곳은 소수다. 지난 14년간(2009년~2022년)간 302건, 221개 기업이 인증을 받았다. 연간 20곳이 안된다. 인증을 받는데 성공하는 비율이 73.2%인데, 작년에는 24개 기업이 심사를 받아 이중 16개 기업이 인증을 받았다.
SP인증 신청과 획득이 저조한 가장 큰 이유는 '당근'이 적기 때문이다. 즉 공공사업 참여시 우대점을 받는 GS인증과 같은 '확실한 우대 장치'가 없다. 이창근 소프트웨어엔지니어링진흥협회 부회장은 "현행법에 SP인증을 받으면 우대할 수 있다로만 돼 있다. 필수 사항이 아니다"면서 "이정도 당근으로는 SW기업이 SP인증을 받는데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SP인증은 한번 받으면 3년간 유효하다. 비용은 1천만원 정도가 드는데 이중 인증을 받으면 절반 정도를 돌려준다. 기간은 약 6개월 정도 소요된다.
당국에 따르면, SP인증을 받은 기업은 인증 전보다 개발생산성 향상, 프로젝트 비용 준수, 결함제거율 향상, 품질 비용 및 품질실패 비용 감소 등의 효과를 거뒀다. A대학 교수는 "인증은 늘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돈과 시간을 할당해야해 일종의 규제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고품질의 SW개발을 위해서는 필수요소"라며 "반복되는 공공분야의 SW구축 사업이 성공하려면 그 첫단계인 SW품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며 현재 이를 실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SP인증 확산에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