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20조 투자 메모리, 단돈 몇 센트에 팔려"

'죄수의 딜레마' 처한 현실 토로…美 반도체 보조금 신청 고민 중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23/03/29 15:23    수정: 2023/03/29 17:05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1년에 20조원 넘게 투자하고 6개월 동안 600개 넘는 공정으로 만든 메모리 반도체 제품이 단돈 몇 센트에 팔린다”며 “업황이 지독하게 흔들리는 데 경영진으로서 책임감이 무겁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29일 경기 이천시 본사에서 열린 제75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메모리 반도체 회사가 해마다 20조원 넘게 설비에 투자하고 고객사는 돈을 잘 버는데도 SK하이닉스는 영업적자를 걱정한다면 잘못 아니냐’는 주주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이 29일 경기 이천시 본사에서 열린 제75기 정기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SK하이닉스)

그러면서 “엔비디아 ‘A100’만 하더라도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엔비디아에 200달러에 공급하지만 엔비디아는 A100을 1만 달러에 판다”며 “2년에 걸쳐 원가를 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메모리 반도체 회사가 ‘죄수의 딜레마’에 처했다고 표현했다. 협동하면 모두 이익을 얻지만 누군가 배반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박 부회장은 “D램 만드는 회사가 세계에 3곳밖에 없지만 고객이 이를 상대로 게임한다”며 “3개사가 담합할 수 없으니 공급이 넘치면 제품 가격이 빠르게 떨어진다”고 했다. 이어 “업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지지 않도록 막을 방법을 찾고 있다”며 “좋은 결과가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 이천 본사(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설비 투자(CAPEX)에 19조원 썼지만 올해 50% 이상 줄이기로 했다. 박 부회장은 이에 대해 “기술 경쟁을 멈추겠다는 게 아니라 양산까지 가는 일정을 어떻게 조절할지 보겠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모바일용 칩은 작을수록 비싸게 팔 수 있었지만, 가장 떠오르는 시장인 서버용 칩은 그 정도 미세화를 요구하지 않는다”며 “자본적 지출 대비 원가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중국 갈등 관련해서는 “개별 기업이 상황을 바꾸기 쉽지 않다”며 “각국 정부와 고객 요구에 반하지 않으면서도 회사에 알맞는 해법을 찾으려고 매일 노력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주총 이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 건설 보조금을 신청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는 “HBM 패키징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며 “HBM을 제일 요구하는 미국에 짓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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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7월2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영상 통화로 “SK그룹은 미국에서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짓고 연구·개발하는 데 150억 달러를 쓰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태원 SK그룹 회장 일행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돼 회담은 영상으로 대신 했다.(사진=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트위터)

한편, SK하이닉스는 이날 주총에서 ▲한애라·김정원·정덕균 사외이사 선임 ▲한애라·김정원 감사위원 선임 ▲박성하 기타비상무이사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을 모두 원안대로 가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