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등 "대면 원칙, 초진 반대…스타트업계 이익만 대변"
소비자·플랫폼업계 “초진 안되면 업계 고사 우려, 소비자권익 보호돼야”
보건복지부 "재진 환자,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비대면진료 추진"
정부가 코로나19 대응 단계 하향 조정을 앞둔 가운데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진료의 제도화 또는 중단을 놓고 관련 산업계와 의료계 등의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회에서는 비대면진료를 ‘초진’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더욱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은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21133)을 통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의료기관 출입이 어려워진 환경을 개선할 목적으로 정부는 한시적으로 비대면진료를 허용한 결과, 국민의 적극적인 활용으로 20년 2월부터 약 2년 10개월간 재택치료자를 포함한 누적 이용자 수가 1천300만 명에 달하는 등 비대면진료가 국민 일상에 자리 잡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특히 비대면진료는 노인‧장애인 등 이동 약자는 물론, 통상적인 의료기관 운영 시간 내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국민의 의료접근성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비대면진료의 대다수가 1차 의원급에서 시행되며 개원의를 중심으로 의료계 내 비대면진료 상시화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방역 조치 완화로 비대면진료를 다시 제재하려는 정책적 기류가 형성돼 국민의 의료권익을 되려 억제한다는 지적이 있어 비대면진료의 상시화가 요구되는 상황이라며, 이를 위해 의료법 제33조제1항에도 불구하고 대면 진료를 보완해 비대면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함과 동시에,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비대면진료와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정보의 제공을 매개하려는 자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의 근거를 마련해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비대면진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고 법안 취지를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개정안은 ‘원격의료’ 명칭을 ‘비대면협진’으로 변경하고, 또 환자의 건강 위해를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의료접근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경우에 한해 비대면진료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검사 환자 본인 확인 등의 경우는 대면진료를 권고하도록 하고, 만성질환자와 정신질환자에 대해서는 동일 질병으로 1회 이상 대면진료를 한 경우 비대면진료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비대면진료를 하는 의료인에게 대면진료와 같은 책임을 지도록 했다.
비대면진료 '초진'은 국민건강보다 산업계 이익 우선시한 무리한 입법
이 같은 개정법안이 발의되자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서울시의사회(이하 의사회)는 6일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하는 원격의료 개정안’이라며 비판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의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일부 업체의 의료법·약사법 위반으로 국민건강에 위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국민의 건강권보다 산업계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무리한 입법안을 내놓았다”며 “비대면 진료가 환자에게 어떤 이득을 제공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껏해야 의료접근성이 높아진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처럼 의료접근성이 좋은 나라도 없거니와, 감염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한 것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더욱이 비대면 진료 이후 약품 배송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환자의 접근성 개선 운운은 어불성설이다”라며 “국회가 앞장서서 초진 환자도 비대면 진료 대상이라며 무리한 입법안을 내놓고 있으니 참으로 목불인견이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대면진료의 대원칙은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한번 만나보지도 못한 환자를 비대면으로 치료하겠다는 발상은 의사에게 불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진료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라며 “국회는 섣불리 비대면 진료를 확대시키는 입법을 할 것이 아니라, 비대면 진료의 근본적 한계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심도 있게 되짚어 논의하는 것이 순서”라며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 조치의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대한변호사협회‧대한의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건축사협회‧대한약사회가 참여하는 ‘올바른 플랫폼 정책 연대’(이하 연대) 역시 성명을 통해 국민의 건강권을 무시하고, 스타트업계 이익만을 대변한다며 해당 의료법 개정안 발의를 비판했다.
연대는 “동 법안은 비대면 진료가 환자의 건강에 위해를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의료접근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경우에 한해 보건복지부령을 정하는 환자에 대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내용으로 ‘사실상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의료뿐 아니라 개인의 재산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법률, 건축 등 전문직 서비스 분야의 경우에도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서비스의 질 하락을 우려해왔다”라며 “국민을 위한 입법이 아닌, 경영난을 겪고 있는 스타트 업계만을 위한 입법은 그 절차도 목적도 정의롭지 못하다. 정부와 국회는 지금이라도 각종 플랫폼에 의한 업종별·직역별 피해 사례와 시장 질서 훼손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합리적 대응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진' 중심의 제도화는 새로운 규제…소비자 선택권 보장돼야
반면 비대면진료 플랫폼 제공업체들은 ‘재진’ 중심의 제도화는 새로운 규제법으로 업계가 셧다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진석 굿닥 대표는 “한시적 허용이라는 대의적 명분으로 시작했지만 플랫폼 산업이 생겨나고 실효성도 확인됐다”라며 “이제는 상시적 효용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 있고. 국가‧행정‧산업차원에서도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소비자단체인 컨슈머워치 역시 소비자 권익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컨슈머워치는 “국민은 의료소비자로서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적극 활용해왔다”며 “소비자가 원하고, 서비스 공급도 활발한 원격 비대면진료가 국민 보건을 최우선으로 챙겨야 할 보건복지부의 방침에 의해 위축될 위기에 처해있다. 특히 재진 환자 중심의 비대면 진료 허용 방안은 실제 초진 환자들이 주로 비대면 진료를 원하고 있다는 현실과 완전히 괴리된 탁상공론식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비대면 진료가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의료서비스를 선택하고 사용하는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소비자”라며 “정부가 임의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방해하는 것은 결국 사회 전체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특정 업종의 기득권을 지키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라고 밝혔다.
또 “비대면의 반대는 단순 ‘대면’일 수 있어도, 비대면 진료의 반대는 정작 진료 포기, 진료 지연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보건복지부는 외면해선 안 된다”라며 “여러 요인으로 간단한 진료조차 받을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비대면 진료는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의료 플랫폼이며, 개인의 건강권을 챙길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라며 보건복지부에 비대면진료 제도화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현재 컨슈머워치는 비대면진료의 전면 허용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향후 취합된 서명부를 여야 국회 및 정부에 전달한다는 계획이다.
컨슈머워치 관계자는 “비대면진료의 제도화를 앞둔 상황에서 실제 이용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배제된 상황에 의료 소비자들은 참담함을 느끼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는 이번 서명운동에 담겨있는 워킹맘과 직장인 등 국민의 목소리를 직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정, 비대면진료 이어갈 수 있는 제한적 시범사업 논의
이러한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비대면진료의 시범사업 진행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해 관심을 모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소아·응급·비대면진료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우리나라가 의료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을 국민들이 갖고 있는데 얼마 전 대구에서 10대 청소년이 응급실을 찾아서 전전하다가 끝내 사망하는 등 최근 의료체계 위기를 경고하는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2020년 2월부터 한시적으로 허용되었던 비대면 진료가 코로나 위기단계 하향조정에 따라서 조만간 종료될 예정이라고 한다”라며 “비대면 진료가 중단되면 당장 많은 국민들이 불편을 느낄 텐데 의료법 개정 전이라도 보건의료기본법 아래 시범사업을 통해서 제한적으로라도 비대면 진료를 이어갈 방안은 없는지 논의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주 원내대표는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 기간 중 무려 3만600만 건이나 시행됐다고 하는데 특히 외출이 쉽지 않은 영유아나 영유아보육가정이나 직장인, 도서지역 같은 의료 사각지대 주민들에게는 큰 편리를 제공하고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라며 “(당정 논의를 통해) 비대면 진료 중단으로 인한 의료 공백과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향후 관련 법 개정 및 발전 방안을 정교하게 마련해 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