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내 양자정보연구단이 있는 건물 1층에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양자 소자를 직접 만들고 검증할 수 있는 양자 팹을 구축하는 작업이다. 서울과 수원에 흩어져 있던 연구 인력을 한곳으로 모으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양자 과학 연구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건물 다른 편에 있는 연구실에선 조명을 어둡게 낮추고 광자 관련 측정을 하거나, 칩을 설계하는 연구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한상욱 KIST 양자정보연구단장은 최근 서울 KIST 본원에서 기자와 만나 "우리나라가 양자 분야에서 선도 국가를 빠르게 추격하고, 나아가 연구를 주도할 분야를 만들 방법은 반도체 공정 기술을 양자와 결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강점을 지닌 반도체 공정 기술을 적용, 양자 기술을 실제 기능으로 구현할 소자를 만드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단장은 "현재 주요 국가들이 양자 기술을 국가적 전략 기술로 간주하고 있고, 수출 통제를 실행할 가능성도 있다"라며 "양자컴퓨터 냉각 장치 기술을 가진 핀란드처럼 다른 나라가 무시 못할 특출난 기술을 가져야 하는데, 한국에겐 그것이 반도체 소자 기술"이라고 말했다.
■ 다이아몬드 NV 기반 기술 강점, "큐비트 수 경쟁보단 오류정정 주력"
KIST는 특히 다이아몬드 질소공극(NV) 방식 양자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양자컴퓨터와 양자 통신, 양자 센서 등 양자과학기술 주요 분야 원천 기술 개발과 산업화 지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다이아몬드 NV는 다이아몬드 내부 원자 구조의 결함을 이용해 양자 큐비트를 제어하는 방식이다. 다이아몬드를 이루는 촘촘한 탄소 원자 사이에 간혹 질소 원자가 하나 들어가 있고, 그 옆에 빈 공간이 있는 NV 센터가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전자를 큐비트로 사용할 수 있다.
초전도나 이온덫 방식 등 다른 양자 컴퓨터 기술이 민감한 큐비트를 안정적 환경에서 조작하기 위해 초저온이나 극진공 상태에서 사용해야 하는 반면, 다이아몬드 NV 센터 방식은 주변의 단단한 탄소 원자 덕분에 상온 환경에서도 쓸 수 있다. 초전도 방식 양자 컴퓨터에 필요한 거대한 냉각 장치 등이 없어도 된다.
한 단장은 "KIST는 다이아몬드 소재 연구를 오래 해 왔고, 우리나라는 양자 광학이 강하다"라며 "기술의 확대 적용 가능성이나 저변 인력 등을 따졌을 때 다이아몬드 NV 방식 기술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큐비트 수를 늘이는 경쟁보다는 연산 오류를 줄이는 오류 정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라며 "이를 통해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잡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 양자 분야 원천기술 + 산업화 지원
KIST는 다이아몬드 NV 방식 양자 플랫폼 기술을 반도체 공정 기술과 결합해 양자 관련 주요 활용 분야에 적용한다.
양자 컴퓨터 분야에서는 양자 연산의 유용성을 보일 수 있는 소재혁신양자시뮬레이터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한양대와 현대자동차와 함께 수소 생산과 저장, 활용에 필요한 신소재 개발을 위한 양자 시뮬레이터를 2027년까지 개발한다.
양자 통신 분야에선 나노포토닉스 기술을 활용, 양자 암호통신 장비의 가격을 낮추고 관련 시스템을 칩에 구현해 통신 산업계가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양자 통신을 위한 양자 중계기를 개발한다는 목표다.
한 단장은 "양자 통신에 쓰이는 광자(빛 알갱이)는 에너지가 매우 작아 광섬유 안에서 쉽게 사라지는 문제가 있다"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들의 양자 상태를 저장하고 증폭하는 중계기를 다이아몬드 NV 기술로 구현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센서 분야에선 광자를 이용한 광학 센서와 NV 센터를 활용한 자기 센서 등을 연구한다. 한 단장은 "2개의 물리량을 동시다발적으로 센싱하는 분산형 양자 센서의 원천 기술을 확보하거나, 세포 단위로 MRI를 찍는 나노 MRI 개발에 활용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 개방형 양자 연구 중심지로
KIST는 홍릉 본원에 구축 중인 다이아몬드 NV 기반 양자 팹 등의 인프라를 중심으로 외부 기업 및 연구 기관과 협력도 강화한다. KIST를 중심으로 개방형 양자 연구가 이뤄지는 셈이다. 양자 분야를 연구하는 대학 교수 10여명을 겸직연구원으로 초빙했고, KT나 네이버 클라우드, SDT, 현대자동차 등에서도 연구원들이 방문한다.
그는 "이름만 걸어 놓는 협력 연구가 아니라 실제로 일주일에 한번 방문하며 한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양자 통신 시스템을 반도체 공정 기술을 활용해 칩 형태로 만들거나, 국내 스타트업이 현장에 양자 장비를 적용하며 노하우를 쌓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 방대한 데이터에 대한 AI 기계학습을 양자 컴퓨팅으로 실시하는 방안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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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장은 "현재 양자 기술은 지속가능한 기술로 정착하느냐 한때의 붐으로 사라지느냐 기로에 섰다"라며 "지속적 발전을 위한 선순환 구조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좋은 연구 성과가 나오고, 이것이 산업화로 이어져 양자 기술로 인한 변화를 사회가 느껴야 한다. 또 이런 변화를 보고 인재들이 양자 분야로 들어와야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다.
그는 "양자 분야에서 과거 안 될 것으로 보았던 일들이 이젠 되고 있어, 양자 산업 혁신이 가능해질 것 같다"라며 "양자의 근원적 원리를 연구할 과학자와 양자 기술을 현실에 접목할 엔지니어가 모두 많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