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삶의 이정표이자 동력이다. 꿈은 곧 미래의 삶이다. 꿈은 그래서 소중하다. 꿈은 사람마다 다르고 다른 만큼 다채롭다. 스타트업이 꾸는 꿈도 그럴 것이다. 소중하고 다채롭다. ‘이균성의 스타트업 스토리’는 누군가의 꿈 이야기다. 꿈꾸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꿈꾸는 사람을 소개하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된다.[편집자주]
갈매기 조나단처럼 AI 飛行을 꿈꿉니다
박외진 아크릴 대표는 기업가 중에 스티브 잡스를 존경한다. 그런데 존경의 이유가 좀 남다르다. 잡스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가 보여준 혁신의 사례에 탄복한다. 박 대표는 그러나 결과로서의 혁신의 사례보다 그 과정에 있었던 ‘외로움’과 ‘고민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것에 더 공감하는 쪽이다.
창업의 계기도 남다르다. 대학원 다닐 때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회’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그 결과가 ‘내가 다닐 수 있는 회사’를 직접 만들어보자는 것이 됐다. 사회에 나를 끼워 맞추기보다 나의 본질의 한계를 정하지 않고 확장시킬 수 있는 길을 고민하다 창업을 택한 셈이다.
박 대표의 꿈은 그래서 ‘한계를 정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자유’일지도 모르겠다. 미국 작가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처럼. 소설에서 대개의 갈매기에겐 비행(飛行)이 먹이를 찾기 위한 방법에 불과했지만, 조나단에게는 먹는 것보다 비행 그 자체가 중요하다. 박 대표에겐 인공지능(AI) 비즈니스가 그렇다. 한계가 없고 포기할 수 없는 자유로운 비행.
■소설 ‘갈매기의 꿈’과 머신러닝옵스 ‘조나단’
‘갈매기의 꿈’은 갈매기를 주인공으로 한 우화소설이다. 주인공인 조나단 리빙스턴은 단지 먹이를 구하기 위해 하늘을 나는 다른 갈매기와는 달리 비행 그 자체를 사랑하는 갈매기다. 갈매기의 비행은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자아실현’을 은유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은 그걸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박 대표에겐 이 책이 인생 지침서가 됐다. 이 책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셈이다. 책에 나오는 “완벽한 속도란 그곳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야.”란 문장에서 특히 큰 영감을 얻었다. 최고의 비행을 위한 완벽한 속도는 이미 모든 갈매기 안에 있기 때문에 갈매기는 수련을 통해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다. 인생에 있어 ‘진정한 자유’와 ‘자아실현’도 그와 비슷하다고 보는 거다.
아크릴이 주력 제품인 머신러닝옵스(MLOps)에 ‘조나단’이란 이름을 단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특히 창업멤버인 최고기술책임자(CTO)의 영문이름이 조나단이기도 하다. 조나단은 박 대표와 아크릴 멤버들에겐 ‘진정한 자유’와 ‘자아실현’을 위한 비행기와 같은 셈이다. 물론 그걸 이용하는 고객도 함께 탑승시킬.
■감성 AI를 향한 13년 노력이 집대성된 MLOps
아크릴은 2011년 창업할 때부터 감성(感性)에 집중해왔다. 인간의 감성은 복잡 미묘하다. 인터넷 공간에는 수많은 콘텐츠가 있고, 그 콘텐츠에는 복잡 미묘한 감성이 복선처럼 숨겨져 있다. 이를 찾아내고 분류할 수 있다면 온라인 광고와 마케팅을 혁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크릴의 첫 번째 사업 아이템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감성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인 ‘MoM’을 선보인 것이다. ‘MoM’은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후 아크릴의 기술진화 방향이 된다. 박 대표는 “인공지능이 사람과 같은 기계를 만들어간다고 했을 때, 기계와 사람의 대표적인 차이는 감성”이라며 “아크릴은 감성에 집중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감성 인공지능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감성인식엔진으로 출발한 사업은 2016년 통합 인공지능 플랫폼인 '조나단 1.0'을 출시하면서 지금의 틀을 본격적으로 갖추기 시작한다. 현재의 조나단은 딥러닝 라이브러리인 ‘조나단 인텔리전스’, 머신러닝 개발 및 운영 지원 서비스 ‘조나단 플라이트베이스’, 인공지능 학습에 적합한 데이터를 생성해주는 ‘조나단 마커’, 빅데이터 수집 및 분석 서비스인 ‘조나단 데이터스코프’ 등 4가지의 솔루션으로 확장돼 있는 상태다.
박 대표는 “MLOps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확보하는 것은 도전적인 일이지만, 아크릴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업력이 오래되고, SK C&C 및 LG전자가 전략주주로 있기 때문에 성공적인 사업경험을 지속적으로 축적해갈 것”이라 말했다.
