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언 반도체 한파 언제 풀리나...'상저하고' 전망

[2023 전망] 내년 매출 4.1% 역성장...설비투자 19% 감소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22/12/27 16:44    수정: 2022/12/27 17:00

지난 2년간 전례 없는 호황을 겪은 반도체 시장은 올해부터 수요가 감소세로 돌아서며 침체기를 맞고 있다. 메모리뿐만 아니라 파운드리(위탁생산),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까지 한파가 몰아치면서 내년 반도체 시장은 역성장이 전망된다. 이에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시설투자를 줄이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등 위기 탈출에 나섰다. 

반도체 생산 라인.(사진=삼성전자)

■ 내년 세계 반도체 매출 마이너스 4.1% 역성장 전망…'상저하고' 3분기 이후 반등 기대

올해 반도체 시장은 호황에서 급격하게 불황으로 바뀌며 그 어느때 보다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다. 

2020년부터 코로나19 특수로 슈퍼사이클을 누리던 반도체 시장은 올 하반기를 정점으로 혹한기에 접어들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지난 9월 전세계 반도체 판매 금액은 470억 달러(약 60조4천억원)로 지난해 같은 달(484억8천만 달러) 보다 3% 하락했다. 이는 2020년 1월 이후 2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를 기록한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올해 전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은 한자릿수 성장, 내년에는 역성장이 예상된다. 지난 11월 말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올해 전세계 반도체 시장이 전년 보다 4.4% 증가한 5천801억 달러가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이는 작년 반도체 매출이 26.2% 성장한 것과 대비된다.

내년 전세계 반도체 매출은 약 5천565억 달러(715조1천억원)로 올해 보다 4.1% 감소할 전망이다. 지난 8월만 하더라도 WSTS는 내년 반도체 시장 매출이 4.6%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3개월 만에 마이너스 전망치로 돌아섰다.

반도체 매출 감소 원인은 주요 수요처인 가전, TV, 스마트폰, 노트북 등의 세트 제품의 출하량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금리 인상 등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소비 시장은 침체기를 겪고 있다.

전세계 반도체 매출 2022년, 2023년 전망(자료=WSTS)

특히 메모리 반도체의 매출 감소가 가장 심각하다. 메모리 매출은 올해 전년 보다 12.6% 줄어든 1천344억 달러를 기록한 데 이어 내년에는 17% 가량 더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D램 점유율 3위인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 22일 1분기(2022년 9~11월) 실적발표에서 영업손실 2억900만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분기 기준 7년 만에 적자전환이다. 마이크론은 내년 2월까지 이어지는 2023회계연도 2분기엔 더 큰 손실이 발생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메모리 불황이 가시화된 것이다.

이에 국내 메모리 양대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4분기 실적 감소가 우려된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메모리 의존도가 높은 SK하이닉스가 올 4분기 1조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 메모리 가격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3분기 D램 고정거래가격이 전 분기보다 10~15% 가량 하락했다. 이에 따라 3분기 전세계 D램 매출은 181억8천700만 달러(23조3천억원)로 지난 2분기보다 28.9% 감소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의 감소폭이다. 낸드 플래시 또한 공급과잉으로 인해 3분기 평균판매단가(ASP)가 전분기 대비 18.3% 감소했고, 올 3분기 전세계 낸드 매출은 137억1천360만달러(17조6천억원)로 전 분기 대비 24.3% 줄었다.

삼성전자 14나노 DDR5 D램(사진=삼성전자)

파운드리 시장 또한 가동률 100% 시대가 끝났다. 지난 2년간 100%였던 파운드리 가동률은 지난 3분기 90%대로 감소했고, 4분기에 들어서자 80%대로 떨어졌다. 파운드리 1위 업체인 TSMC도 예외가 아니다. 대만 디지타임스, 대만경제일보 등은 4분기 TSMC의 고객사 주문량이 올 초보다 40~50% 줄었다고 보도했다. 스마트폰, TV, 태블릿, PC 노트북 등 세트 제품의 재고량 증가로 3분기 반도체 업체의 누적 재고량은 지난 1분기와 비교해 50% 이상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반도체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내년 3분기 이후 업황 반등을 기대하고 있다. 유안타증권은 "2023년 하반기 중 계절적 성수기에 따른 재고 재축적 수요와 공급 제한 효과가 발현되면서 반도체 업황이 완연하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 반도체 재고 쌓이자 시설투자 줄이고 감산 체제 돌입

