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로이트 테크 인사이트③] 방사선 내성 반도체, 우주·에너지산업에 새 기회

인류에 미치는 영향력 커...올해 세계 방사선 내성반도체 시장 규모 15억달러 이상

전문가 칼럼입력 :2023/03/18 19:42

주형열 딜로이트컨설팅코리아 전무(반도체 CoE 리더)

 방사선 내성 반도체 칩은 작지만 충분히 스마트하고, 기존 반도체와는 달리 고준위 방사선 환경에 노출되어도 견딜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올해 전 세계 방사선 내성 반도체 시장 규모는 매출 기준으로 약 15억 달러 이상이 될 전망이다. 전체 반도체 시장 규모 약6600억 달러에 비하면 미미한 수치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매출 숫자가 아니라 방사능 내성 반도체가 보유하고 있는 확장성과 인류에 미치는 영향력이다.

극한 환경서도 전력회로 신뢰성 높이는 방사선 내성 반도체칩

전리 방사선(Ionizing Radiation)은 인간에게 잠시만 노출되더라도 피부암을 일으키고, 자외선 보다 약 1조배 이상 강력한 에너지와 투과력을 갖고 있어 지구상 모든 생명체에 치명적이다. 반도체 칩에게도 오작동 및 기능 상실 등의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하지만 방사선 내성 반도체 칩은 총 전리방사선량(Total Ionizing Dose, TID)과 단일 사건효과(Single Event Effect, See)에 대한 내성을 갖추고 있다. 일반 반도체 칩은 TID가 높아 질수록 반도체 소자의 손상이 누적되어 성능 악화, 오작동 그리고 결국엔 기능 상실을 초래한다. 그리고 SEE 영향으로 반도체 소자가 방사능 고준위 입자에 노출되어 비트값이 바뀌는 비트플립(bitflip) 오류가 발생한다. 비트플립이 반복되면 반도체 소자에 과도한 전류가 흐르는 ‘래치업(Latch-Up)’ 상태가 계속될 경우 회로가 영구적으로 파괴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우주로 간 전장품의 주요한 오작동 원인이 우주방사선이다. 태양 플레어, 초신성, 감마선 폭발 등 다양한 천문사건을 통해 방출되는 우주 방사선은 높은 운동 에너지를 가지며(~수백 MeV), 이들 우주 방사선의 에너지 입자들은 전장품과 충돌해 TID, SEE 등과 같은 단위소자 방사선 영향으로 다양한 오작동을 초래한다.

높은 신뢰성을 요구하는 우주 항공과 원자력 및 의료분야에서 내방사화(Radiation-Hardening)기술 부재는 우주탐사 임무 실패 뿐 아니라 사회 기반 시설 오작동으로 이어져 막대한 물적·인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수습 과정에서 감마선 내성 반도체가 활용되고 의료기기 또한 방사선 내성 기술이 적용돼 있다. 방사선 내성 반도체칩은 ICT 전장품이 고도화되면서 다양한 응용분야에 채택되고 있으며, 우주항공과 원자력 분야에서 그 유용성이 실증 되고 있다.

우주에도 녹아드는 내방사선 반도체

우주에서 사용하는 반도체칩은 발사 시 강한 진동과 급격한 온도 변화, 정전과 방전, 중력 가속도 등을 견뎌야 한다. 그리고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공간에 진입하면 높은 방사능 환경에 노출된다. 또 지구 궤도를 넘어 더 먼 우주로 향하게 되면 태양 표면에서 분출되는 다량의 에너지 입자와 한층 더 강력한 방사능과 마주한다.

우주 위성 고장과 수명단축의 주요 원인이 고준위 우주방사선이 노출되는 환경이다. 기본적으로 국제 우주정거장 등에 탑재된 반도체는 소위 시대에 뒤 떨어진 ‘레거시(Legacy) 공정’, 즉 반도체로 방사능 내성을 갖추고 있지만 대부분은 본래 기능과 성능을 발휘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어 지금 스마트 폰 상에서 당연시 여기는 AI 기반 이미지 프로세싱이나 그래픽 조정 등의 기능들은 우주에서 구현하기 어려웠다.

