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무역 적자가 53억 달러로 집계됐다. 이로써 무역 적자 행진은 지난해 3월부터 1년째 이어지고 있다. 무역 적자가 12개월 이상 지속된 것은 ‘1995년 1월~1997년 5월’ 이후 25년 9개월 만이다. 그 이후 외환 위기를 겪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무역 수지 적자가 올 하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랬을 때 한국 경제가 어떻게 될지 예상하는 것은 우울한 일이다.
무역 적자는 수입이 수출보다 클 때 생긴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무역 적자의 원인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수입 증가와 ▲지역적으로는 중국, 품목으로는 반도체 수출 감소를 꼽는다. 이 분석은 정확한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하나마나한 이야기다. 이 원인을 찾아냈다 해서 결과를 바꿀 방법을 알아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무역 적자의 원인으로 지적된 것들은 사실 어떤 원인으로 발생한 결과이기도 하다. 결과로서의 그 자체는 이미 일어난 일이고 그러므로 논리적으로는 사람에 의해서 통제될 수 없는 것이다. 결과를 통제하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결과가 원인으로 작동되어 발생한 새로운 결과는 그래서 통제의 바깥에 있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무역 적자에 꼼짝도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내린 처방을 ‘대증요법(對症療法)’이라 부를 수 있다. 근본적인 원인을 모른 채 증상만 보고 대책을 마련하기 때문에 본질적 치료는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이런 처방은 어떤 경우에는 치료라기보다 코미디에 가깝다. 뱃속이 아픈데 뱃가죽에 빨간 색의 머큐로크롬을 바른 일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다 환자는 사망할 수 있다. 1997년 12월에 한국 경제는 그런 식으로 죽었다.
지금의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 그것을 바꿈으로써 지금의 문제를 개선한다는 이야기는 얼핏 보기에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가끔 그런 식의 처방이 효과를 보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원인으로 지목된 사안이 통제 가능한 특별한 상황에서만 일어난다. 이 문제에서는 적용이 안 된다. 우리 정부가 국제 에너지 가격을 우리 입맛에 맞추는 일이란 불가능하다.
우리의 지성은 문제의 원인을 찾아 없애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그게 문제를 키우기도 한다. 복통에 머류로크롬을 바르는 게 그런 일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진짜 방법은 그래서 원인을 찾아 없애는 것보다 마주친 문제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IMF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이 그런 것일 수 있다. 겉으론 보기에 촌스러운 방법이지만 실제 효과는 생각보다 컸을 수도 있다.
에너지 가격 급등의 원인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도 그중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하나 만은 아닐 수 있다. 문제는 그 원인을 수십 개 나열해도 우리 정부가 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분명한 건 에너지 가격이 비싸졌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부와 기업과 가계는 그 문제를 더 생각해야만 한다.
에너지를 덜 쓰려고 노력한다거나 에너지원을 다양화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자금을 투자하는 것은 그 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효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대개 그런 것뿐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사실을 잊고 멋진 정책을 찾는 데만 몰입하다 보면 그것이 ‘돌팔이’가 되는 지름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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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수출 감소 또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그에 따라 고금리 고환율이 세계 경제를 강타하면서 경기가 급속히 위축된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반도체 대중 수출을 제한하는 것도 당연한 원인일 테다. 하지만 이 또한 우리 정부가 할 일은 별로 없다. 미국이 그러는 데는 또 다른 원인이 있는데 그걸 해결할 수 없는 탓이다.
에너지는 국민이 덜 쓰려고 노력이라도 할 수 있지만 반도체는 그럴 수도 없다. 우리 국민이 아직 필요치 않는 반도체를 하나씩 더 산다 하더라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반도체 기업 세금을 줄여준다고 수요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쓰나미가 덮치고 간 해변에 새로운 건물을 지으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아직 물이 넘치는 상황에서 서둘러 무엇을 하려 하다간 되레 물살에 휩쓸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