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검색’에 대한 ‘정치적 낙인’을 지우자

[이균성의 溫技] AI 시대 후진 기어가 된 정치

데스크 칼럼입력 :2023/05/19 13:32    수정: 2023/05/22 07:34

데이터는 정보시대의 원유(原油)에 비유되곤 한다. 데이터가 지식 노동과 그로 인한 생산 활동의 원초적인 재료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원유가 가치 있게 쓰이기 위해서는 정제(精製)돼야 한다.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데이터의 경우 정제보다는 가공이란 표현을 쓴다. 가공은 조작이라는 의미보다 쓸 모 있게 재구조화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그 과정을 통해 패턴과 트렌드를 찾아내게 된다.

데이터의 재구조화 과정에서 필수적인 기술이 검색이다. 검색이 없다면 정보시대의 지식 노동은 거의 불가능하다.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이때 검색은 단지 기술에 그치지 않고 그 또한 소중한 데이터가 된다. 검색 행위 그 자체가 사회의 동향이기 때문이다. 그 동향을 파악하고 알려주는 기술이 추천이다. 추천은 그러므로 데이터와 검색을 통해 쌓인 패턴이고 트렌드인 거다.

우리 사회는 지난 2021년 2월 이 진보된 지식 노동의 흐름에 사망 선고를 내렸다. ‘실시간 검색’을 난도질한 뒤 매장시켜버린 것이다. 매장의 빌미가 없지는 않았다. 어떤 기술이든 오남용하거나 악용하는 세력이 있듯 ‘실시간 검색’을 나쁘게 사용하는 자들이 있었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개는 정치 세력이거나 자본 세력이었다. 보통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힘 있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챗GPT가 출시돼 세상을 흔들어놓은 건 그로부터 20여 개월 뒤다. 챗GPT는 딥러닝이라는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딥러닝은 컴퓨터가 인간의 뇌를 모사하는 방식으로 학습하게 하는 기술이다. 당연히 데이터를 통해 학습한다. 이 또한 모래알 같은 데이터를 재구조화해 패턴과 트렌드를 찾는 게 핵심이다. 패턴과 트렌드를 찾아가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그 목표는 검색 및 추천과 같다.

챗GPT를 만든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가 화학적으로 결합하고 구글과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이는 까닭은 이제까지 해오던 방식의 검색 및 추천 기술과 딥러닝 기술이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긴밀히 연계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둘 다 데이터를 재구조화해 패턴과 트렌드를 찾아내기 위한 기술인 탓이다. 세상이 이렇게 급변하는 과정에서 ‘실시간 검색’을 무덤 속에 묻어버린 일을 다시 생각해보자.

챗GPT 출시 이후 규제 이슈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환각현상 같은 불완전한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듯하고 악용할 여지도 적지 않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공지능을 무덤에 묻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여러 부작용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이야 말로 인간의 문명을 다시 한 번 크게 바꿀 기술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챗GPT 출시 이후 국내 인공지능 기술이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내릴 만하고, 그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문제는 뒤처져 있는지는 알면서도 왜 그럴 수밖에 없는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는 점이다. ‘실시간 검색’을 무덤 속에 묻어버린 일도 그런 원인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업자가 그런 결정을 해야 할 만큼 탄압받는 환경에서 어떻게 기술이 발전할 수 있겠는가.

과학이나 기술은 그 자체로 죄(罪)를 지을 수가 없다. 죄를 짓는 존재는 인간일 뿐이다. 죄는 인간을 단죄하기 위해 인간이 발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문한 탓인지 문명을 깨친 인간이 기술을 감옥에 가두거나 무덤에 묻었다는 사례를 별로 들은 적이 없다. 그 드문 사례가 바로 ‘실시간 검색’이다. 미국이 챗GPT를 개발하려고 수조 원을 쏟아붓고 있을 때 우리는 그 기반이 될 기술을 무덤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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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네이버와 다음은 최근 새로운 형태의 검색과 추천 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해 준비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실검 부활의 꼼수”라는 지적이 잇따르는 듯하다. 또 사업자는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전 기술은 무덤에 묻어버리더니 새 모델은 나오기도 전에 죽일 듯한 태도다. 여긴 서비스를 내놓을 때마다 정치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곳인가.

실시간 검색을 악용한 곳은 정치 세력과 자본 세력이었던 게 분명하지 않은가. 또 비용과 시간을 적게 들이고 트렌드와 패턴을 파악할 수 있다면 국민으로서는 좋은 일 아닌가. 그렇다면 새로운 검색과 추천 서비스를 막을 게 아니라 정치 세력과 자본 세력이 더 이상 이를 악용하지 않겠다고 자정 선언을 하는 게 모두에게 좋을 일 아닌가. 자신들이 자정 능력이 없다고 국민 편익마저 막아야만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