우주장비를 덤 터미널(Dumb Terminal)로 부른 이유다. 우주로 보내진 전자기기들은 필요한 이미지를 수집하고, 지구로 전송하는 등 자동운용 기능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기능들은 지구에서 내린 명령에 기반한 것이고, 한가지 명령이 실행된 후 다음 명령이 실행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우주 장비들이 매우 느리게 운용될 수밖에 없던 구조였다. 하지만 내방사화 기술을 적용한 전자 장비가 등장하면서 우주기술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일종의 온보드 FPGA시스템으로 스페이스 큐브(Space Cube)를 개발했고, 우주 컴퓨팅 장치들의 연산능력, 자율기능 및 인공지능/기계학습을 가능하게 했다. 우주 위성들의 수명은 더 길어졌고 전자장비들의 신뢰성도 개선됐다. 덕분에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수많은 위성들은 빠른 위치 조정으로 충돌 위험에서 벗어날 뿐 만 아니라 우주 쓰레기도 줄일 수 있다. 특히 기상 탐사위성들은 해저지진을 감지하고 적절한 시기에 쓰나미 경고를 보내 수백만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도로상 메탄 불법 배출 현장까지도 적발 할 수 있다.

핵융합 원자력 에너지 실현

원자력 에너지 생산은 방사능 폐기물 우려로 지난 20년간 감소했다. 하지만 2015년 파리협정에서 신기후변화체제가 출범하면서 원자력은 기후변화 대응 수단으로 이산화탄소를 방출하지 않는 대안 에너지로 부상했다. 앞으로 원전은 과거 그 어느때 보다 스마트 해지고 소형화될 뿐만 아니라 안전한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데 방사선 내성 반도체 칩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원자력 에너지는 기존 핵분열방식 보다 핵융합으로 청정 에너지 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 핵융합발전은 안전성과 친환경성 면에서 기존 원자력발전보다 크게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료 공급 조절만으로도 핵분열에서와 같은 급격한 반응으로 인한 폭발 위험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발생시키고 주요 구조물을 영구적으로 해체, 폐기해야하는 것과 달리 핵융합 발전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발생이 없고 방사능 양도 원자력발전의 0.04%에 불과하다.

핵분열과 핵융합은 비슷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정반대 성격을 갖고 있다. 핵분열은 말 그대로 하나의 무거운 원소를 분열시키며 에너지를 만들고, 핵융합은 가벼운 원소들이 융합하면서 에너지를 만든다. 이중 핵분열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원자력 발전의 원리가 된다. 이를 위해선 무거운 원자핵(우라늄)이 외부에서 낮은 에너지를 가진 중성자(열중성자)와 충돌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중성자와 충돌한 원자핵은 각기 다른 원자핵 2개로 분열되며 중성자 2~3개와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게 되고, 이 에너지로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리는 방식으로 ‘원자력발전’이 이뤄진다.

반면 핵융합은 수소와 같은 가벼운 원소들이 합쳐지는 과정이다. 이들 원자핵을 초고온으로 가열시키면 원자핵 간 거리가 가까워지며 강한 핵력에 의해 결합한다. 이 과정에서 역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발생한다. 태양이 내뿜는 엄청난 에너지가 바로 이 핵융합을 통해 만들어진다. 핵분열과 핵융합 모두 막대한 에너지 획득이 가능하면서도 탄소배출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 핵분열의 경우 방사성 폐기물이 발생하므로 높은 수준의 관리가 필요하다. 핵융합은 원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 고갈 가능성이 거의 없고, 방사능에도 안전하다. 다만 1억℃가 넘는 플라즈마 상태를 약 300초 이상 유지해야 하기에 아직까진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핵융합 과정은 자기장, 고압, 끊임없는 변온 환경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 모든 환경 요건을 감지, 해석, 통제하기 위해 초강력한 방사선 내성 반도체가 필요하다. 최근 기술 발전으로 핵융합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핵융합 원자로 구동을 위한 방사선 내성 반도체칩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방사선 내성 반도체칩 설계 및 제조 과정

방사선 내성 반도체칩은 반도체 물리와 논리 회로를 구성하는 두 가지 과정으로 만들 수 있다. 본고는 반도체 물리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도체 물리 구성 과정에서 각각의 방사선 내성 반도체칩은 물리적으로 서로 다른 물질과 구조로 만들어진다. 탄화규소(silicon carbide, SiC)와 질화갈륨(gallium nitride, GaN) 등 각기 다른 물질로 만들거나, 인슐레이터나 다른 기판 위에 실리콘 레이어를 겹치는 등 각기 다른 공정으로 만든다.

기존의 상보형 금속 산화 반도체(complementary metal oxide semionductor, CMOS) 대신 양극성 집적회로(bipolar IC)를 사용하거나, S램(static random access memory) 대신 D램(dynamic random access memory)을 사용하거나, 열화(劣化) 붕소(boron)로 보호막을 만들거나, 설계 단계부터 방사선 내성 설계로 만드는 등의 다른 방법도 있다.

