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 과학 프로젝트'...거대과학시설 중이온가속기 현장을 가다

국내 중이온가속기 '라온', 1차 빔 인출 성공...2024년 본격 가동 예정

과학입력 :2022/11/20 12:00    수정: 2022/11/21 09:56

중이온가속기 '라온' 작동 과정 (자료=IBS)
중이온가속기 '라온' 작동 과정 (자료=IBS)

최근 첫 빔 인출 시험에 성공하고 10여 년에 걸친 1단계 구축 사업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대전 중이온가속기연구소를 지난 15일 찾았다.

우리나라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 Rare isotope Accelerator Complex for ON-line experiments)'이 들어선 가속기동 건물은 가장 긴 곳을 기준으로 길이가 550m에 이른다. 연면적 7만7천636㎢로 축구장 11개 넓이다.

'단군 이래 최대 과학 프로젝트'라는 수식어가 상투적으로 따라 붙는 이 거대 시설이 찾으려는 것은 아주 작고 드문 희귀동위원소이다.

중이온가속기연구소 내 입사기 (사진=IBS)

동위원소는 일반 원소와 양성자 수는 같으나 중성자 수는 다른 원소다. 원자번호가 같고 화학적 성질도 비슷하나 질량수는 다르다. 희귀동위원소란 그중에서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나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 또는 극히 짧은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희귀한 동위원소다.

■ 희귀동위원소 만들어 우주 기원 찾는다

희귀동위원소는 신소재 개발이나 암 치료,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됨은 물론, 물질의 본질을 이해하거나 우주 생성 원리를 규명하는 기초 과학 연구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에는 가벼운 입자만 있었는데, 오늘날엔 무거운 입자 등 다양한 물질이 존재한다. 희귀동위원소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 그 과정과 입자의 특징을 연구하면 우주 기원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

동위원소 및 희귀동위원소 분포 확률 (자료=IBS)

중이온가속기는 이를 위해 희귀동위원소를 만들어내는 장비다. 가속기는 탐색하는 물질에 따라 몇 종류로 나뉘는데, 중이온가속기는 헬륨이나 우라늄 같은 무거운 이온을 빠른 속도로 가속한  후 표적 물질에 충돌시켜 다양한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재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조성추진단장은 "중이온가속기는 삼라만상의 기본 단위인 원자에 대한 궁극의 호기심을 탐구하기 위한 장비"라며 "노벨 물리학상 전체 수상자 109명 중 23명이 가속기 관련 연구로 수상했다"라고 설명했다.

■ 극한 기술 도전해 온 중이온가속기 구축 과정

2011년 사업을 시작해 11년 동안 1조5천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지난해 연말 저에너지 구간 초전도 가속장치 설비를 마쳤고, 10월7일 마침내 첫 빔 인출 시험에 성공했다. 이는 중이온가속기 가동을 위한 첫 걸음이다. 빔을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제반 시설과 환경이 안정적으로 구축됐음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저에너지 구간 54기 가속모듈 중 이번에 전단부 5기에 대해 빔 인출 시험을 했고, 내년 3월까지 54기 전체 모듈 시운전을 마칠 계획이다.

권면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장이 기자들에게 초전도 가속기 장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지디넷)

가속 모듈은 이온 빔이 에너지를 얻어 계속 속도를 높여가며 이동하도록 해 결국 광속의 절반 정도 속력으로 표적을 때리도록 하는 설비다. 양전하를 띤 입자가 음극의 전자기장을 만나 당겨지고, 이어 전기장이 다시 양극으로 변하면서 같은 극성의 입자를 밀어낸다. 전기장이 시간에 따라 변하면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해 이온의 이동 속도를 계속 빠르게 하는 것이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입자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그에 맞춰 전압을 가해 전자기장을 바꿔야 하는 극한 기술이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방전이 일어나며 가속이 멈춘다. 이를 막기 위해 진공 절연 기술이 중요하다.

또 입자 움직임에 대한 방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초전도 상태에서 가속을 실시한다. 그래서 가속 모듈은 액화 헬륨 속에 잠겨 영하 260℃ 이하 극저온에서 운영된다. 이 같은 가속 모듈 54기가 저에너지 구간에만 106m 길이로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다.

중이온가속기 라온 작동 모습 (자료=IBS)

■ 고에너지 구간 구축 기술 개발은 과제

저에너지 구간을 지난 입자에 더욱 강한 에너지를 가하는 고에너지 구간 역시 가속 모듈 48기를 180m 길이로 이어 구축할 계획이다. 고에너지 구간에 들어갈 가속관은 저에너지 구간 가속관에 비해 더 크고 민감하다. 설비 제작을 위한 정밀 가공 기술의 난이도도 함께 올라간다.

저에너지 구간과 고에너지 구간을 함께 완공한다는 당초 계획을 변경, 고에너지 구간은 2025년까지 선행 R&D를 실시해 그 결과를 바탕으로 구축하기로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권면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장은 "충분한 성능 확보를 위한 정밀 후처리 등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선행 R&D를 실시하기로 했다"라며 "2025년까지 안정화된 설계와 성능을 구현, 공백 없이 고에너지 가속관을 완료한다는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계획 변경 때문에 두 가지 희귀동위원소 생산 방식인 ISOL(Isotope Separation On-Line)과 IF(In-flight Fragmanetation)를 세계 최초로 결합해 보다 다양한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한다는 당초 계획은 한동안 실현이 어려워졌다.

라온 ISOL IF 결합 방식 (자료=과기정통부)

ISOL은 가벼운 이온을 무거운 표적에 충돌시키는 방식, IF는 무거운 이온을 가벼운 표적에 충돌시키는 방식이다. 시설의 시작 부분인 초저에너지 구간에서 나온 이온을 ISOL에 충돌시켜 희귀동위원소를 만들고, 이어 저에너지 구간과 고에너지 구간을 거치며 입자를 가속해 다시 IF 장치에서 다른 종류의 희귀동위원소를 얻는다는 것이 본래 계획이었다. 현재로선 IF 장비 활용은 고에너지 구간이 구축될 떄까지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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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온가속기연구소는 내년 3월 저에너지 구간 시운전을 마치고, 2024년 하반기에는 외부 연구자들이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할 계획이다. 국내·외 과학계가 활발히 활용할 것으로 연구소는 기대하고 있다. 우주 탄생 초기 상태 연구를 위한 되튐분광장치(KoBRA)나 발생한 희귀동위원소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질량측정장치(MMS), 동축레이저분광학장치(CLS) 등의 실험 장비도 설비가 거의 마무리됐다.

중이온가속기 라온 주요 실험 설비 (자료=IBS)

홍승우 IBS 중이온가속기연구소장은 "과학자들의 꿈과 열정 외에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정부 지원 등에 힘입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라며 "이제 첫걸음이지만 세계 최고라는 목표를 향해 전진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