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시스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수백조원을 쏟아붓기로 한 것은 분야별 세계 1등 자리를 노린 투자다. 특히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세계 1등이지만, 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 분야에서는 대만 TSMC와 격차가 2배 넘게 벌어진 2위에 머물고 있다. 디스플레이 역시 1등이었지만,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낮은 가격으로 밀어붙이는 중국에 밀린 상황이다. 따라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대규모 선제적 투자를 통해 첨단기술 생산시설과 생태계 조성에 나서야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삼성이 지난달 중순 첨단 시스템반도체에 300조원, 지역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 60조원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4일 차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4조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연유한다.
최근 삼성이 발표한 투자 금액만 합하면 약 364조원에 달한다. 지난 반세기 우리나라 국가 연구개발(R&D) 예산보다 더 많은 액수다. 2011년 우리나라 전체 국가예산 규모가 300조원 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래 첨단산업에 쏟아붓는 삼성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대규모 투자는 시스템반도체 시장을 겨냥한 삼성전자와 이재용 회장의 의지가 확고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율차, 로봇, 빅데이터, AI 등 미래 디지털 전환 시대의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반도체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약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파운드리는 경기 불황에도 메모리와 달리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다. 종합반도체(IDM) 회사를 지향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반드시 시스템반도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야 한다.
이를 두고 삼성 내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삼성이 그동안 갖고 있던 리소스를 메모리에만 집중했다면, 이제 시장이 더 크고 부가가치가 높은 시스템반도체 쪽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을 밝힌 것"이라며 "영어·국어 과목 잘하던 학생이 소홀했던 수학 공부도 더 잘 하겠다고 머리를 싸맨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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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날 아산사업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용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26년까지 4조1천억원을 태블릿·노트북 등 정보기술(IT) 제품용 OLED 패널 생산 시설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세계 1위인 스마트폰 OLED 패널 시장과 아울러 IT용 OLED 패널 시장에서도 세계 최고 패널 생산 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기존 6세대(1.5m×1.8m) 설비로 14.3인치 태블릿 패널을 1년에 450만장 만들었다면 이번에 투자하는 8.6세대(2.25m×2.6m) 설비로는 1천만장까지 생산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패널은 원장(마더글라스)으로 불리는 유리 기판을 만들고, 이를 수십장 패널로 나눠 생산된다. 원장 면적이 클수록 패널 생산량이 늘어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산사업장에서 OLED와 양자점(QD·퀀텀닷)처럼 부가가치 높은 제품 생산 비중을 높이기로 했다.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고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지역 균형 발전을 돕는다는 취지다. 앞서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10월 말 취임 후 광주를 시작으로 지방 사업장을 두루 돌며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해 상생 선순환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