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향 AI반도체 글로벌 리더 꿈꾼다"

[이균성의 스타트업 스토리]⑦퓨리오사AI 백준호 대표

중기/스타트업입력 :2022/12/22 11:05    수정: 2022/12/22 15:50

꿈은 삶의 이정표이자 동력이다. 꿈은 곧 미래의 삶이다. 꿈은 그래서 소중하다. 꿈은 사람마다 다르고 다른 만큼 다채롭다. 스타트업이 꾸는 꿈도 그럴 것이다. 소중하고 다채롭다. ‘이균성의 스타트업 스토리’는 누군가의 꿈 이야기다. 꿈꾸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꿈꾸는 사람을 소개하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된다. [편집자주]

“데이터센터향 AI반도체 글로벌 리더 꿈꾼다”

애플은 1984년에 처음 매킨토시를 출시하면서 영상광고를 통해 “당신은 왜 1984가 1984가 되지 않을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고 웅변했다. 뒤의 1984는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이 쓴 그 ‘1984’를 의미한다.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그런데 이는 또 IBM이 지배해오던 중앙집중형 슈퍼컴퓨터에 대한 은유이기도 했다. IBM의 슈퍼컴퓨터를 ‘1984’의 빅브라더에 빗대 설명하려 했던 것이다.

이 광고는 매킨토시로 상징되는 한 여성이 빅브라더의 세뇌 영상 화면에 커다란 망치를 날려 박살내는 장면으로 끝난다. 컴퓨터를 모든 개인의 책상에 올려놓게 함으로써 IBM 세상(빅브라더)을 끝장내겠다는 선언이었던 거다.

매킨토시는 그렇게 비장한 결기로 태어났다.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

AI 반도체 분야에서 주목받는 스타트업인 퓨리오사AI와 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백준호 대표한테서는 그런 결기가 느껴진다. 회사와 제품의 이름부터 백 대표의 또렷한 눈빛까지 커다란 망치를 빙빙 돌리다 힘껏 내던져 빅브라더를 박살내는 여전사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마치 전쟁터에 임하는 전사들과 같다.

■ 회사 이름이 왜 하필 ‘미쳐 날뛰는’인가

퓨리오사(furiosa)는 스페인어로 격노한, 미쳐 날뛰는, 격렬한, 맹렬한 등의 뜻을 가진 형용사 퓨리오소(furioso)의 단수 여성형이다. 지금껏 적지 않은 회사를 봐왔지만 회사 이름을 이렇게 거칠게 지은 경우는 처음이다.

퓨리오사는 스페인어 형용사이기도 하지만 2015년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의 배경은 핵전쟁으로 멸망한 22세기. 얼마 남지 않은 물과 기름을 차지한 독재자 임모탄 조가 살아남은 인류를 지배한다. 퓨리오사는 원래 노예였다가 임모탄 조 휘하의 사령관까지 올라갔지만 그의 폭정에 반발하고 인류 생존의 열쇠를 쥔 임모탄 부인들과 탈출을 시도한다.

퓨리오사AI 사무실에 있는 자전거

백 대표는 “창업을 고민하였을 때 그 영화를 봤고, 스타트업의 운명이 어쩌면 퓨리오사와 같다는 생각을 해 회사 이름까지 그렇게 지었다”며 “기존 질서 혹은 구조에서 허점과 틈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는 게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있다면, 퓨리오사가 하려는 일도 같은 맥락 속에 있다”고 설명했다.

■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에 참전하다

반도체는 크게 메모리와 비메모리(시스템)로 나뉜다. 메모리 반도체의 용도는 주로 데이터와 정보를 저장하는 데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각종 연산, 제어, 정보처리 등을 할 때 쓰인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메모리가 3분의 1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비메모리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메모리의 강자이며 이 시장의 50~60%를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메모리보다 2배 이상 큰 비메모리에서는 점유율이 고작 2~3%에 불과할 정도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특히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급진전되면서 각국이 사활을 건 전쟁터가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생존을 걸고 갈등을 벌이고 있는 분야가 이 곳이다.

퓨리오사AI 직원들이 회의실에서 토론하고 있다

AI 반도체는 시스템 반도체 중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6년 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은 뒤 세상의 모든 서비스와 기술에 AI가 탑재돼 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AI 서비스는 끝없이 진화해야 하고 각 기업들은 이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만 하는 환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백 대표는 “AI가 확산되면서 컴퓨터가 연산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하고 그에 최적화된 새로운 시스템 반도체도 필요해지게 됐다”며 “AMD와 삼성전자에서 엔지니어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 창업 5년 차에 엔비디아를 넘어서다

퓨리오사의 AI 반도체 제품 이름은 ‘워보이(Warboy)'다. 이 이름 또한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캐릭터에서 따왔다. 결기가 느껴진다. 놀라운 것은 창업 5년차에 만든 시제품이 엔비디아를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글로벌 AI반도체 대회 ‘MLPerf(엠엘퍼프)’ 추론분야에서 엔비디아의 ‘T4’를 넘어서는 성능 지표를 인정받은 것이다. 엠엘퍼프는 매년 열리는 AI반도체 벤치마크 대회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삼성전자·인텔·퀄컴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과 스탠퍼드·하버드 등 대학이 모여 설립한 비영리단체 ML커먼스가 주최한다. 퓨리오사AI는 2019년 아시아권 스타트업으로는 처음으로 엠엘퍼프에 등재되기도 했다.

