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디지털화폐(CBDC)인 '디지털 위안화'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지정학적 경쟁 관계인 미국이 기축 통화인 달러의 영향력을 이용한 경제 제재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일정 규모 이상의 글로벌 결제 네트워크를 구축하기까지 여러 어려움이 따를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박동욱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선임연구위원이 지난 3일 발간한 '디지털 위안화의 국제적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는 이런 분석을 담았다.
■'CBDC' 선두 주자 중국…국제 연합 구축 시도할 듯
보고서는 G20 국가 중 중국이 CBDC에서 가장 앞선 상태라고 평가했다. 올초 사용자 2억6천만명이 450만개 가맹점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지난 5월까지 830억 위안(약 17조원)이 디지털 위안화로 거래됐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도 디지털 위안화를 지원하고 있다.
디지털 위안화로 촉발되는 국제 통화 경쟁은 글로벌 금융 경쟁보다는 지정학적인 기술 경쟁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다. 중국이 일차적으로는 자국 내 금융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지만 달러화 의존 경감, 위안화의 국제 위상 제고도 염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자본시장 자유화 등 규제 완화를 통한 직접적인 국제 통화 경쟁은 지양하고, 선진적인 CBDC 기술과 핀테크 서비스를 기반으로 정치·경제적으로 뜻이 맞는 국가와 연합을 형성하는 전략을 취할 것이라 예상했다.
대만구와 일대일로 국가, 중국과 교역 비중이 높은 국가, 중국 이동통신 기반 핀테크가 요구되는 아프리카 국가 등 경제적 이해관계가 깊은 국가들이 우선 공략될 것으로 봤다.
러시아, 이란 등 미국의 경제 제재의 위험에 대응할 필요가 있는 국가, 국가주의적 통제를 선호하는 국가 등도 정치적 이해관계 차원에서 디지털 위안화 네트워크에 참여할 유인이 존재한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 주도의 경제 제재 위험을 피하고자 하는 국가들의 수요가 나타날 것으로 봤다.
중국은 국제 결제 네트워크에서 디지털 위안화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국제 기술표준과 규범 논의에도 활발히 참여 중이다. 국제결제은행(BIS)가 주관하고 홍콩, 태국, UAE가 참여하는 다자 국경 간 거래 실험 'CBDC 브릿지' 외 다자국 간 CBDC 결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CBDC 기술표준 및 개인정보보호, 자본관리 등에 대한 국제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행착오·정보보안 우려로 국가 연합 구축 난항 예상
보고서는 중국의 이런 노력에도 디지털 위안화 중심 CBDC 네트워크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선 여러 숙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CBDC를 국가 화폐로서 도입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그 중 하나다. 사회·경제적 영향이 클 것임에도 기술적 안정성과 경제적 혜택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국가들이 CBDC 국제 거래가 가능하도록 기술적 인프라를 갖추더라도 중앙은행 간 합의, 결제 아키텍처 운영, 국가 간 제도 차이 조화 등 제도적 합의점을 찾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분석이다.
디지털 위안화가 갖고 있는 개인정보 보호 문제도 걸림돌이다. 디지털 위안화는 국가가 통화 거래 데이터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국가주의 시스템의 특성을 띤다. 인민은행이 디지털 위안화 시스템 운영의 중심으로 원장을 관리하고, 디지털 위안화의 코어 노드인 지갑을 제공하며 모든 거래의 최종 결제가 중앙은행을 거치도록 설계돼 있다.
정부 주도로 디지털 위안화 체계를 조기에 확정지으면서 미국, 유럽 등 국가보다 CBDC 도입을 서두를 수 있었지만, 타 국가 입장에선 중국 정부에 데이터를 넘겨주게 되는 점 때문에 디지털 위안화 네트워크 편입을 꺼리게 된다.
보고서는 미국, 유럽, 일본 등 국가들이 현재 기술적, 제도적으로 CBDC에 대한 준비가 미흡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점쳤다. G7을 중심으로 미국 유럽 등 주요국 중심의 CBDC 표준 블록을 수립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고, 국제 결제 시스템인 '스위프트' 참여국이 위안화국제결제시스템(CIPS)으로 이탈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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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의 디지털화에 따라 국제화로서의 위안화 가치가 제고되는 효과는 단기적으로 제한적일 것이라 봤다. 이미 대부분의 국제 결제나 무역 거래가 디지털로 이뤄진다는 이유다.
장기적으로 CBDC의 기술적 효율성과 네트워크 효과가 발현되기 전까진 달러가 지닌 충분한 유동성, 외환 무위험 등의 우위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