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슬픔에 젖게 한 지난 주말의 이태원 압사 참사 같은 사건은 보통 좁은 공간에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군중 속에 갇힌 사람들이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실수로 넘어지는 사람이 생기는 등의 이유로 강한 압력을 받아 호흡 곤란을 일으키면서 발생한다.
많은 군중이 모일 때 이런 사고가 일어나는 일은 드물지 않으며, 일단 이런 상황이 되면 개인이 스스로 위험에서 빠져 나오거나 경찰이 상황을 통제하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철저한 사전 점검과 계획, 군중 통제 전문가 배치를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이유다.
■ 철제 난간 구부러뜨릴 정도로 강력한 군중 미는 힘
대형 이벤트에 참가한 사람들은 마치 유체처럼 움직이며 서로 밀착하는 '군중 난류(crowd turbulence)' 현상을 일으킨다. 이때 줄지어 이동하던 사람들은 점점 더 서로 밀착하게 되고, 특히 무리의 앞줄에 강한 압력을 일으킨다. 하지만 주변 사람과 지나치게 거리가 가까워지면 주변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기 어려워진다.
무리가 점점 좁은 길로 들어서거나 주변에 벽이나 담이 있으면 압력을 받을 위험은 더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넘어지거나, 서 있더라도 압박이 너무 커지면 참사로 이어지기 쉽다. 이태원 사고가 일어난 지역도 성인 몇 사람이 나란히 지나면 꽉 찰 좁은 골목길이었다.
군중 안전 문제를 연구하는 키스 스틸 영국 서포크대학 교수는 2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이런 현상을 '군중 폭증(crowd surge) 또는 '군중 압착(crowd crush)'이라고 소개하며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제한된 공간에서 서로 밀치다 넘어지는 일이 있을 때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 넘어지면 우르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거나 빠져나가 수 없는 일종의 '도미노 효과'인 셈이다.
이는 사람들이 꼼짝 못 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이 어느 정도 공간을 두고 우르르 달려가는 '군중 쇄도(crowd stampede)'와도 다른 현상이다.
이렇게 사람들로 꽉 찬 곳에선 몸이 강한 압력을 받아 횡경막이 움직일 공간을 갖지 못해 호흡 곤란을 겪어 압사하게 된다. 스틸 교수는 저서 '군중 안전과 군중 위험 분석 (Crowd Safety and Crowd Risk Analysis)'에서 이같은 군중 폭증 현장에선 약 4천 500뉴턴(약 454㎏)의 힘이 가해져 철제 난간 손잡이가 구부러질 정도라고 소개했다. 197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일어난 이브록스 축구장 사고에선 사람이 3m 높이로 쌓였고, 바닥에 깔린 사람은 가슴에 최대 4천뉴턴(약 408㎏)의 힘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최근 인도네시아 축구장에서 130명이 사망한 사건이나, 미국 텍사스주에서 10명이 사망한 아스트로월드 페스티벌 때도 비슷하게 벌어진 일이다.
■ 코로나19 방역 완화 후 대형 이벤트 늘어날 전망...사전 계획 중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군중 행동을 연구하는 메흐디 무사이드 연구원은 이태원 참사 관련, 워싱턴포스트에 "영상을 보면 1㎡에 8-10명은 있는 것 같다"면서 "좁은 장소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 호흡 곤란을 일으킨 전형적 군중 사고"라고 말했다.
그는 "상황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도저히 손을 쓸 수 없게 되며, 이는 경찰을 더 투입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라며 "그래서 사전 계획과 통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지 순례 시기에 군중 압사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메카에선 일방 통행만 가능하도록 통제한다.
다만, 이번 이태원 참사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나 음악 콘서트처럼 주최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무작위적으로 모인 가운데 일어나 통제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무사이드는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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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대형 군집 이벤트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라, 이같은 군중 사고에 대한 대비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공공 안전 전문가인 존 프루인 박사는 군중이 모이는 이벤트의 위험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FIST 모델'을 제시한다. 군중의 힘(F)과 이들이 접하는 정보(I), 사람들 사이의 공간(S)과 사건이 벌어진 기간(T) 등을 기준으로 위험을 평가하고 대책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는 특히 상황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정보의 실시간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태원 사건에서도 서로의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앞줄에서는 '밀지마'라고, 위에선 '밀어'라고 소리치는 상황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