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삶의 이정표이자 동력이다. 꿈은 곧 미래의 삶이다. 꿈은 그래서 소중하다. 꿈은 사람마다 다르고 다른 만큼 다채롭다. 스타트업이 꾸는 꿈도 그럴 것이다. 소중하고 다채롭다. ‘이균성의 스타트업 스토리’는 누군가의 꿈 이야기다. 꿈꾸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꿈꾸는 사람을 소개하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된다. [편집자주]
“두뇌는 챗GPT, 형상은 AI 휴먼...괜찮나요?”
여기 칼이 있다.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 비즈니스를 극히 단순화한다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칼은 기술에 대한 비유다. 현대 비즈니스는 기술로부터 출발한다. 기술이 있으면 자본이 따라붙고 자본이 생기면 자원과 인력을 구할 수 있다. 그것들이 결합돼 상품이 나온다.
요즘 가장 날카로운 칼은 인공지능(AI)이다. 좀 더 전문적으로 엄밀히 말하면 딥러닝(Deep Learning)이다. 이 칼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의 문제가 많은 기업, 특히 테크 기업 대부분의 고민거리다. 사실은 당장의 고민거리가 아니라 이미 수년전부터 혹은 십수년전부터 이 문제와 씨름을 하고 있다.
정상원 이소트소프트 대표도 그중 한 명이다. “AI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되자.” 1998년 병역특례로 입사한 뒤 2016년 대표이사의 자리에 오르면서 정 대표가 내건 슬로건이 이것이다.
■챗GPT는 ‘검은 백조’일 수 있다
챗GPT는 누구도 알지 못하고 그래서 관심을 둘 수 없을 때 홀연히 나타나 기존 질서를 파괴적으로 흔들어버리는 ‘검은 백조(Black Swan)’일 수 있다. 챗GPT가 아무도 몰랐던 완전히 새로운 기술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두들 하려고 했던 아이디어다. 그런데도 왜 ‘검은 백조’라고 하는 건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구글이 선점하지 못했다는 점과 출현시기가 뜻밖이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구글이 딥마인드를 인수해 알파고를 선보이며 딥러닝(Deep Learning)의 위력을 과시했던 그 순간부터 챗GPT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지금 챗GPT가 받고 있는 모든 관심은 구글의 몫이 되리라는 게 보통의 예상이었다. 스마트폰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노키아를 비롯한 휴대폰 제조업체에서 나올 것으로 믿겼던 것과 비슷하다. 아이폰이 검은 백조였던 것은 이 믿음을 완전히 깨버렸기 때문이다.
출현 시기도 그 때와 지금이 비슷하다. 결국은 스마트폰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들 아직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할 때 아이폰이 나온 것처럼 챗GPT도 보통의 예상을 깨고 느닷없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검은 백조’의 파고에 올라타라
‘검은 백조’는 잠잠하던 시장을 크게 흔들어버린다. 거친 파도와 같다. 누군가는 휩쓸려 파괴되고 누군가는 그 위에서 파도타기를 하며 즐길 수 있다. 칼을 어떻게 쓸 것인지의 문제가 여기서 나온다. 분명한 것은 파도에 맞서면 아무리 큰 배도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파도에 올라타면 작은 판자 조각 위에서도 그 파도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라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정 대표와 이스트소프트는 운이 좋은 듯하다. AI 시대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 늦지 않게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선택한 아이템이 챗GPT 등과 상생하기에 마땅하다.
■“알파고 져라”며 이세돌 응원했던 이유
정 대표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격돌할 때 이세돌 9단이 이기기를 간절히 응원했다. 이세돌 9단을 응원했던 보통 사람들처럼 그의 팬이거나 기계가 인간을 이기는 게 싫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다 ‘사업’ 때문이었다.
정 대표는 대학 때 수학을 전공했고 테크 기업인 이스트소프트에서 일했기 때문에 신기술과 그 트렌드에 대해 비교적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딥러닝을 처음 대한 것은 2015년이었다. 기술에 대해 탄복했지만 너무 늦게 알았다는 것에 자책했다. 곧바로 관련 팀을 꾸렸다. 이 때는 대표이사가 되기 전이었다. 그런데 한 해 뒤 대표이사가 되고 알파고가 나온 것이다. 혼자서 속으로 큰 일 났다고 생각했다.
