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3년 말 공중전기통신사업법으로 도입된 현재 전기통신사업법을 전면개정하기 위한 논의가 본격 시작됐다.
가정 내 유선전화가 주요 통신수단인 시절 마련된 통신설비 중심의 법제는 네트워크 인프라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큰 힘이 됐지만 경제 사회 모든 분야의 디지털화가 급속히 이뤄지는 최근의 환경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같은 점을 고려해 지난 7월 사업법 개정 전문가포럼을 시작한 뒤 연내 전면개정안을 마련키로 했고, 29일 서울SC컨벤션센터에서 토론회를 열고 개정방향을 공유했다.
법 개정 방향의 주요 목적은 과거 민간경쟁을 통한 기간통신서비스의 공급 확대라는 법 취지를 현재 디지털 사회 환경에 맞게 통신서비스의 핵심 인프라 기능을 강조하는 것이다.
개정방안 발표를 맡은 이민석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경쟁정책연구실장은 “통신시장의 환경 변화에 맞춰 법의 명칭, 목적, 구조 등 제도의 틀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면서 "기존 질서를 존중하면서도 디지털 시대로 변화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사업법 개정 방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주요 개정 방향으로 제시한 이슈는 법률 명칭 등 법 체계 개편을 비롯해 ▲플랫폼 자율규제 ▲새로운 통신산업 규제완화 ▲망 이용기본 원칙 ▲필수설비와 알뜰폰 제도 ▲디지털 안전 확보 등이다.
■ 디지털서비스법, 디지털통신법...
우선 법의 명칭을 ’디지털 경제 사회 구현을 위한 통신 서비스 및 기반에 관한 법률‘로 변경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약칭으로 디지털서비스법 또는 디지털통신법 등 어떤 것을 택할 지는 결정하지 않았다. 현행 법명을 유지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다만 한국전기통신공사, 체신부 지정 전기통신사업자 중심의 통신사업 경쟁원리로 시작된 기존 법률 체계를 디지털 경제 시대에도 통신서비스가 핵심 인프라가 기능하도록 한다는 목적이다.
전기통신역무 같은 일본식 차용 표현은 우선적으로 전기통신서비스와 같이 고친다는 방침이다. 또 기존의 기간통신역무는 네트워크서비스 또는 전송서비스, 부가통신역무는 정보서비스로 고친다.
현재 법체계에서 빠져있는 IoT도 전기통신서비스(전기통신역무)에 포함되도록 정의를 명확하게 하고, 정보서비스(부가통신역무) 정의도 보다 구체화한다는 방침이다.
■ 플랫폼은 자율규제...新통신산업은 규제완화
플랫폼 산업은 자율규제를 우선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입법규제로는 시장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이유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사업자의 자발적인 자율규제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과 자율규제 촉진을 위한 정부의 지원시책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논의됐다.
단,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전문가포럼 외에 이 내용은 자율규제 관련 TF에서 별도로 검토중인 사안으로 구체적 방향까지는 제시되지 않았다.
네트워크 규제 완화도 몇가지 이슈가 제시됐다. 우선 이음5G(특화망) 사업자에는 이용약관 신고 의무를 면제해 사업자 부담을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또 매출 300억원을 초과하는 기간통신사는 휴대폰 제조나 네트워크 공사 등을 겸엄하고자 할 때 장관 승인이 필요한 상황이나 IoT 서비스 활성화에 따라 통신기기제조업은 승인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방안을 내놨다.
지방자치단체가 비영리목적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기간통신사업 등록을 허용한다는 계획이다. 중복투자나 민간의 투자유인 저해방지를 위해 설비 신규 투자액이 일정규모 이상인 경우 사업 적합성 평가를 받도록 하고, 규제완화 부작용 방지책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 망 중립성 법제화...알뜰폰 제도 개편
현재 자율적 규제 방안인 가이드라인 형태로 규정된 망 중립성을 법률로 규정한다는 계획이다. 세부적인 내용은 현행 가이드라인을 유지하고 주요 원칙을 법률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
한국철도공사와 도시철도 운영자를 필수설비 의무제공기관으로 추가 지정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차세대 망 구축 과정에서 설비제공자와 이용자 간 설비제공 관련 갈등이 발생하고 잇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알뜰폰은 도매제공 의무 제도의 일몰제를 폐지한다는 방침이다. 알뜰폰의 경쟁력을 높이고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또 법률상 대가산정 원칙도 삭제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도매대가 산정원칙은 소매요금할인방식으로 정하고 있는데, 원가기반 방식 대비 대가를 충분히 낮추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 디지털 안정성 확보
디지털 서비스의 안정성 확보는 네트워크와 플랫폼으로 나눠서 논의됐다.