우주 응용분야에 사용되는 반도체는 일반적인 패키징으로는 중력가속도와 여타 우주 환경을 견딜 수 없다. 방사선 내성 반도체는 더욱 강력한 중력가속도와 극심한 온도 변화를 여타 물질보다 더욱 잘 이겨낼 수 있는 세라믹과 같은 특수 패키지를 사용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이중안전기술(redundancy)뿐 아니라 특수 내성 래치(latches)와 레이아웃 기법, 시한 회로(timing circuit) 등으로 설계 단계에서 방사선 내성 논리 회로를 만들 수 있다.


우주시대를 준비하는 반도체

최근 반도체 부족난이 심화하면서 어떠한 종류의 반도체든 공급을 다각화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산업 전반에 고조됐다. 방사선 내성 반도체도 전 세계적으로 현지 공급원에 비해 수요가 크게 늘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미국 연방정부는 미네소타(Minnesota)주의 첨단 방사선 내성 반도체 생산시설에 1억7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방사선 내성 반도체칩은 군사 및 국가 안보에도 매우 중요한 전략적 기술이다. 비밀 군 정찰 위성과 핵무기 등 군사 전략 자산에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군사용 반도체칩의 자급력이 낮다. 2021년 미군에서 각종 시스템 등에 채택한 반도체 중 미국 내 파운드리(생산공장)에서 생산한 비율은 2%에 불과하다.

사실 저고도에서 단기임무를 수행하는 위성에는 전용 반도체칩 대신 상용부품(commercial off-the-shelf, COTS)화한  방사선 내성 반도체칩을 활용할 수 있다. 이는 방사선 내성 반도체 부문에서 중요한 변화로, 특정 우주 응용분야에서 사용하는 반도체칩 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방사선 내성 반도체 덕분에 우주 응용분야에서 AI/ML 기능을 통합해 에지 컴퓨팅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네트워크 대역이 매우 제한적인 위성이 수집한 사진과 이미지를 모조리 지구로 보내고 다시 지구에서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다.

온보드 시스템에 탑재한 방사선 내성 반도체칩에 AI/ML 기능을 통합하면, 우주 장비들은 이미지 수집, 분류, 자동화 결정, 적시 행동까지 스스로 첨단 분석을 수행할 수 있다. 온보드 분석 기능 강화 외에도 기업들은 첨단 데이터 처리와 분석 수행을 전담하는 위성 발사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 장치를 탑재한 위성들은 다른 위성들과 에지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

내방사화 기술개발에 대한 정부와 기업 열기가 뜨겁다. NASA는 ‘고성능 우주비행 컴퓨팅’(High-Performance Spaceflight Computing, HPSC) 프로젝트를 운영중이다. 첨단 반도체칩과 각종 시스템 아키텍처를 탑재한 차세대 우주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달을 넘어 화성까지 가려는 인류 열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최근 NASA는 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Microchip Technology)사와 공동으로 5000만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는데, 기존 산업용 프로세서 성능을 100배 능가하는 우주용 프로세서를 개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SiC와 GaN등 반도체 신소재 개발과 더불어 3D 입체 구조의 칩 설계 및 공정 기술인 핀펫(FinFET)과 실리콘 온 인슐레이터(Silicon on insulator, SOI) 등 실리콘의 새로운 활용 방식을 탐색하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또한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 체계의 ARM(advanced risc machine) 프로세서 또는 오픈소스의 장점을 반도체 칩 아키텍처에 적용한 리스크파이브(RISC-V) 기술 등 방사능 내성 반도체칩 개발에 기존 상용화 기술을 적용하는 연구개발도 활발하다. 주요 반도체 회사들이 파일럿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는 첨단 노드와 10나노미터(nm) 미만의 미세화 기술 덕분에 발사체의 전체 무게가 가벼워질 수 있다. 무게가 줄면 프로젝트 비용은 감축되는 반면 성공 가능성은 높아진다.

수 십년간 우주에서 사용한센서는 반드시 지상에서 통제하는 프로세싱 기능에 의존했다. 하지만 방사능 내성반도체가 탑재되어 온보드 프로세싱 및 메모리 기능이 대폭 확대되면 전혀 새로운 기회가 펼쳐질 것이다. 앞으로 수 년간 위성산업이 어떠한 발전 양상을 보일지 기대된다.

주형열 딜로이트컨설팅코리아 파트너

필자 약력

-디지털 기반 혁신 전략 수립 전문성을 보유하였고, 반도체/금융/ 전자 등 다수의 데이터, 클라우드, Data lake 관련 프로젝트 수행

-현)딜로이트컨설팅코리아(Deloitte Consulting Korea) 파트너(전무), 반도체 CoE 리더

관련기사

-전)EY 컨설팅

-전) IBM GBS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