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 전쟁이 심화되면서 글로벌 반도체 장비와 IT 디바이스 위탁 생산 중심으로 탈 중국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반도체 기술 수출 규제로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들은 빠르게 중국 사업 축소에 나섰다. 지금껏 중국에서 90% 이상을 제조해 온 애플도 생산거점을 인도로 옮기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지난 7일(현지시간) 중국에 반도체 장비와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는 추가적인 규제를 발표했다. 이 조치는 이달 21일부터 발효된다. 이로써 18나노미터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나노 이하 로직칩(비메모리칩) 등과 관련된 생산 장비를 중국에 수출할 수 없다.
이번 규제 발표 후 미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장비 업체인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KLA, 램리서치 뿐 아니라 네덜란드 장비 업체 ASML 등은 중국에서 제품 공급을 중단하고 현지에 파견한 직원을 철수한다고 공지했다. 이 기업들은 전세계 톱5 반도체 장비 업체이며, 중국 수출 비중이 30%에 달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톱5 업체가 중국 내에서 사업 축소를 진행하는 만큼, 그 외의 장비 업체들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라며 "예상보다 철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더불어 해당 규제에는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 중국 반도체 업체를 지원을 할 수 없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미국 반도체 엔지니어 및 경영진은 중국 내 근무가 앞으로 불가능할 전망이다.
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반도체 상장사 16곳에서 일하고 있는 최고경영자, 부사장 회장 등의 고위 간부 43명이 미국 시민권자로 집계됐다"라며 "이들이 중국에서 업무를 지속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라고 말했다.
IT 디바이스 업체인 애플 또한 협력사와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인도 또는 태국으로 옮기며 탈 중국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 중국간 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애플은 중국에 대한 제조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애플의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 제품의 95.3%가 중국에서 생산할 만큼 중국 내 생산 비중이 높았다. 그러나 앞으로 인도에서 아이폰을 생산하는 비중을 지난해 3.1%에서 올해 6~7%로 확대하고, 내년에는 더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내년부터는 에어팟, 비츠 등 음향 디바이스도 인도에서 생산될 예정이다. 애플의 협력사인 폭스콘과 위스트론은 인도에서 제조공장 운영을 시작했다.
지난 11일 애플 전문가 권밍치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이 향후 3~5년 내에 미국 시장에는 중국 이외 지역 조립업체가 생산한 제품을 공급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또 지난 17일 닛케이 아시아 등 주요 외신에서는 애플이 아이폰에 탑재되는 메모리를 중국 반도체업체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로부터 수급 받는 계획을 포기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관련기사
- 美, 삼성·SK 中 공장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1년 유예2022.10.12
- 對中 반도체 규제 '양날의 검'...수출 감소 우려에 '초격차' 기회까지2022.10.12
- "애플, 中 YMTC 메모리 칩 탑재 계획 포기"2022.10.17
- "애플, 5년내 美 공급제품은 中 바깥서 생산"2022.10.12
한편, 미국 상무부는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외국 기업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에게는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를 1년 유예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이들 기업은 당분간 중국 내 공장에 반도체 장비를 차질 없이 반입할 수 있을 전망이다.
반도체 관계자는 "국내 기업은 1년 동안의 유예기간 조치로 인해 한시름 놓았지만,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중국 내 사업을 축소 또는 철수함에 따라 반도체 장비를 공급받는데 지연이 발생될 수 있다"며 "또 1년 뒤에는 중국에 장비를 도입하기 위한 허가 기준과 심사가 얼마나 걸릴지 기준이 불투명한 상태여서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