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 제소한 ARM의 속내 "우리 IP만 써라"...반도체 업계 뒤흔드나

[이슈진단+] 라이선스 정책 개편으로 지배력 강화 노리는 ARM (上)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22/11/01 15:52    수정: 2022/11/02 15:54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 산하 반도체 기반기술 설계자산(IP) 기업 ARM, 스냅드래곤 등 모바일용 프로세서를 생산하는 미국 퀄컴, 그리고 퀄컴이 지난 해 1월 인수한 스타트업 '누비아'(Nuvia)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반도체 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 9월 초 ARM 제소에 이어 최근 퀄컴이 반소를 위해 미국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는 ARM이 이번 소송을 통해 라이선스 비용 조정은 물론 ▲ 기기 제조사에만 라이선스 제공 ▲ ARM 이외의 타사 IP 혼합 사용 금지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ARM 케임브리지 본사. (사진=지디넷닷컴)

만약 ARM이 계획 중인 라이선스 체계 개편이 현실화되면 전세계 스마트폰 제조사에 스냅드래곤·디멘시티 등 각종 칩을 공급하는 퀄컴과 미디어텍은 물론, GPU·NPU 강화를 통해 경쟁력 강화를 모색하는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계 전반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 ARM "우리 계약은 누비아와 유효...퀄컴이 라이선스 위반"

ARM은 지난 8월 말 퀄컴과 누비아를 라이선스 계약 위반 혐의로 제소하며 "지난 해 1월 퀄컴 피인수 이후 누비아가 개발한 반도체를 퀄컴이 이용하는 것은 라이선스 위반"이라고 주장했다(관련기사 참조).

퀄컴은 지난 1월 누비아 인수 후 해당 업체 기술 기반 CPU를 개발중이다. (자료=퀄컴)

ARM은 또 "퀄컴은 ARM의 동의 없이 누비아의 라이선스를 이전하려 했으므로 계약에 위반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누비아와 퀄컴 모두 ARM과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얻은 IP를 기반으로 각종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퀄컴 역시 지난 10월 중순 ARM을 제소하면서 두 회사 간의 법적 공방전이 시작됐다.

■ 양사간 소송 본질은 라이선스 비용?

IT 기업들은 협상 테이블에서 원만한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다. 언론을 활용한 여론전부터 법적 공방까지 경우의 수는 다양하지만 그 핵심에는 '돈'이 있다.

실제로 퀄컴은 소장에서 "누비아가 ARM에 내는 라이선스 비용이 퀄컴이 내던 것보다 더 비싸다"고 주장했다. ARM이 과거 누비아가 내던 것과 같은 수준의 라이선스 비용을 퀄컴에서도 받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소재 퀄컴 본사. (사진=씨넷)

이번 소송건 역시 표면적으로는 라이선스 비용을 유리하게 받고 싶었던 ARM의 전략적 행동으로 보였다. 양사가 법정 밖에서 적절한 비용에 합의한 뒤 소를 취하하는 출구 전략도 기대할 수 있었다.

■ 퀄컴 "ARM, 기기 제조사에만 라이선스 줄 것"

미국 반도체 전문 매체 '세미애널리시스' 역시 "ARM이 시작한 이 소송의 주된 목적은 퀄컴에게서 더 많은 라이선스 비용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달 말 퀄컴이 법원에 제출한 서류를 보면, ARM은 이번 공방전에서 단순히 라이선스 비용만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퀄컴은 스냅드래곤 칩을 전세계 스마트폰 제조사에 공급한다. 사진은 지난 5월 공개된 스냅드래곤 8+ 1세대 프로세서. (사진=퀄컴)

지난 28일(미국 현지시간) 공개된 소장에서 퀄컴은 "ARM은 2024년부터 자사 IP를 쓸 수 있는 라이선스 계약을 '장치 제조사' 대상으로만 체결할 예정이며 반도체 회사 대상으로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스냅드래곤 칩만 공급하는 퀄컴은 계약 대상 제외"

퀄컴의 주장에 따르면 엑시노스 탑재 갤럭시 스마트폰을 만드는 삼성전자, 텐서 탑재 픽셀 스마트폰을 만드는 구글, 서피스 노트북을 만드는 마이크로소프트, 아이폰·아이패드 등을 생산하는 애플은 ARM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미디어텍 디멘시티9000(사진=미디어텍)

반면 스냅드래곤 칩을 전 세계 스마트폰 회사에 공급하는 퀄컴, 디멘시티 시리즈를 개발해 전세계에 공급하는 미디어텍, 기린(Kirin) 칩을 만들어 화웨이에 공급하는 하이실리콘은 직접 '기기'(스마트폰)를 만들지 않는다.

따라서 퀄컴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퀄컴은 물론 미디어텍과 하이실리콘은 오는 2024년부터 ARM 아키텍처 기반 스마트폰용 칩을 설계·제조·판매할 수 없다. 자체 제조 기기 없이 반도체만 공급하는 사업 모델을 지닌 다른 회사들도 ARM IP를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다는 의미다.

■ "ARM, 자체 IP만 쓸 것 요구한다"

그러나 삼성전자나 구글 등이 ARM이 요구하는 '기기 제조사'라는 요건을 충족해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퀄컴은 "ARM은 여러 제조사에 '라이선스로 만든 제품 안에 ARM이 이미 생산하고 있는 GPU(그래픽칩셋)나 NPU(신경망처리장치), ISP(영상처리장치) 이외의 것을 제공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AMD는 삼성전자 엑시노스 AP에 라데온 그래픽 기술을 공급하고 있다. (사진=AMD)

삼성전자는 올 1월 갤럭시S22에 탑재될 칩으로 개발한 '엑시노스 2200'에 ARM이 개발한 말리(Mali) GPU 대신 AMD와 공동 개발한 RDNA2 아키텍처 기반 GPU를 탑재했다. 퀄컴도 스냅드래곤 칩에 자체 개발한 '아드레노'(Adreno) GPU와 '스펙트라' ISP(영상처리장치) 등을 넣는다.

ARM은 코어텍스 CPU와 말리 GPU·ISP 등을 공급하고 있다. (사진=ARM)

퀄컴의 주장대로라면 오는 2024년 이후 생산될 ARM IP 기반 칩에서는 이런 시도가 불가능해진다. ARM이 자체 개발한 CPU IP인 코어텍스와 말리(Mali) GPU·ISP만 쓸 수 있다는 의미다.

■ 관련 업계 우려 표명..."반도체 업계 뒤흔들 중대 사안"

국내외 반도체 업체들은 이번 소송의 향방을 주시하고 있다. 

사실상 전세계 반도체 IP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ARM이 계획 중인 라이선스 체계 개편이 업계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ARM은 스마트폰 두뇌에 해당하는 AP의 경우 90%,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40%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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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구한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퀄컴의 주장이 만약 사실이라면 ARM의 시도는 반도체 업계를 모두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향후 상황 전개를 예의 주시중"이라고 답했다.

ARM은 이번 소송 관련 지디넷코리아 질의에 "지적재산권 회사로서 ARM은 당사와 생태계의 권리를 보호할 의무를 갖는다"며 "ARM은 정당하게 당사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전념할 것이며, 법원도 이에 동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