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에 로봇이 배치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길 안내·물류 배송·방역 등 기존에 사람의 손을 빌려야 했던 일들을 로봇이 맡게 되면 사람은 의료서비스에 더 집중할 여유가 생길 것이다. 최근들어 로봇이 병원 곳곳을 누비는 영화 같은 일은 현실이 되고 있다.
한림대성심병원에는 타 병원에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원내에서 여러 임무를 수행 중인 서비스 로봇 28대가 그것이다. 이미 병원 곳곳을 누비고 있는 로봇들은 내년에는 72대로 늘어날 예정이다. 국내 최대 규모다.
병원에 로봇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를 다양하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의료서비스 수요를 증가시키고 의료 행위 말고도 돌봄 요구도 늘어나고 있다. 이미연 한림대성심병원 커맨드센터장은 “이를 수행할 의료진이 부족하고, 의료진들은 단순 반복 업무 비중이 높은데, 이는 의료진의 피로도를 가중시키고 사직률이 높이는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비스 로봇을 병원에서 활용하면 의료진이 환자에게 더 전문적인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여유가 확보된다”며 “로봇은 환자의 다양한 서비스 수용에도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에 따르면, 한림대성심병원에 도입된 서비스 로봇들은 안내·배송·방역·비대면 다학제·홈케어 등의 영역에서 역할을 맡고 있다. 우선 안내 로봇은 고령 및 외국인 환자를 대상으로 로봇이 직접 동행하는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의료진이 통합 관제 시스템을 통해 목적지를 입력하면 환자는 로봇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도록 설계·운영되고 있다.
기존에는 원내에서 약·검체·물품 등을 의료진이 직접 운반해야 했다. 현재 한림대성심병원 내 배송 로봇은 이런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인력이 부족한 야간 시간대에 활용도가 높다는 게 병원의 설명이다.
방역 로봇은 바닥을 멸균하거나 헤파필터로 공기 중 세균과 바이러스 제거하는 역할을 수행 중이다. 면역력이 약한 암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동이나 감염병 위험성이 높은 호흡기 및 감염 환자 병동에서 방역을 수행 중이다.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시 환자가 거주하던 공간에 투입돼 즉각 방역을 수행했다. 이로 인해 의료진과 환자의 불안감이 상당부분 해소됐다는 것.
특히 비대면 다학제 로봇은 입원 중인 환자가 갑자기 급격한 상태 변화를 맞게 됐을 때를 대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병원 내 스마트 병동에 입원한 심혈관계 질환 환자들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부착하고 있다. 환자의 상태는 간호사 스테이션과 로봇에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만약 환자 상태에 문제가 생기면 로봇은 가장 먼저 환자에게 가 의료진들에게 화상 카메라로 환자의 상태를 보여주게 된다.
이를 통해 현장 의료진과 멀리 있는 전문 의료진이 환자를 살필 수 있도록 하는 긴급 대처가 가능하다. 코로나19 등 감염 위험이 존재할 때는 로봇을 통한 비대면 면담과 평상시 환자 병상으로 찾아가서 각종 설명 동영상을 보여주는 기능도 수행 중이다.
홈케어 로봇도 눈에 띈다. 병원에서 퇴원 후 의료인의 관리가 필요한 환자가 서비스 대상이다. 재택 환자 시범 사업에서 주로 사용되는데, 의료진-환자 간 전화 대신 로봇을 통한 화상 통화가 이뤄지고 있다. 의료진은 환자 상황을 파악해 여러 설명 동영상을 전송하고 복약시간 알림 등의 기능도 활용하고 있다. 병원은 내년 가정에서 심전도 모니터링 중 이상 상황 발생을 감지했을 때 로봇이 환자 상황을 파악, 응급 이송 여부를 결정하는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한림대성심병원내 설치된 통합 관제 시스템을 통해 로봇 4개 제조사의 5종, 72대를 통합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 한림대성심병원 시작해 원내 서비스 로봇 확산 기대
한림대성심병원은 지난 7월 서비스 로봇을 도입했다. 병원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로봇산업진흥원에서 주관한 ‘AI·5G 기반 대규모 로봇융합 모델 실증 사업’에 참여했다. 병원은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과 빅웨이브로보틱스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선정돼 ‘고령화 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의료진 보조 및 긴급대응 로봇’ 실증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올해는 5종의 로봇을 병원에 도입, 로봇 사용 사례를 발굴하는 한편, 로봇 통합 관제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내년에는 5G 기반의 로봇 제어 및 다종 로봇 간 융합모델을 구축한다는 게 병원의 목표다.
일부 대학병원에 서비스 로봇이 도입된 적은 있지만 한림대성심병원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국내 최대 규모 사업이기 때문이다. 김민교 빅웨이브로보틱스 대표는 “기존 시범사업 수준에서 탈피 그간 여러 의료기관 내 도입 경험을 총 망라한 성공 사례”라고 설명했다.
물론 병원에 서비스 로봇 도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려면 법률과 제도 등 해결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때문에 한림대성심병원과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은 서비스 로봇을 운영하면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확대 도입 방안을 짜고 있다. 두 기관은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해 서비스 로봇 도입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를 해결하고, 관련 규제 발굴, 수요처 발굴과 컨설팅 등도 실시하고 있다.
일례로 전문가 협의체는 환자 의료 데이터 연동을 통한 병원 내 로봇을 운영하려면 의료법 제 19조 1항,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등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밖에도 비상정지 버튼의 표준화와 단체표준안 제정 필요성도 제안했다.
관련해 정원중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팀장은 “병원에서는 긴급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데, 그 경우 비상버튼을 통해 로봇이 즉각 멈춰야 한다”며 “이 버튼을 어떻게 만들지가 관건인데, 수요자 관점에서 표준안을 제시하면 국내 표준(KS) 뿐만 아니라 국제 표준(ISO 13482)도 인증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현대 경기도 미래성장정책관은 “로봇은 미래 산업의 핵심이자 사회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며 “로봇은 보완자로써 일상과 결합한 서비스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경호 한림대성심병원장도 “병원 내 서비스 로봇 도입은 의료진 업무를 경감시켜 그 여력을 환자에 쓸 수 있고, 우린 실제로 의료 질 향상을 체감하고 있다”며 “로봇을 통해 새로운 의료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