우선 네트워크 안정성 확보는 기존 기간통신사업자의 안정성 확보 노력 의무를 명시한다는 방침이다. 초연결 시대 국가 핵심 인프라로서 통신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망 장애 사고 등으로 실효성 있는 보호와 중단 없는 서비스 제공을 명문화팔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기간통신사의 기술적 관리적 조치 의무를 구체화하고 이행실적 제출 요청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또 매년 서비스 안정성 관련 조치 보고서를 공개하도록 규정한다.
디지털 플랫폼 서비스의 경우에도 기존 전기통신사업법에 서비스 안정성 의무가 마련돼 있지만 장애를 사전에 예방하기 어렵고 해외사업자의 경우에는 지정된 국내 대리인의 업무범위가 제한되 실제 법집행에 어려움이 있다.
이같은 점을 고려해 의무 사업자 지정을 위한 통계 자료 요청 근거를 마련하고, 부가통신사의 서비스 안정성 확보와 관련한 자료 제출 의무를 규정키로 했다. 또 국내 대리인의 업무 범위에 서비스 안정성 확보를 위한 자료제출 의무를 명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 통신 서비스 이용자 보호
통신서비스의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보편적서비스의 정의를 새로 고친다. 스마트폰이 사실상 보편적 통신서비스의 범주에 들어섰고, 국민의 많은 생활이 모바일 앱과 디지털 콘텐츠로 확대되는 경향을 고려한 조치다.
아울러 디지털 정보 접근 능력이 중요해지면서 정보격차를 보편적서비스의 내용을 결정할 때 고려한다는 방침이다.
분실 도난 단말기의 신고해지나 전화번호 변경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용자가 정기적으로 가입할 수 있는 최적의 요금정보를 제공받게 하는 방안도 법제화 논의에 포함됐다.
이밖에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하는 유보신고제에서 이용약관 신고 반려 사유에 정당한 사유 없이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경우를 추가한다.
■ 지자체 자가망 허용 반대 뜻 모여
이날은 실제 전면개정안 초안이 아니라 개정 방향 정도만 공유됐다. 때문에 실제 법안이 마련되면 입법 절차를 위한 공개토론회와 입법예고 등의 여러 논의 단계를 밟게 된다.
그럼에도 개정 방향만 공유된 가운데 지자체 기간통신사업 등록 허용에 대해 패널 토론에서 반대 논의가 이어졌다.
송시강 홍익대 교수는 “KT를 민영화하면서 전기통신사업을 시장에 맡기면서 지자체는 사업 등록을 못 하게 하는 환경이 달라진 게 없다”며 “사업법 전면개정에 굳이 이 조항이 포함되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의 윤상필 실장은 “해외 주요 국가들은 공공자금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제한해 시장의 왜곡을 방지하고 민간의 효율적 경영을 통한 망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자체의 민간 시장 진입이란 점은 통신업계가 매우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 망 중립성 법제화 필요한가
망 중립성에 관한 내용을 법조문에 담는 점에도 이견이 많이 나왔다.
미디어미래연구소의 권오상 선임센터장은 “기존 가이드라인이 작동하고 있는데 법률 안으로 굳이 들어올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권남훈 건국대 교수 역시 “가이드라인이 자율규제에 가까운 형식이 됐는데 규제 강도가 강해지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윤상필 실장은 “기존 체계에서 충분히 규율이 가능한 상황에서의 법제화는 과도한 규제 도입에 해당한다”며 “향후 통신망 고도화를 위한 투자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을 고려하면 망중립성 보다는 오히려 망의 이용과 제공에 대한 공정원칙의 법제화가 더욱 시급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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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강 교수는 “망 중립성을 법안에 담더라도 최소한의 원칙만 담아야 논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역무 분류에 대한 의견이 눈길을 끈다. 이를테면 인터넷데이터센터(IDC)는 현재 부가통신에 속하는데 기간통신으로 보는 것이 맞지 않냐는 논의가 나왔다. 또 이음5G 활성화도 필요하지만 같은 B2B 사업이라면 기존 통신사의 약관도 함께 면제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