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회복' 안간힘...가상자산, 흥망 기로에 섰다

[이슈진단+] FTX 파산 후폭풍 진화 총력

컴퓨팅입력 :2022/11/17 12:31    수정: 2022/11/17 13:40

올해 가상자산 시장은 암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시가총액 8위권에 올랐던 스테이블코인 '테라'의 폭락, 글로벌 3, 4위를 오가던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초고속 파산 등 가상자산 업계에 대한 신뢰를 깨뜨리는 대형 사건이 연거푸 일어난 탓이다.

테라 폭락이 일어난 당시 각국 당국과 업계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에 초점을 맞추고 규제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모았다. 그러나 그 외 사업자들도 자산을 부실 관리하던 정황이 드러나고, 심한 곳은 파산까지 이르게 되자 업계 전반에 걸쳐 투자자 보호 조치가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규모를 고려할 때 비교적 안전할 것으로 보였던 FTX마저 자산 부실 관리 정황이 드러나 문제의 심각성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FTX 공식홈페이지.

FTX 파산 전까지도 가상자산 시장은 지난해에 비해 침체돼 있었다. 단 어려운 거시경제 상황이 해소되면 업계가 제도권에 편입됨과 동시에 장기적으로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가 컸다. 그러나 상, 하반기 가상자산 사업자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투자자들이 시장에 완전히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전망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신뢰성을 회복하려는 가상자산 업계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FTX가 파산까지 가게 된 핵심 원인인 재무건전성을 증명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재무 정보를 공시하고 투자자 자산 보호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는 상황이다.

당국도 긴급한 사안은 먼저 법제화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정책 마련에 더욱 속도를 내게 됐다. 테라 폭락이 발생했을 당시에도 현행법 상 당국의 조사 권한이 없는 점 등을 들어 가상자산 업계에 대한 규제를 조속히 도입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후 반 년 만에 FTX 파산이라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더 이상 가상자산 시장을 무법지대로 둘 수 없다는 의견에 힘이 모아졌다.

출처=뉴스1

■파산 또 파산…자산 부실 관리 공포에 '팔자' 흐름 거세져

FTX 파산 신청 이후 법원에 제출한 문서에 따르면 채권자 수는 100만명 이상으로 예측됐다. 여기에 포함된 개인 투자자 상당수는 무담보 후순위 채권자로 분류돼 자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FTX에 자산을 보관하거나, FTX토큰(FTT)으로 투자를 받는 등 재무적으로 관련이 있던 사업자들도 피해를 입었거나,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FTX 파산 영향으로 가상자산 대출 업체 블록파이가 10일 자금 인출을 제한한 데 이어 파산과 인력 감축을 고려 중인 것으로 15일 알려졌다. 가상자산 금융 서비스 기업 제네시스도 16일 대출 서비스를 일시 중단했고, 제네시스와 협력 하에 자금 적립 서비스를 제공하던 가상자산 거래소 제미니도 해당 서비스를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연쇄 피해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자연히 투자자들은 추가 파산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 크립토닷컴에도 이런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달 크립토닷컴이 4억 달러 규모의 이더리움을 또다른 거래소 게이트아이오에 송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준비금이 부족해 거래소 간 자산을 돌려막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해당 이더리움 물량은 크립토닷컴 보유량의 80% 이상이다.

크립토닷컴 웹사이트

동시에 지난주 크립토닷컴이 발행한 토큰 크로노스(CRO)가 40% 가까이 하락하고, 직원을 4분의 1 이상 감원하는 등의 모습이 포착되면서 재정 상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란 추정에 힘이 실렸다. 크립토닷컴은 이더리움 송금 사실에 대해 실수라고 해명하고, 준비금을 증명하기 위한 지갑 주소도 공개했다. 그럼에도 준비금 중 약 20%가 밈코인 시바이누(SHIB)로 구성돼 있는 점 등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그 외 비트코크, AAX 등 가상자산 거래소도 이용자 출금을 일시 중단했다.

이런 시장 상황에 영향을 받아 2만 달러 대에서 횡보하던 비트코인 시세는 17일 코인마켓캡 기준 1만6천 달러 대로 내려앉았다. 가상자산 시가총액도 FTX에 대한 의혹이 터지기 전 1조 달러 이상을 유지하다 현재 8천353억 달러 대로 줄어들었다.

얼터너티브가 제공하는 크립토 공포&탐욕 지수는 17일 현재 '극단적인 공포'에 해당하는 20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일 FTX와 그 자회사 알라메다리서치의 대차대조표가 공개되기 전만 해도 30으로 비교적 높았지만, 관련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 차츰 수치가 낮아졌다.

■가상자산 무너진 신뢰 쌓기 '영차'…美 규제 기다리던 당국도 입장 전환

FTX는 특히 자회사를 육성하기 위해 이용자 예치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의혹이 업계 전반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준비금 현황을 증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FTX의 자산 부실 관리 의혹에 불을 지핀 바이낸스의 창펑 자오 CEO는 머클트리 준비금 증명 체계에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지난 9일 주장했다. 거래소의 보유 자산을 실시간으로 공개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 재무건전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체계에 게이트아이오, 쿠코인, 후오비 등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다수가 참여키로 결정했다.

FTX의 연쇄적인 부정적 여파를 줄이기 위해, 바이낸스는 14일 유동성 위기를 겪는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기금을 준비한다고도 밝혔다.

창펑 자오 바이낸스 대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는 해외 사업자들과 달리 FTX 파산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개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시행된 이후 이용자 예치금이 은행 계좌에 보관돼 거래소가 임의로 손을 댈 수 없고, 보유 자산 내역에 대해서도 외부 감사를 통해 수시로 확인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업비트, 빗썸 등은 분기별 재무 실사 보고서를 통해 해당 정보를 공개해오던 상황이었다.

국내 거래소 코빗의 경우 바이낸스 등 해외 거래소들의 동향을 고려해 보유 가상자산 내역을 실시간으로 공개하겠다고 16일 발표했다. 분기별 감사를 통해 안전한 자산 관리를 검증받고 있었지만, 분기별 공시 특성상 정보 공유에 시차가 발생하는 점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코빗 거래소 보유자산 내역 공개 홈페이지 화면

당국과 국회는 이번 사태로 시장 불안이 커진 만큼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당초 글로벌 규제와의 정합성을 맞추고자 미국의 규제안이 도입된 뒤 이를 참고해 국내 규제안을 구체화하려는 계획이었지만, 유동성 위기가 지속되는 현재 가상자산 시장에 발생할 수 있는 추가 피해를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열린 제4차 민·당·정 간담회에서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용자 보호에 대한 시급성을 고려하면 국제 기준을 기다리기보다,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를 먼저 마련하고 이를 점진적, 단계적으로 보완하는 방식이 효과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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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사진=뉴스1=금융위원회)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가상자산 거래소의 이용자 예치금 분리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현재 가상자산 거래소를 보면 내부정보를 이용한 거래부터 다른 거래소를 이용한 거래, 이번 FTX 사태에서 문제가 된 임의적인 입출금 중단까지 대부분 행위에 대한 규제가 마련돼 있지 않다”며 “지금 현재 상황에서 이해 상충 위법 행위를 자율에 맡겨 두는 것이 타당할지 한번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FTX와 유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게 여러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하고, 마련 시점도 보다 신속하게 잡아야 할 것 같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업계의 책임이 더 무거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