■“국내 AI 프로젝트에 문제점도 많아요”
박 대표는 십 수 년째 AI 사업을 해오면서 아쉬움도 많이 느꼈다고 한다. 무엇보다 AI를 구축하려는 곳에서 AI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AI는 한 번 만들면 형태가 결정되는 건물을 짓는 일과는 다르다. 처음 만들어진 형태 못지않게 그것을 지속적으로 운용하며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박 대표는 그런 점에서 “AI는 폼만 내는 장식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고 설명했다.
AI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라고 박 대표는 덧붙였다. “전문가 한두 명 고용하면 AI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데이터는 어차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구요. 하지만 AI는 잠깐 투자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장기적으로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관점에서 본질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며 사업을 진행시켜야 하죠.”
박 대표는 특히 “AI 프로젝트도 시스템통합(SI) 방식으로 솔루션의 가치보다 투입 인건비를 따지는 경향이 많은데 그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AI이기 때문에 솔루션의 고도화가 더 중요한데 인건비 기반 프로젝트 방식이 여전하다는 것. 그러다보니 AI로 하려던 당초 목표는 멀어지고 비용에만 매몰돼 프로젝트가 어려워진다는 것.
아크릴이 통합 인공지능 플랫폼 '조나단‘을 모듈 형태로 개발하고, 클라우드 용도와 온프레미스 용도를 각각 다 구비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건비는 줄이더라도 솔루션을 고도화해 생산성을 높이쪽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파인헬스케어 인수와 ‘인공지능 병원’에의 도전
조나단은 AI 구축에 필요한 범용 플랫폼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 서비스 개발의 전주기(end to end)를 지원한다. 특히 최근 주목받고 있는 노코드와 로코드를 지향한다. 아크릴은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은 AI 프로젝트의 난제를 풀고 이를 더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산업별 전문성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첫 번째가 의료분야이고, 이를 위해 탄생한 솔루션이 ‘나디아’이다.
나디아는 진료 처방 전자의무기록 등 병원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통합정보관리시스템(HIS)에 AI를 입힌 것이다. ‘AI 병원’이 목표라 할 수 있다. 아크릴은 이를 위해 HIS 전문업체인 파인헬스케어를 인수하기도 했다. 나디아 사업은 특히 정부개발원조(ODA) 방식으로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해외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처음 손익분기점 넘길 것으로 보고 있어”
아크릴의 지난 해 매출은 50억 원 대다. 올해는 90~100억 원으로 기대하고 있다. 나디아 사업이 본격화되면 매출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작년까지는 적자였으며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원년이 될 것”이라며 “향후 2년 내에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 초기에는 주로 정책자금과 발생 매출로 꾸려오다, 조나단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하면서 2018년에 SK C&C, LG전자를 비롯한 기업들로부터 60억 원 가량을 투자받았다”며 “창업 초기 3~4년은 매출을 발생시키기 어려워 스타트업의 ‘데스 밸리’라는 게 정말 이런 거구나 실감하며 밤을 새기 일쑤였다”고 회고했다.
■“고용 가능한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싶다”
갈매기 조나단이 오로지 비행(飛行)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박 대표의 AI 비행은 ‘고용 가능(employable)’이라는 네 글자에 방점이 찍혀 있다. 박 대표가 인공지능 전문가 가운데 유달리 초기부터 감성을 강조한 이유도 그런 까닭처럼 보인다.
인공지능으로 무장됐다 하더라도 결국 기계인 것에 대해 ‘사용’이나 ‘운용’이란 말 대신 ‘고용’이란 말을 쓰는 것은, 그 기계가 곧 사람이라는 말이라기보다는, 사람 감성까지 파악할 수는 고급한 인공지능 솔루션을 개발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 인공지능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조나단을 지속 성장시키는 게 박 대표와 아크릴의 꿈이다. 그 꿈을 박 대표는 조나단의 비행에 비유하고 싶은 거다.
■신해철이 되고 싶었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박 대표는 KAIST 전산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그리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크릴의 창업 멤버 4명 모두 KAIST 출신이고 13년째 같이 하고 있다.
타고난 엔지니어지만 속에는 다른 게 꿈틀거렸었다. 박 대표는 대학 다닐 때 신해철 같은 가수가 되고 싶었다. 기업가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무명가수가 돼 있을 것이라는 게 박 대표의 이야기다. “아주 배고프지만 자존심 하나로 굶으면서 살아가는.” 무명가수 앞에 그가 붙인 수식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박 대표가 왜 ‘갈매기의 꿈’을 인생의 책으로 여겼는지, 그리고 조나단의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알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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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그러면서 기업가 정신에 대해 “내공이 부족해 잘 모르지만, 단 하나 말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 같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것만이 리처드 바크의 말처럼 “높이 나는 새”가 장착하고 있는 날개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박외진 아크릴 대표가 추천한 다음 인터뷰 대상자는 SW 테스트 전문기업 슈어소프트테크 배현섭 대표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