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의료기관이 비급여 진료비용 등을 보고하고,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보건복지부는 비급여 보고제도의 세부적인 사항을 규정한 ‘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보고 및 공개에 관한 기준’ 고시를 1월25일까지 행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 2020년 12월 의료법 제45조의2 개정을 통해 도입된 ‘비급여 보고제도’의 시행을 위해 기존 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공개에 관한 기준 고시를 전면 개정한 것이다. 모든 의료기관이 비급여의 항목·기준·금액·진료내역 등을 주기적으로 보건복지부에 보고토록 한다는 내용이다.
보건복지부는 비급여 보고제도 시행을 통해 비급여 현황을 면밀히 파악해 이를 기반으로 관리 정책 수립을 지원하고, 의료소비자에 대한 비급여 정보 제공을 강화할 계획이다.
그간 보건복지부가 비급여 현황 파악과 비급여 관리 정책을 추진할 때 활용할 수 있었던 자료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실시하는 ‘진료비실태조사’였으나, 이는 표본조사로 비급여 항목별 진료 규모와 같은 상세한 정보를 얻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또 기존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를 통해 비급여 항목별 가격 정보만을 제공해, 환자가 특정 질환이나 수술·시술에 대한 총진료비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
비급여 보고제도를 통해 비급여 항목별 진료 규모, 진료 대상 질환 등을 파악하게 되면 기존의 자료들이 가지던 제한점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행정예고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2023년에는 이미 시행 중인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대상을 중심으로 보고를 실시한다.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항목 611개와 신의료기술(새로운 기술의 급여 여부 판단 前 비급여로 사용할 수 있는 단계) 등 61개 등 총 672개가 대상이다.
2024년부터는 2023년 대상 항목을 포함해 전체 비급여 규모의 약 9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주요 비급여들을 보고 대상(2023년 672개 + 치료적 비급여 436개 + 약제 100개 + 영양주사·예방접종·치과교정술·첩약 등 총 1천212개)으로 할 예정이다.
보고는 전체 의료기관이 대상이며 병원급은 반기별로 상반기에는 3월, 하반기에는 9월의 진료 내역을 각각 보고하며, 의원급은 1년에 한 번 3월의 진료 내역을 보고한다.
내용은 비급여 항목의 비용, 진료 건수, 진료 대상이 된 질환, 진료할 때 실시한 주 수술/시술의 명칭 등이며, 건강보험공단이 지정하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보고하되 필요한 경우 팩스로 제출할 수도 있다.
비급여 보고 내역에 진료비용이 포함돼 의료기관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누리집·앱상의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를 위한 별도의 자료 제출은 필요하지 않으나, 만약 보고 대상 기간(병원급 3월·9월, 의원급 3월) 중 진료내역이 없는 진료항목이 있는 경우 해당 항목에 대해 기존에 진료비용 공개를 위해 제출하던 사항(가격 등)을 별도로 제출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의료기관의 행정부담을 덜기 위해 보고에 필요한 자료를 자동으로 추출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원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개정안이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현장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고자 법령 개정에 준하는 40일의 행정예고 기간을 운영하고, 확정되면 2023년에 비급여 보고제도를 처음으로 시행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이번 행정 예고에 대해 의료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비급여 보고제도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직업수행의 자유 등 환자와 의료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부정하는 관치의료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우선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코로나19 상황이 종식된 이후 협의를 진행하고자 제안했음에도 비급여 통제 정책을 강행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의협은 비급여 정책 관련 의료법에 대한 위헌 확인 소송이 진행 중임에도 정부가 비급여 고시를 밀어붙이고 있다며, 특히 의료법 제45조의2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항목‧기준‧금액 등 비급여 진료비용의 보고 내역과 무관한 생년‧성별 등의 사항까지 공개하라는 것은 환자 개인의 정보를 보호하기는커녕 국가 정책의 명분으로 얼마든지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의료계는 환자의 진료정보를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하고 치료과정 일련의 정보 누설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의료인 직업윤리에 반하는 정책을 단호히 거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협은 비급여 제도는 건강보험제도 도입 당시 전 국민과 모든 의료기관을 강제로 편입시켜 저수가-저급여로 시작한 우리나라 의료수준이 지금의 의료선진국으로 오기까지 중대한 기여를 해왔음에도 비급여를 마치 비리와 사회악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통제하려 하고 있다며, 비급여 제도의 붕괴는 필수의료의 몰락보다 더 치명적인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이하 협의회)도 의료기관을 말살하는 것이라며 강행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협의회는 비급여 진료행위는 상대적으로 필수의료가 아닌 진료에 대해 의사-환자간 자율적인 선택에 따른 결정으로 이미 의료기관 내부 및 홈페이지에 진료비용을 환자가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고지하고 있음에도, 환자의 개인정보와 관련된 민감한 의료정보까지 수집·활용하겠다는 것은 개인의 기본권보다 관리 측면에서 비급여 통제를 우선시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정부의 ‘비급여 보고제도’ 강행이 헌법재판소의 당연지정제 합헌 결정의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고시를 통보하는 방식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고 일방적으로 강행할 경우 향후 의료계와의 소통과 정책협의체 기능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