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칼럼] AI를 앞지르는 비선형 멘탈

전문가 칼럼입력 :2023/04/27 09:34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

예전 직장의 출입문 앞에는 두더지 잡기 게임기계가 놓여 있었다. 처음 방문한 내게 고무망치를 내주면서 해보라고 권한다. 두더지 머리마다 '차별, 불평등'과 같은 부정적인 말들이 써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두더지는 머리를 내려치려는 나를 비웃듯 매번 구멍 속으로 쏙 사라진다. 어쩌다 머리를 맞추면 어깨에 전달되는 고무망치의 탄력감이 짜릿하기도 하다. 그러나 도대체 언제 어느 곳에서 머리를 쑥 들이 내밀지 모르니, 손에 쥔 방망이는 대부분 허공만 가른다.

두더지 잡기 게임의 패턴을 연구해 보았다. 저급한 기계라면 올라오는 순서가 항상 같을 것이다. 난수 발생 프로그램을 써서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컴퓨터를 좀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난수 발생 프로그램의 초기값(Seed, 시드 값)이 동일하다면, 두더지 머리가 올라오는 순서는 항상 같게 된다. 시드값을 시간마다 달라지는 외부 요소로 입력하는 방식을 써야 들이대는 두더지 머리의 순서는 매번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세련된 프로그래머가 만든 두더지 게임이라면, 머리의 돌출 패턴을 연구하는 것 보다는 신경반응 속도를 재빠르게 키우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사람의 인생은 시드값이 같지 않은 두더지 잡기 게임과 같다. 사주가 같은 쌍둥이조차 살아가는 인생패턴이 다르지 않은가? 그럼에도 인간의 욕망은 남보다 나은 삶의 패턴을 미리 만들어가려 한다. 부모가 자녀의 스팩을 억지로 꾸며내는 노력은 성공한 사람들의 보편적 패턴을 읽고, 시드값을 맞추어 보려는 어리석은 일이다. 마치 바람직한 삶의 전범(典範)이 존재한다고 믿고, 최대한 같아지려는 헛똑똑이 짓이다. 왜 기성세대는 소위 성공했다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발자취를 따라 가라고 젊은세대에게 강요하는가?

실리콘밸리의 존경받는 투자가 랜디 코미사르(Randy Komisar)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는 무의미한 삶을 살지 말라‘고 말한다. 삶의 희열은 카피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그려나가는데서 발견된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인터뷰한 어느 책에는 ”죽을 때가 되어 후회하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당장 하라“고 하지 않던가. 성공한 부모는 자신의 성공 공식이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선형적 예측에 사로잡혀 있다. 무모한 생각이다. 그러니 그대의 부모님이 하라는 일을 따르지 말라. 오히려 다른 사람이 모두 안된다는 사업, 지인의 반대가 극심한 사업 모델일수록 하고 싶다면 더 해야 한다.

성공했던 익숙한 길로만 내달리려는 행동 패턴은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스타트업 시절의 제록스가 IBM에 자사의 건식복사기술을 팔러왔던 일은 유명한 사건이다. 물론 IBM의 담당자는 제록스 중역에게 나가는 길을 안내했다. 엄청난 복사기 시장을 놓친 것이다. 그런 IBM은 배운 것이 별로 없었나 보다. 서버 사업에 집중한다고, 네트워크 장비와 프린터 사업으로부터 철수했다. 덕분에 프린터는 HP의 핵심사업이, 네트워크 장비는 시스코의 주력사업이 되었다. 프린터 잉크 유통사업과 인터넷 장비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한 이유이다.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먼저 개발하고도, 필림 사업을 포기하지 못하여 망했다. 마찬가지로 구글은 검색광고시장을 포기하지 못하여, ChatGPT에게 검색큐레이터 시장을 내줄 위기에 처했다. ChatGPT의 핵심 기술인 트랜스포밍 기술을 구글이 먼저 개발했음에 말이다. 작금의 구글 역시 과거의 성공경험에 함몰되어, 쇄락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마치 인간의 염색체에 심어놓은 텔로메어(telomere)처럼, 기업의 사멸을 결정할 DNA를 혁신기업에게도 심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관련기사

이를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혁신기업의 딜레마‘라 푼다. 어떠한 혁신기업도 성공한 이후에는 자신의 성공경험을 포기하지 못하고 망한다는 그의 주장은 갈수록 반박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럼에도 크리스텐슨의 주장에서 놀라운 일은 “이러한 현상이 하나의 예외 없이“ 발생한다는 자신감이다. 그의 주장에 대해 예외를 찾아보려 해도, 시간의 문제이지 영속하는 혁신 기업은 없을 듯 하다. 기업의 사고모델이 예외없이 선형적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성공이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선형적 멘탈 모델은 기업을 언제나 벼랑끝에 이르게 하여 사멸토록 만든다.

잘 만들어진 두더지 게임은 이전의 돌출위치가 다음의 돌출위치 예측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두더지 게임을 잘하려면 선형 멘탈모델이 아니라, 비선형 멘탈모델이 필요하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바쁘게 방향을 전환하는 피봇팅(pivoting) 능력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예측할 수 없는 삶을 향해 발을 내딛고 당차게 살아가려는 젊은 세대를 기성세대는 응원하고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것이 창조하는 주도적 삶이고, 짧은 생의 주연으로 살아가는 일이고, 과거 데이타로 학습한 선형적 인공지능이 따라 할 수 없는 인간만의 내적역량이다.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싶다. “인공지능이던 어떠한 공식이던 인간이 변수가 되면 결과는 항상 비선형으로 바뀐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

(현)사이냅소프트 경영혁신담당 중역. 경영정보학 박사, 정보관리기술사, 미국회계사. IBM, A보안솔루션회사 및 보안관제회사, 기술창업 스타트업, H그룹 계열사, 비영리 D재단, 감리법인 등에서 제조산업전문가, 영업대표, 사업부장, 영업본부장 및 컨설팅사업부장, 대표이사, 기술연구소장, 사무국장, 수석감리원을 역임했다. KAIST 기술경영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벤처창업의 이론과 실제'를 가르쳤고, 국민대 겸임교수로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IT컨설팅'을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동시병행설계', '딥스마트', '비즈니스 프로세스', '프로세스 거버넌스', '실전IT컨설팅' 등이 있다. 프로보노 홈피 deepsmar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