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블루스(팔레스타인 서안지구)=김양균 기자] 지난 8일(현지시각) 오후가 되기 전부터 팔레스타인 서안지구(Palestine Westbank)의 나블루스 올드시티(Nablus old city)는 인파로 북적였다.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탄신일(Eid Milad Un Nabi)을 맞아 거리는 축제 분위기였다.
시내와는 달리 나블루스 외곽과 주변 마을에서는 연일 이스라엘 방위군(IDF)과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 사회주의정당이자 미국·이스라엘 등은 테러단체로 지정) 및 하마스(Hamas, 정당이자 준군사단체로, 가자지구를 실지배, 테러단체로 지정돼 있음)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기자는 지난 5일~16일 유혈 충돌이 벌어지던 나블루스 주요 지역과 라말라(Ramallah), 남부 헤브론(Hebron)의 마사파 야타(Masfer Yatta) 등지를 방문해 보건·복지 실태 및 분쟁 현장을 취재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군이 취재 활동 중인 기자를 향해 최루탄을 쏘아 대피하는 등 아찔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 시내는 축제 외곽은 전투
12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나블루스 북서쪽에 위치한 데이르 샤라프(Deir Sharaf)에서 이스라엘 군인이 사망했다. 나블루스 올드시티를 근거지로 하는 라이언스 덴(Lion‘s Den)이란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은 자신들이 해당 군인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제닌에서도 이스라엘 방위군(IDF)과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 세력 간에 유혈 총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충돌의 영향으로 나블루스에서 외부로 통하는 도로에 대한 통행 제한과 검문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현지 지역시민사회단체 탄위르(Tanweer)의 와엘(57) 활동가는 “언제 제한이 풀릴지 전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우선 12일(현지시각) 나블루스에서 제닌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하와라 검문소(Huwwara Checkpoint)는 전면 통행이 제한됐다. 주황색 바리게이트가 도로를 막고, 무장한 군인들이 앞을 지켰다.
관련해 제닌의 상황이 우리에게 비교적 많이 알려진 것은 지난 5월 11일(현지시각) 알자지라(Al-Jazeera)의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시린 아부 아클레(Shireen Abu Aqla) 기자가 이스라엘군 작전 현장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사건 때문이다.
IDF 고위 관계자는 사건 발생 넉 달 후인 지난 9월 5일(현지시각) “시린 기자를 언론인으로 인지하지 못한 군인의 오발에 의해 그녀가 사망했을 ‘높은 개연성(High probability)’이 있다”고 밝혔다. 군법원의 수사 결과에 대해 이 관계자는 “해당 군인은 만약 자신이 시린 기자를 쏘았다면 그것은 실수에 의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앞서 유엔(UN)과 다수 현지 언론들은 시린 기자가 이스라엘군에 의한 피격 증거를 다수 보고했고, 미국 정부는 해당 군인이 기자를 향해 오발을 ‘한 것 같은(Likely)’ 정황이 발견된다고 발표한 바 있다.
13일(현지시각) 나블루스 남서쪽으로 7킬로미터 떨어진 부린마을(Burin village)을 취재하고 돌아오는 길에 포크레인을 동원해 석재와 모래 따위로 도로를 막는 광경을 목격했다. 자칫 발이 묶일 뻔 했지만, 택시 기사의 기지로 흙더미가 도로에 쌓이기 직전 통과해 겨우 나블루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블루스에서 동서쪽으로 10킬로미터 떨어진 베이트 다잔(Beit Dajan)에서는 14일(현지시각) 금요집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현지 상황을 고려하면 해당 집회에서 상당한 충돌이 예상됐다. 기자는 현지의 쿼즈 뉴스 네트워크(Quds News Network) 기자들과 동행했는데, 베이트 다잔으로 이어지는 베이트 프릭 검문소(Beit Furik Checkpoint)는 오전부터 삼엄한 검문이 이뤄지고 있었다.
인근의 아와르타 체크포인트(Awarta Checkpoint)도 상황은 같았다. 군인들은 탑승자들의 신분증을 일일이 검사하고 행선지를 물어본 후 문제가 없다고 판단 시 통행을 허가했다. 한 차량마다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돼 검문소 주변의 정체는 점점 더 심해졌다. 검문소의 군인 한 명은 아와르타에서 나블루스로 오는 차량 경계를 서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은 노란색의 차단기 뒤에서 망원경으로 기자쪽을 보고 있었는데, 그의 총구는 검문소로 향하는 차량을 향해 있었다.
검문소와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 팔레스타인인의 집 한 채가 있었다. 1차선의 도로를 끼고 집과 올리브 나무가 심어진 땅이 있었다. 예닐곱 가량의 소년 둘이 목재 더미에 앉아 호기심어린 눈으로 기자 일행을 쳐다봤다.
14일(현지시각) 나블루스의 북서쪽 데이르 샤라프(Deir Sharaf)도 군인 사망 이후 주요 도로에 대한 이동이 차단된 상태였다. 현장에 가보니 상·하행 도로에 흙더미가 쌓여져 있었다. 현지 청년들을 따라 흙더미를 넘어가니 원형 교차로가 있었고, 오른쪽 도로에서 1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흰색 승합차와 군용 트럭이 있었다. 트럭 조수석의 군인은 이쪽을 조준하고 있었다.
주변에도 동일한 목적의 흙더미는 더 있었다. 이를 카메라에 담고 현지 청년들을 인터뷰 했다. 현지 언론인도 나서 전날 충돌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걷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펑’하는 소리가 들렸다. 군이 최루탄을 쏜 것이었다. 몸을 낮추고 뒤로 물러나면서 사진을 찍는데 최루가스가 퍼지면서 호흡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지 청년은 날 옆의 식당으로 피신시켰다. 그러다 최루가스를 들이마신 청년은 엎드려 숨을 헐떡거렸다. 잠시 후 식당 뒷문으로 밖을 내다보다 따라 나오려 하자 “근처에 군인들이 있다”며 제지했다.
최루가스를 뒤집어쓰고 틸마을(Till village)로 향했지만 이곳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검문으로 차량 행렬은 길었다. 인근에서 올리브 수확을 하던 노인은 전날 “충돌이 있었다”며 스마트론을 열어 충돌 영상을 보여줬다.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는 “지난 4월 제닌 출신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유흥가에서 총기를 난사해 3명의 이스라엘인을 살해한 것에 대한 보복 성격으로 알려졌지만, 일련의 군사 작전은 이스라엘인 살해에 대한 단순한 보복을 넘어선다”며 “해당 공격이 이스라엘 자치정부(PA) 관할지역에서 발생하는 만큼 PA 영향력 약화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 건설 이후 이어진 팔레스타인인 축출 정책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관련해 야이르 라피드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달 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질서를 유지 하지 않는 곳에서 이스라엘은 머뭇거리지 않고 어떤 행동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칼리드 알리 나세프(52) 팔레스타인고용기금(Palestine Employment Fund, PEF) 담당자도 “높은 수준의 민감한 상황”이라면서도 “충돌의 강도 차이는 있지만 이스라엘 점령 이후 일반적 상황으로 나블루스·제닌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현 상황이 커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