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의 한국 반도체 인력 빼가기 행태가 점차 교묘해지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견제를 의식해 제3국에 근무지를 마련하는 회유책까지 제시하거나, 개발 프로젝트 성공 시 일반 직장인의 연봉에 수십 배에 이르는 보상금 지급을 약속하는 사례까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국내 반도체 인력을 흡수하기 위해 갖가지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
국내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 A씨는 올해 중국 주요 통신업체로부터 이직 제의를 받았다. 해당 업체는 자회사를 통해 5G 산업에 적용하기 위한 RF(무선통신)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A씨는 "해당 업체가 제시한 내용 중 가장 눈에 띈 부분은 근무지"라며 "미중 갈등의 여파가 직접적으로 미치지 않는 해외의 제3국, 중립국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조건은 최근 미국의 대중(對中) 수출 규제에 대한 압박 수위가 연일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현재 미국은 중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 및 제조능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를 연일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자국 기업이 중국 기업에 14나노미터(nm) 이하 비메모리 등 첨단 반도체 제조용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한 바 있다. 동시에 미국인이나 영주권자가 중국 기업의 반도체 연구개발에 관여하는 것에도 제한을 뒀다.
이에 일부 중국 기업들은 미중 갈등의 여파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 인근 국가에 법인을 설립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지난 2020년초부터 2021년 말까지 싱가포르에 거점을 둔 중국계 기업은 400개에서 700개로 증가했으며, 지난해 말까지 1천500개사로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A씨는 "중국 기업이 미국의 전략물자에 포함된 첨단 반도체 분야를 개발하는 것이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며 "때문에 미중 갈등과의 연관성이 적은 국가에 법인을 세우고 한국 엔지니어를 유치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 엔지니어를 영입하기 위한 보상 조건도 파격적인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 관계자 B씨는 "중국 반도체 기업이 한국에 법인을 세우고 인력을 채용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포착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단순히 연봉을 많이 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장비 개발에 대한 프로젝트 성공 시 40억~50억원의 별도 보수를 주는 계약을 내거는 사례까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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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중국 기업의 한국 반도체 인력 확보 의지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은 쉽지 않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해외 기업의 이직 제의 자체가 불법의 영역은 아니기 때문에, 인력 유출을 무작정 막으려고만 하는 것도 이율배반적일 수 있다"며 "국내 반도체 핵심 인력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인력 유출이 향후 기술 유출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각별한 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