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동성부부는 사실혼 아냐 피부양자 자격 취소는 적법”…대법 상고 시사

2심 재판부도 사실혼 인정 안했지만 평등권 차원에서 건보공단 결정 두고 "차별적” 지적

헬스케어입력 :2023/02/22 16:11

서울고등법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게 동성부부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라는 판결을 내린 가운데, 건보공단은 대법원에 상고할 것을 시사했다.

쟁점은 ‘평등’과 ‘사실혼의 범위’를 어디까지 바라보느냐이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에 따르면, 남성인 A씨는 배우자인 남성 B씨와 그해 결혼식을 올렸다. A씨 부부는 이번 소송의 쟁점이 된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A씨는 2020년 2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B씨를 피부양자로 등록했지만 건보공단은 피부양자 인정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B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취소했다.

A씨가 서울행정법원에 건보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작년 1월 7일 법원은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다. 1심 재판부는 A씨 부부에 사실혼 주장에 대해 혼인법질서에 반하는 내용의 사실혼은 보호받을 수 없다는 취지로 B씨가 피부양자 자격은 박탈됐지만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것 만으론 특정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결국 A씨는 같은 해 1월 21일 서울고법에 항소했다. 서울고법 행정1-3부는 A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부과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건보공단이 직장가입자의 사실혼 배우자 집단에 대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반면, 직장가입자의 동성결합 상대방 집단은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두 그룹 모두 법상 가족관계나 부양의무의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아 다르다고 할 수 없다는 본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사실혼 배우자 집단에 대해서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동성결합 상대방 집단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동일한 집단에 대한 차별대우”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현행법상 사실혼의 성립요건인 혼인의사 또는 혼인생활에서의 혼인은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풍속적으로 정당시 되는 결합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A씨 부부가 주장한 사실혼 관계는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건보공단은 “국민건강보험법 제5조제2항 제1호, 시행규칙 제2조제1항과 법원의 판례에 따라 피부양자 자격을 관리해 왔다”며 대법 판례를 근거로 피부양자 자격 여부를 따질 사실혼의 조건에 A씨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근거로 든 대법 판례는 혼인과 가족생활에 있어서 남녀의 구별과 남녀의 결합을 전제로 한 양성·부부·부 또는 처·남편과 아내·부모라는 성구별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 민법의 이성간의 혼인만을 허용하고 동성 간의 혼인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판시 등이다.

건보공단은 “고법의 판결에 대해 법적 검토를 거쳐 상고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지만, 대법 상고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관련해 2심 재판부는 “건보공단은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결합 상대방이 동일하지 않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며 “차별대우를 정당화하는 합리적 이유는 입증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은 A씨 부부를 사실혼 관계로 보기는 어렵고, 2심 재판부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시대의 변화와 다양한 결혼형태를 인정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건보공단의 대법원 상고 등 강경한 태도에 대한 비판의 지점도 발견된다.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3년 건보공단이 직장가입자와 사실상의 혼인생활을 하고 있는 사실혼 배우자에 대해 이혼 전력을 이유로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공단의 업무처리지침은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 ‘자격 관리 업무처리지침’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가 이번 동성부부 관련 건보공단 업무처리지침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에따른 건보공단 결정 변화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사진=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동성부부의 피부양자 자격 소송이 쏘아올린 공

이번 ‘사건’은 우리 법이 동성부부나 동성결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우리사회에서 법적인 부부는 ▲상속 ▲자녀 입양 ▲양육권 행사 ▲조세 ▲보험 ▲의료 및 주택 등에서 법적 지위를 보장받는다. 이를 ‘동성결혼의 권리-미국의 사례와 국제인권법의 동향’ 논문은 “국가가 제공하는 많은 이익들이 법적인 부부와 가족의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A씨 부부의 사례처럼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더라도 현행법이 이들을 법적인 부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법적인 지위의 보장은 이뤄질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네덜란드는 2001년 전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을 인정했다. 대만의 경우, 2019년 5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현재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국가는 총 33개국이다.

그렇지만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해 처벌하는 국가는 70여 개국이 넘고 이 가운데 일부는 동성애 처벌수위를 사형으로 처벌하고 있다.

동성혼은 인정하지 않되, 동성부부에게 이성부부와 유사한 법적 지위를 인정해주는 일부 국가도 존재한다. 물론 우리나라는 아직 이러한 ‘과도기적’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관점에서 이번 고법 판결도 동성부부를 사실혼 관계로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현행 법·제도와 사회적 인식을 종합 고려할 때 이번 고법의 결정은 평등의 관점에서 동성부부의 권익 개선에 대한 진일보한 판결이란 해석이 나온다.

장보람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은 “건보공단은 동성 배우자를 인정하지 않아 동성 부부를 차별하고 이성 배우자에게 부여되는 기본권을 부정해왔다”며 “이번 판결을 통해 이러한 잘못이 시정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