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서 기원한 인류, 어쩌다 이렇게 추운 곳에서 살게 됐을까

불과 도구의 사용, 환경 적응 능력, 유전적 변이 등으로 추위에 적응

과학입력 :2023/01/27 14:48

현생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해 약 7만년 전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다. 현생 인류의 친척인 호미닌 중 일부는 우리에 앞서 일찍이 추운 북반구에 살며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이들도 출발은 아프리카였다.

사람은 따뜻한 곳에서 살던 동물이라는 말이다. 지금도 사람을 제외한 모든 영장류는 아프리카 같은 열대나 아열대 지역에 산다. 인류 역시 추운 기후에서 살도록 완전히 진화하지는 못 했다. 요 몇일 사이 강추위에 충분히 실감했을 것이다.

[서울=뉴시스] 백동현 기자 = 전날 눈이 내리고 다시 한파가 찾아온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사거리 인근에서 시민들이 두터운 옷을 입고 이동하고 있다. 2022.12.22. livertrent@newsis.com

그럼에도 오늘날 인류는 지구 모든 곳에 흩어져 러시아 시베리아나 북유럽, 그린란드 같은 지역에도 정착했다. 추운 지역에선 기온이 낮아 소중한 에너지를 체온 유지에 써야 한다.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든 겨울이 주기적으로 돌아오고, 낮이 짧아 수렵이나 사냥할 시간도 적다.

하지만 어쨌건 인간은 추위에 적응해 냈다. 비결은 불의 사용, 도구와 기술의 발달, 사회적 협력, 약간의 유전적 변화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 인류 친척 호미닌부터 시작된 추위 적응

영국 리버풀존무어대학 로라 벅 교수는 과학매체 '더 컨버세이션'에 "영국 남부  복스그로브 유적지에 대한 연구 등을 통해 호미닌이 50만 년 전에도 불과 도구를 쓰고, 사냥을 했음을 알 수 있다"라고 밝혔다. 여기에선 잘라진 흔적이 남은 뼈와 나무 창으로 뚫린 것으로 보이는 말의 어깨뼈 등이 나왔다.

고기는 칼로리가 높고 지방 함유량이 풍부하며, 동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건 얻을 수 있어 추운 지방에서 살아남는데 도움이 된다. 석기로 고기를 찢거나 자를 수 있고, 불로 익힐 수 있다는 것은 호미닌이 고기를 먹이로 삼는 계기가 됐다. 적어도 알려진 가장 오래된 석기가 발견된 260만년 전부터 호미닌은 이러한 변화를 겪어온 셈이다.

약 40만년 전에서 4만년 전까지 유럽과 아시아에서 살며 여러 번의 빙하기를 겪은 네안데르탈인은 체온 유지에 적합하도록 작고 다부진 체격을 가졌다. 또 이들은 동물의 가죽으로 옷과 움막을 짓고, 불을 써서 요리를 하며 나무에서 접착 성분을 얻어 도구를 만드는 등 기술적으로도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 현생 인류의 적응

현생 인류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추위에 적응해 나갔다. 캘리포니아과학원의 2000년 연구에 따르면, 인류는 자외선을 통한 비타민D 합성 능력을 높이기 위해 밝은 피부색을 갖게 되었다. 또 2010년 '네이처'에 실린 덴마크 연구진 연구에 따르면, 그린란드 영구동토층에서 발견된 4천년 전 사람의 머리카락에서 체온 생성과 유지에 적합한 다부진 체격으로 만드는 유전적 변화가 포착됐다.

인류는 친척 인류와의 교배를 통해 추위를 견디는데 도움이 되는 유전자를 얻기도 했다. 티벳 사람들은 고지대의 추위에 적응하는데 적합한 EPAS1이란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이는 시베리아 지역에 살았던 호미닌 데니소바인에게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현생인류 유전자 중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에서 유래한 유전자 비중 (자료=노벨위원회)

또 그린란드 이누잇 사람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체를 비교한 결과, 체지방에서 열을 일으키는데 관여하는 TBX15와 WARS2라는 유전자에서서 유사성을 보였다. 이 역시 데니소바인 등 다른 호미닌에게서 얻은 것으로 보인다.

캘리포니아주립 어바인대학 연구진은 2004년 미토콘드리아DNA의 변이가 현생 인류의 추위 적응에 기여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미토콘드리아DNA는 세포 내 소기관으로 에너지와 열을 생산하는 공장 역할을 한다. 추운 지역으로 이주한 인류는 아프리카의 동료와는 달리 에너지인 ATP 생산을 줄이고 열을 늘이는 변이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 적응하는 능력이 최대 무기 

하지만 이런 유전적 변화보다는 불과 도구를 사용하고 고기를 먹는 등 환경 변화에 맞춰 기술적, 사회적으로 적응하는 능력이 인류의 추위 적응에 더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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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영국 캠브리지대학 연구진이 '네이처'에 실은 논문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영장류에 비해 기후 변화에 대응한 두개골 변이 폭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환경에 적응하는 인간의 능력이 기후 변화에 따른 위험을 경감하고, 진화의 열쇠 역할을 했기 떄문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인간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생물학적 진화보다는 빠르게 채택할 수 있는 행동 변화에 집중하며 추운 지역까지 영역을 넓힐 수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