2021년 대회에서는 워보이가 T4에 비해 이미지분류, 객체검출 처리속도 등에서 약 1.5배 가량 더 뛰어난 성능을 나타냈다.

퓨리오사AI가 개발한 인공지능반도체 '워보이'

백 대표는 “워보이가 엔비디아의 모든 제품보다 월등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제품 사이에서 어느 부분은 우리 제품이 앞선다는 것은, 스타트업으로서는 적지 않은 성과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 “설립 5년 만에 매출을 일으키게 됐어요”

워보이는 컴퓨터가 사진이나 영상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고 원하는 것을 찾아내 활용할 수 있는 데 최적으로 설계된 반도체다.

최근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통해 양산에 들어갔으며 이미 여러 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이팝소프트의 영어 교육 앱 ‘말해보카’에 구현되고 있는 AI 기능의 일부가 워보이의 도움을 받고 있다. OCR 기능 쪽이다. OCR은 광학식 문자판독장치를 말하는데 종이에 인쇄되거나 손으로 쓴 문자, 기호, 마크 등에 빛을 비추어 그 반사 광선을 전기 신호로 바꾸어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을 뜻한다. 책 페이지를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면 곧바로 텍스트로 전환해 휴대폰 화면에 표출해주는 식이다.

백 대표는 “워보이의 경우 ‘말해보카’ 외에도 CCTV 등 사진이나 영상을 활용한 AI 서비스에 특히 강점을 갖고 있지만,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자율주행, 라이브스트리밍 등 AI 서비스에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며 “이미 양산에 들어갔고 내년에는 상당한 매출을 일으키는 볼륨 생산에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전시회에 설치된 퓨리오사AI 부스

퓨리오사AI는 이를 위해 카카오엔터프라이즈와 데이터센터에 워보이를 탑재하기로 하는 협약을 맺고, 교통 금융 물류 의료 등 다양한 기업 고객의 AI 서비스에 이를 지원할 계획이다. 네이버와도 비슷한 협약을 추진중이다.

■ 시작도 끝도 글로벌을 지향하는 회사

퓨리오사AI는 글로벌 기업을 지향한다.

백 대표 스스로가 글로벌향이다. 그는 미국 조지아공과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으며 글로벌 반도체 업체인 AMD와 삼성전자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의 엔지니어로 도합 8년  가량을 근무한 경험을 갖고 있다. 지금은 직원이 90여명인데 애플, 퀄컴, AMD, 구글, 아마존 출신이 상당수 포진해 있는 상황이다.

퓨리오사AI 한 직원이 AI 반도체 설계에 몰입해 있다

최근에는 빌 레진스키 인텔 전 부사장과 탐 갤리번 웨스턴디지털 전 부사장을 영입하기도 했다. 글로벌 비즈니스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다. 레진스키 전 부사장은 인텔에서 약 30년간 근무하며 시스템온칩(SoC) 및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부문에서 제품기획, 영업, 마케팅 등을 총괄했다. 갤리번 전 부사장 역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웨스턴디지털 등 유수의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서 30년 이상 경력을 쌓았다. 레진스키 전 부사장은 북미 데이터센터 고객 요구사항을 파악해 제품 기획 및 마케팅을 추진하고, 갤리번 전 부사장은 북미 중심의 글로벌 세일즈를 총괄할 계획이라고 한다.

백 대표는 "(메모리 시장과 달리) AI반도체 시장은 자본의 싸움이 아니라 인텔리전스의 싸움이라고 본다“며 ”규모보다는 누가 더 혁신적인 프로세스와 관점을 세우느냐가 중요하고 그 점에서 기회가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 미래 대한민국 반도체 한 축 맡게 될 수도

반도체는 누가 뭐라 해도 한국의 대표 산업이다. 우리나라 수출의 2할을 반도체가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론도 없지는 않다. 시스템 반도체의 약점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는 게 국가적인 과제가 됐을 정도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취임 후 처음으로 찾아 갔던 곳이 퓨리오사AI다.

AI반도체는 키워야 하고, 퓨리오사AI는 그 상징이었던 셈이다. 퓨리오사AI가 미래 대한민국 반도체의 한 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백 대표는 “첫 제품이 5년 만에 양산 단계에 들어가고, 내년부터는 매출이 발생한다”며 “더 강력한 2세대 제품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백 대표는 그러나 “시스템반도체 사업은 옆으로 누운 L자 모양의 성장곡선을 그린다”며 “3세대 제품이 나오게 될 5년 뒤부터 폭발적인 볼륨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창업 이후 지금까지 총 900억 원을 투자 받아 개발에 몰두했지만 아직은 더 투자해야 하고 더 분투해야 하는 시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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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러면서도 “퓨리오사AI의 장기비전은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AI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의 눈빛과 투지는 퓨리오사처럼 맹렬하게 불타고 있었다.

덧붙이는 말씀: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가 다음 인터뷰 대상으로 추천한 사람은 산업용 인공지능 기업인 마키나락스 윤성호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