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800억 원을 투자한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 NEIS)이 개통과 함께 발생한 오류로 전국 학교 업무가 마비됐다. 지난해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의 전산 오류로 인한 문제도 아직 마무리가 되지 못한 수 개월 만에 발생한 일이다.
국민의 세금 수천억 원을 투자한 대규모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이 오히려 매번 국민과 국가 업무에 큰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 하지만 주요 관계부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원인을 충분히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관련 업계에서는 이런 대규모 공공SW 사업의 오류가 앞으로도 반복해서 발생할 것으로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 SW에 대한 낮은 인식으로 형성된 기형적 구조
4세대 나이스는 클라우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IT기술을 활용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전면 개편하는 사업이다. 2만여개 유·초·중등학교와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교육지원청 등 교육행정기관과 400여개 대학·전문대학, 재외한국학교을 통합하는 구조다.
코로나19 등에 대응하기 위한 원격교육 시스템을 강화하고 학생의 학습활동을 AI로 분석해 개인화된 교육을 제공한다. 또한 각 교육기관의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고 자동화 도구와 AI를 활용해 단순 반복 업무를 최소화해 교육 공무원의 부담을 낮추고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구축됐다.
하지만 개통 첫날 로그인이 안 되고 기말고사 문항정보표가 유출되는 등 교육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시스템 안정화 작업을 지속 중이지만 일부는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이다.
또한 시각장애 등 보조프로그램을 활용해 학습이 진행되는 특수학교나 전문 교육용 프로그램이 필요한 마이스터고 등은 교육이 한동안 마비되다시피 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일부에서는 4세대 나이스 사업에 대해 대기업 참여제한으로 인해 중견기업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클라우드, 인공지능(AI) 등을 대거 활용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대기업의 참여가 필수적이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발주처인 교육부는 대기업 참여를 허용해 줄 것을 4차례나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LG CNS가 참여한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이나 2011년 삼성SDS가 구축한 3세대 나이스 역시 대규모 오류 사태를 발생시킨 만큼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는 힘들다.
관련 업계에서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관계부처 및 발주사의 SW산업에 대한 부족하고 낮은 인식을 지적했다. 평가절하된 가치로 인해 십수년 간 투자가 동결되며 수익은 고사하고 오히려 적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불공정 관행이 관습으로 굳어지는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이 마저도 버티지 못하고 유찰되는 프로젝트가 40%를 넘어서고 있다.
수천억 원 규모의 대규모 프로젝트도 같은 상황이다. 나이스 역시 단독 입찰로 한차례 유찰됐으며,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도 유찰된 사례다. 1천300억 원 규모 차세대 형사사법정보시스템 사업도 유찰됐으며 1천26억 원 규모의 차세대 지방세입정보시스템은 3연속 유찰된 바 있다.
한 대기업 IT서비스업계 임원은 "가장 큰 문제는 관계부처 및 발주사의 SW 개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라며 “개발 과정이나 결과물이 눈에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냥 요청하면 되는 줄 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요구사항을 맞추지 못하면 그에 대해 책임을 묻고 벌금을 물거나 다음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하고 내가 해고될 수 있는 만큼 밤을 새건 어떻게 해서라도 수정사항을 반영한다”며 “그렇게 결과물을 제출하면 담당자는 당연히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판단해버린다”고 토로했다.
■ 개발 완성도 낮추는 예산 부족
채효근 IT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은 “공공 SW 유지 보수 비용을 살펴보면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며 “최근 급격하게 오른 개발자 몸값은 커녕 물가 인상률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SW진흥법 개정안 등을 선보이며 SW산업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모범이 돼야할 정부에서 예산 부족으로 무보수 과업변경, 개발기간 연장 불허 등의 불공정 거래가 관습화 됐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만약 발주사에서 기업에서 요청한 과업변경, 개발 기간 연장을 받아들일 경우 이에 따른 예산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부처에 예산이 없어 지불할 수 없을 경우 담당자의 귀책사유가 되기 때문에 인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단 것이다.”
대기업 임원은 “현재 공공SW 사업은 SW산업에 대한 이해와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응이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며 “그저 시스템을 구축한 개발사 대표를 문책하거나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반복되는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역시 통합 테스트 과정에서 수행률이 미흡하다며 시스템 개통을 연기할 것을 개발사 측에서 요청했지만 허가되지 않았다. 잦은 오류가 발생하는 정황상 4차 나이스 사업 역시 이와 유사한 상황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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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IT서비스 기업 임원은 "2019년 아마존웹서비스(AWS)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수주한 국방부 클라우드 사업에 강하게 반발한 끝에 이를 취소하고 두 기업을 포함한 4개 기업이 동시참여하는 방향을 이끌어냈다"며 "국내에서도 정당한 내용에 대해서는 기업이 정부나 발주사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아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담당자는 "반복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관행과 전문성, 예산 부족 등이 지적되는 만큼 이를 관계부처나 발주기관과 논의해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려 한다”며 “특히 개통 문제와 함께 유찰도 큰 문제인 만큼 두 문제를 잘 조합한다면 긍정적인 해결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