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고지서에 KBS·EBS 수신료 빠진다...후폭풍 불가피

방통위, 시행령 개정안 의결...정치적 갈등에 현장 혼란 가시화

방송/통신입력 :2023/07/05 15:39    수정: 2023/07/06 08:51

지난 1994년부터 전기요금에 통합 징수된 TV수신료가 별도로 고지하고 징수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방송법 시행령에 따라 전기요금에 통합 징수하던 것을 분리해야 한다는 대통령실의 권고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가 관련 대통령령을 개정한 데 따른 것이다.

5일 방통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TV수신료를 징수 수탁 사업자의 고유 업무와 결합해 고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시행령 개정안은 법제처 심사 이후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친 뒤 공포 및 시행을 앞두게 됐다.

하지만 전기요금과 TV수신료를 별도 고지 및 징수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행정절차만 빠르게 움직였고, KBS와 징수 수탁 사업자인 한국전력의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갈등 앞선 수신료 징수방식 변경

이날 오전 전체회의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정필모, 이정문, 고민정, 민형배 의원은 정부과천청사를 직접 찾아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에 항의했다. 이미 한차례 항의 방문에 이어 수신료 관련 시행령 개정 의결 날에 재차 경고와 항의의 뜻을 전달한 것이다.

조승래 의원은 이 자리에서 “수신료 징수방식이 바뀌더라도 국민 편익이 오르는 게 아니라 엄청난 혼란이 있을 것”이라며 “혼란이 불 보듯이 뻔한데 졸속, 폭력으로 진행하는 방통위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은 또 “국민부담을 줄이려면 (수신료 분리징수가 아니라) KBS 수신료 폐지 법안을 내시라”고 날을 세웠다.

전체회의 과정에서도 방통위원들의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전체회의 이전부터 문재인 정부의 여당 추천을 받은 김현 위원은 회의 심의를 위한 자료도 받지 못했고, 회의 일정도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있다며 불만을 표했다.

김현 위원은 회의 과정에서도 안건 보고를 두고 사무처가 ▲대통령실의 방통위 대상 권고사항에 포함된 공영방송 공적책임 이행 방안을 누락하고 ▲향후 일정에서 분리징수 시행령이 공포된 이후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대책이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또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단축 근거와 국무조정실과 비규제 대상으로 꼽은 점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비판했다.

김현 위원은 특히 “2008년 출범 이후 방통위는 (국회의 TV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에) 수용이 곤란하고 수신료의 입법 취지를 고려해 현행을 유지하며 헌법재판소가 조세나 요금이 아닌 특별부담금으로 판시한 예를 들었다”며 “방통위의 입장이 왜 변경됐는지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 위원은 결국 3인 체제의 방통위가 중요한 사안을 의결하는 것 자체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며 “불법한 행위 현장에 있을 수 없다. 의결하는데 반대한다”면서 퇴장했다.

김현 위원은 또 회의 종료 이후 기자실을 찾아 “오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의 방통위원 2명의 의결은 법률 위반”이라며 “공영방송의 재원 문제를 졸속처리하는 것은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與 “KBS, 스스로 고민할 문제”

김현 위원이 퇴장한 이후 김효재 직무대행과 이상인 위원만 배석한 가운데 진행된 회의에서 수신료 분리징수 건을 2인 찬성으로 의결했다. 사무처는 재적인원 3인의 과반수 찬성이라고 판단했다. 

회의 진행을 맡은 김효재 직무대행은 이례적으로 긴 발언을 이어나갔다.

김효재 대행은 “사실 KBS 수신료는 편의점 도시락 하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며 “문제는 액수가 아니라 오늘의 KBS는 수신료를 달라고 국민에 말할 자격이 있는지, 염치는 있는지 국민이 묻고 있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방만한 경영을 일삼으며 국민 세금과 다름없는 수신료로 고품격 콘텐츠 제작 대신 직원 월급으로 탕진한 것은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며,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문제인데 그런데도 한번도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KBS가 수신료를 얼마나 알뜰하게 아니면 헤프게 썼는지 물어볼 권리가 있고, 분리징수는 단초가 될 것”이라며 “KBS는 스스로 냉정하게 돌아보고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해법을 찾아 다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길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상인 상임위원 역시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수신료 폐지가 아니라 분리징수인데, 분리징수만으로 경영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은 근거없는 주장”이라며 “KBS는 이를 통해 경영효율화에 더욱 노력할 수 있고 체질 개선에 앞장설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또 “국민신뢰를 회복한다면 공영방송의 재원이 되는 수신료는 국민이 기꺼이 납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행정절차 속도전...실제 시행까지 진통 커질 듯

대통령실의 의견수렴과 주무부처의 이행권고로 이어진 TV수신료 분리징수는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다. 이달 내 법제처 심사와 차관회의, 국무회의 절차를 모두 밟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KBS는 이에 대해 폭넓은 사회적 논의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KBS는 방통위 의결 직후 입장문을 내고 “대통령실 권고안의 근거가 된 온라인 투표 결과의 정당성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방통위는 공영방송의 존폐를 좌우할 수 있는 시행령 개정안을 행정절차법상 일반적인 입법예고 기간 40일의 4분의 1에 불과한 10일의 예고만으로 통과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사자인 KBS의 의견진술 요청은 이유없이 거부됐고, 징수비용 급증과 현장의 혼란을 우려하는 한전의 의견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영방송 KBS라는 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 “다만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과실은 국민 모두에게 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숙고와 토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KBS의 요구에도 당장 행정적인 절차는 더욱 속도를 내면서 이달 대에 분리징수에 대한 대통령령이 공포될 전망이다. 실제 시행까지 유예기간 없이 급작스런 징수방식 변경에 따라 기존 징수 수탁 관계 협의 과정에 따라 실제 분리징수까지는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당장 별도 징수를 위해 시청가구를 등록하고 고지하는 절차까지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특히 TV수신료 분리징수를 수신료 폐지나 선택적으로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국민 혼란이 문제가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KBS가 한국전력에 수신료를 위탁 징수한 뒤 일정 비율을 배분받는 EBS 입장에서도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공영방송인 EBS는 KBS 대비 운영 재원에서 수신료 비중이 훨씬 낮은 편이다.

제한된 수신료와 국내 방송 광고 시장의 규모를 고려할 때 KBS의 수신료 수익 감소는 다른 유료방송 시장으로 불똥이 튈 것이란 전망도 우세하다. 이미 글로벌 OTT의 공세로 시장 환경과 생태계가 급변한 가운데 더욱 큰 변수가 발생해 국내 미디어 시장의 예측 불가능성이 매우 커졌다는 것이다. 이는 총리실 산하의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에서 심각하게 고민할 사안이 됐다는 게 산업계와 학계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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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 해석에 대한 문제도 남았다. KBS는 지난 달 법률로 정한 사항을 시행령으로 제한 하는 것은 헌법 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시행령 개정 절차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냈다.

또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현업 5단체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 절차 중단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4일 헌재에 제출했다. 이들의 의견은 수신료 분리고지를 위한 시행령 개정의 절차적 하자, 방송광고 시장의 혼란 야기, 수신료 분리고지에 따른 사회적 비용 증대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