만약 알파고가 이긴다면 AI 열풍이 불 텐데 준비된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알파고 승리 뒤에 잠복한 ‘검은 백조’
정 대표는 딥러닝이 세상에 소개된 뒤 2~3년 뒤에야 이를 알게 됐지만 다행히 이 기술이 현실에 응용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알파고 위력은 엄청났지만 아직은 바둑에만 영향을 미쳤다. 준비할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정 대표가 첫 번째로 선택한 아이템은 ‘가상 피팅’이다. 그중에서도 안경테가 대상이다. 안경 구매 경험은 지금까지 바뀐 게 없다. 안경원에 들러 점주가 추천하는 몇 가지 테 가운데 하나를 짧은 시간에 선택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온라인으로 가상 피팅을 할 수 있다면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구현하느냐다. 정 대표는 딥러닝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가상 피팅을 위해서는 2차원의 평면 이미지를 3차원의 입체 영상으로 바꿔야 한다. 이 과정에 딥러닝 기술이 적용된다. 이렇게 탄생한 서비스가 아이웨어 가상피팅 커머스 ‘라운즈’다. 2018년부터 이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계기로 뛰어들게 된 ‘AI 휴먼’
라운즈에 이어 2020년에는 ‘AI 휴먼’에 도전장을 던졌다. 코로나19가 확산되고 비대면 비즈니스가 유행하면서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휴먼 인터페이스’가 부상할 것으로 판단했다. 2년 준비 끝에 2022년부터 상품이 나왔다.
이스트소프트의 ‘AI 휴먼’에는 두 종류가 있다. 실제 유명 인물을 복제한 ‘AI 클론’과 현실에는 없는 완전히 새롭게 창조한 ‘AI 페르소나’가 그것이다. 이스트소프트의 ‘AI 휴먼’은 지금까지 나온 ‘가상 인간’과는 만드는 방식이 다르다. 컴퓨터 그래픽(CG)이 아니라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목소리 생성 인공지능 기술(TTS)과 얼굴 생성 인공지능 기술(STF)이 활용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AI 휴먼은 이미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유명학원 일타강사를 모델로 한 AI 클론의 강의가 실제로 판매되고 있으며, 실제 아나운서를 모델로 한 AI 클론도 활동을 하고 있다. AI 페르소나가 인간 대신 투입된 사례도 많다.
■챗GPT 나오니 ‘AI 휴먼’ 더 눈에 띄네
과거 가상인간이 잠깐 관심을 끌고 만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CG 제작비용이 비싸고,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콘텐츠(두뇌)가 부족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AI 휴먼’이 눈에 띄는 것은 이 약점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정 대표에게 챗GPT 등의 출현이 반가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챗GPT 등의 발전으로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가 현실이 될 날이 아주 멀지 않았는데, 챗GPT 등이 비서의 두뇌 역할을 한다면, 우리가 만든 AI 휴먼은 그 비서에게 형상(육체)을 입히는 것입니다. 형상은 그러나 단순한 껍데기일 수만은 없고, 정밀한 사실감을 구현해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니 챗GPT와 ‘AI 휴먼’은 시의적절하고도 절묘한 궁합인 것이다.
챗GPT가 ‘검은 백조’라 할 때, 이로 인해 위기에 처할 비즈니스가 있는가 하면, AI반도체처럼 이로 인해 더 부상할 비즈니스도 있을 터인데, ‘AI 휴먼’의 경우 위협 요소보다는 기회 요소가 더 큰 비즈니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챗GPT에 깔리는 게 아니라 그 어깨에 올라탈 수 있다는 의미다.
■스타트업 창업자는 아니지만, 그런 심정으로...
정 대표는 스타트업 창업자는 아니다. 벤처기업에 병역특례로 입사해 18년 만에 대표에 오른 성공한 전문경영인이지만 결국 ‘월급쟁이’다.
하지만 자세만큼은 스타트업 창업자와 비슷하다.
2016년 대표가 된 이후, 보안 등을 비롯해 이스트소프트가 오랫동안 해와 성숙해지고 자생력을 갖은 사업은 각각 별도 법인으로 분리시키고, 자신이 맡은 본사는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신사업에 몰두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검은 백조’를 무시하지 않고 그걸 기회로 삼고자 하는 성향을 가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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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0억 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행한 것도 그 일환이다. 고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기가 위축되고 다들 몸을 사리고 있지만 지금은 투자를 해야 할 시기라고 본 것이다. 그 과실은 검은 백조가 높이 날아오를 때 보일 터이다.
덧붙이는 말씀: 정상원 이스트소프트 대표가 다음 인터뷰 대상으로 추천한 사람은 올인원 채용관리 솔루션 ‘그리팅’을 운영하는 두들린의 이태규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