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미잘이나 해파리, 산호 같은 자포동물은 뇌가 없다. 하지만 몸에 분산된 신경망이 주변 자극에 반응해 움직임을 조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뇌가 없는 이런 동물들도 과거의 일을 기억해 행동을 바꿀 수 있을까? 몇가지 자극이 반복해서 발생할 때 이들 자극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행동을 조정하는 '연합 학습(associative learning)'은 생존에 중요한 자질이다.
개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종을 울렸더니, 나중엔 종만 울려도 개가 침을 흘리게 됐다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이 대표적이다.
스위스와 스페인 연구진이 말미잘 같은 자포동물의 연합 학습 능력을 확인하는 실험을 진행, 결과를 학술지 'PNAS'에 최근 공개했다. 뇌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중화된 신경 시스템이 없는 동물의 연합 학습 능력에 대한 연구는 드물었다.
연구진은 빛과 전기 자극을 이용해 말미잘(Nematostella vectensis)이 두 자극을 연관시키는 학습을 하도록 시도했다. 이 말미잘은 눈은 없지만 빛을 인식할 수는 있는 종류다. 또 말미잘은 전기 자극을 받으면 입과 촉수 부분이 빠르고 강하게 위축된다.
우선 말미잘에게 빛을 비춰 그에 대한 반응을 녹화한 후, 이어 빛을 쪼이면서 동시에 약한 전기 자극을 가하는 학습을 50분 동안 진행했다. 이때 전기 자극은 빛과 동시에 가하기도 했고, 1분 간격을 두고 가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학습이 끝나고 10분 후 다시 빛을 비추었을 때 말미잘들이 보이는 반응을 관찰했다.
학습 전 빛 자극을 받았을 때엔 말미잘의 19% 정도가 수축하는 반응을 보였다. 학습 후 빛을 비추었을 때, 앞서 학습 과정에서 빛과 전기 자극을 동시에 받은 그룹은 72%가 수축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자극을 순차적으로 받은 그룹 말미잘의 30%만 수축한 것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학습 과정에서 빛 또는 전기 자극을 하나만 받은 그룹은 이후 빛을 쪼였을 때 수축 반응을 보인 비율이 각각 11%와 8%였다. 또 두 자극을 동시에 받은 그룹의 말미잘은 빛 자극을 받았을 때 몸이 수축되는 정도도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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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빛이나 전기 자극을 반복적으로 가하는 것은 말미잘의 행동에 제한적 영향만 미치는 것으로 보여, 빛과 전기 자극을 동시에 받은 그룹이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설명하지 못 한다"라며 "이는 말미잘이 연합 학습을 함을 시사한다"라고 밝혔다. 동시에 주어지는 빛과 전기 자극을 하나의 행동 유발 요인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생물에서 이같은 학습과 기억은 보통 뇌의 특정한 영역에서 이뤄진다. 이번 연구를 통해 뇌가 없이 분산된 신경망만 있는 말미잘 같은 동물도 이같은 기능을 하는 영역을 가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반대로, 말미말이 뇌 없이 독자적 경로로 연합 학습 능력이 진화했을 수도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뇌가 없는 인식이 가능할 수 있다는 추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