반도체 수요가 줄고 재고가 쌓이자 주요 반도체 공급 업체들은 감산과 시설투자를 줄이며 역대급 긴축 경영에 나섰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내년 전세계 반도체 설비투자(CAPEX, 캐펙스)가 올해보다 19% 감소해 1천466억 달러(188조3천억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반도체 설비투자는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감소율이다.

전세계 반도체 설비투자(캐펙스) 전망 (자료=IC인사이츠)

SK하이닉스는 지난달 3분기 실적발표에서 내년에 투자 규모를 올해(10조원)보다 50% 이상 줄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금융 위기였던 2008~2009년 업계 시설투자 축소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마이크론은 내년 설비 투자액을 당초 계획보다 30% 이상 감축하고, 직원의 10%(4800명)를 줄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낸드 점유율 3위인 키옥시아도 지난 10월부터 웨이퍼 투입량을 30% 줄인다며 "현재 시장이 심각한 상태라 언제 개선될지 확신이 없다"고 밝혔다.

반면 메모리 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는 장기 수요 대응을 위해 반도체 투자를 줄이지 않고, 계획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증권가에서는 현재 메모리 업계 재고와 가격 하락세를 감안할 때, 삼성전자도 이르면 내년 1분기 이후 공급 조절에 나설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 업계도 시설투자를 줄인다. 인텔은 지난 27일 3분기 실적발표에서 내년 운영비용 중 30억달러를 절감하고, 2025년까지 80억~100억 달러 규모의 운영예산을 줄인다는 계획을 내놨다. 올해 설비투자는 기존 계획 대비 약 8% 하향 조정했다.

TSMC는 지난 10월 3분기 실적발표에서 올해 시설투자 규모를 연초에 400억~440억달러(약 56조~62조원)를 계획했지만, 10% 이상 하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UMC도 올해 계획된 시설투자 규모를 36억달러에서 30억달러(4조2천억원)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파운드리 업계는 최근 팹 가동률이 줄어든 만큼, 내년 시설투자 축소가 불가피해 보인다.

■ 글로벌 반도체 패권경쟁 심화…안보 자산 '반도체 산업' 살리기 특명

반도체가 '국가 경제안보 자산'으로 급부상한 가운데 공급망을 둘러싼 패권경쟁이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칩4 동맹(미국, 대만, 일본, 한국) 논의가 지속되고, 각 국가 정부는 반도체 생산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4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화상 회의에 참석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사진=AP통신)

미국은 지난 8월 공포된 반도체과학법(칩스법)을 통해 자국 내 설비투자하는 기업에 세액을 25% 감면해주고 있다. 대만은 현지 기업의 R&D(연구개발)·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기존 15%에서 25%로 높이는 개정안을 최근 발의했다. 중국은 향후 5년간 현지 반도체 기업에 1조위안(약 183조 3400억원)을 지원하는 패키지를 내년 1월 시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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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최근 토요타, 소니, 키옥시아, NTT, 소프트뱅크, NEC,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등 8개사가 연합한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에 700억엔(약 6천569억원) 보조금을 지원하며 자국 반도체 기술을 키우기 위해 나섰다. 라피더스는 IBM과 협력해 오는 2027년 2나노 공정 기반 칩 생산을 목표로 하는 만큼,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기술 개발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지난 27일 국회를 통과한 한국 반도체 특별법(반도체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은 제자리 걸음이다. 기업에 대해서만 공제율을 기존 6%에서 8%로 늘려주는 데 그쳤고,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은 기존과 동일하다. 이에 반도체 업계에서는 국내 반도체 경쟁력 저하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