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유튜버 부추긴 구글..."미·유럽·인도서도 여론조작"

구글의 초국가적 행동주의 지적..."독점적 지위 유지 위해 경쟁사 진출 방해"

방송/통신입력 :2022/10/20 17:14    수정: 2022/10/21 09:01

구글이 국내에서 망 무임승차 방지법 논의에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볼모로 내세운 여론몰이가 학계에서도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행위가 다른 나라에서도 반복되던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호응을 일으키는 전략으로, 이 같은 여론조작에 대해 “양의 탈을 뒤집어쓴 늑대”라는 날선 비난까지 나왔다.

덴마크 올보르 대학교의 로슬린 레이튼 박사는 20일 한국방송학회,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 한국미디어정책학회가 마련한 ‘망 사용료 정책과 입법, 이슈담론화와 여론형성’ 주제의 세미나에 연사로 참여해 한국에서 초국가적 행동주의가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특정 글로벌 공룡 기업의 이익을 위해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레이튼 박사는 이 자리에서 “유튜버들이 이용하고 있는 초국가적 행동주의는 구글이 개발한 기술이자 전략이며 전 세계의 각기 다른 정치 규제와 입법 절차에 이용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유튜버에 서명 운동을 독촉하고 구글의 입장을 대변하는 콘텐츠를 양산하게 하는 일들이 앞서 미국과 유럽, 인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소개했다.


■ 구글은 어떻게 여론조작을 했나

우선 미국에서는 지난 2014년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오픈인터넷 정책 입안 과정에서 세이브더인터넷(Save the Internet)과 같은 미국의 온라인 활동가를 동원해 최대한 강한 인터넷 규제를 만들라는 청원서를 보내도록 했다.

레이튼 박사는 “이때 동원된 사람들은 FCC를 들어본 적도 없고 정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며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적극 지지하는 집단에 의해 자극받았기 때문에 바로 그 특정한 시점에 위와 같은 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결국 FCC에는 400만 개의 의견서가 전달됐고, 결국 오바마 전 대통령이 강력한 통신 규제를 만들게 했다.

1년 뒤 유럽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 유럽연합에서도 오픈인터넷 정책을 만드는데 또 다시 세이브더인터넷이 개입을 했다. FCC에 그랬던 것처럼 50만 개의 의견서를 모이게 했고 학계와 시장의 예상과는 다른 정책을 만들게 했다.

레이튼 박사는 “유럽에서 50만개의 의견서 중 3분의 1은 유럽인이 아닌 또는 유럽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냈다는 사실은 밝혀지지 않고 조작된 수치가 정책 정당화에 이용됐다”고 지적했다.

인도의 사례는 단순히 구글에 유리한 정책 방향을 이끌어낸 수준이 아니라 경쟁 기업을 억압시키는 결과까지 만들어졌다.

레이튼 박사는 “페이스북(현 메타)이 인도 시장에 진출해 (구글과) 광고 매출을 두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페이스북은 인도의 통신사와 서비스를 (데이터 이용 요금을) 무료로 제공해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도 소통하고 재난 상황에서 통화도 할 수 있도록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도인이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만큼 페이스북에 광고 시장을 뺏기는 구글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며 “구글은 사람들을 동원해 페이스북이 무료 서비스를 하면 세상의 종말이자 인도의 종말이라는 내용을 인터넷 공간에 도배하도록 했다”고 밝혓다.

결국 페이스북은 인도에서 무료 비즈니스 모델로 인도 시장에 진출할 수 없게 했다. 즉, 구글의 목표인 인도 광고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 본질적인 논의는 실종 우려

레이튼 박사는 “미국의 테크 기업들은 인터넷 트랜짓(접속) 비용을 내지 않기를 원하면서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것 외에는 어떤 추가 비용도 부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물론 기업의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기업이 자기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여론 형성에 관여해 공론장을 파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레이튼 박사는 한국의 사례를 보면서 “구글이 콘텐츠 크리에이터에 줄 금액을 줄이겠다고 주장하는 것이 구글이 전쟁을 하는 방법”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유럽연합, 인도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여론몰이를 통한 규제당국 압박으로 제대로 된 정책 고민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우려다.

이 때문에 생산적인 토론을 위해 구글이 추구하는 여론조작이 아니라 이해관계를 제대로 따지는 토론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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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광장의 조대근 전문위원은 “시장에 충분한 정보제공을 통해 이해관계자들이 단순한 진영논리가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전문가와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해야 하는 정책의 우선순위는 사업자 간 문제를 조정하는 일이지만, 지금의 상황은 국민들이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하는 일이다”며 “전공자도 매일 공부해야 하는 미디어 인터넷 생태계인데 어느 한 쪽에 쏠리는 주장이 아니라 국민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