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이템으로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아 돈을 벌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데도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딱히 성공한 창업 경험이 없는데도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있다. 패스트벤처스가 자체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하고 투자한 ‘바인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시화 바인드 대표(25)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창업인재 전형으로 입학해 환경공학과 환경정책을 전공한 공학도다. 그는 중학교 때까지 탁구 국가대표 출신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탁구선수의 꿈을 키우다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고등학교 1학년 때서야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친구들은 선행학습을 통해 앞서나갈 때 거의 꼴등이었던 그는 ‘미친 듯이’ 공부해 상위 1프로로 졸업했다. UNIST에 들어가서도 과학 영재고 출신 친구들에게 굴욕(?)을 당했으나, 이를 악물고 또 다시 공부에 매진해 학부 1등을 차지했다. 꼭 이루고 싶은 목표는 이뤄야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악바리’ 기질을 가진 그는 '완벽주의' 어머니와 '논리주의' 아버지 밑에서 강하게 자란 덕에 마지막에 웃는 승자가 되곤 했다.
“창업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선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주셨어요. 결정은 자유롭게 하도록 도와주셨는데, 그 만큼 책임도 지게 하셨죠. 탁구를 하다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늦게 공부를 시작한 탓에 학원을 다녀야겠다고 했을 때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부모님을 설득했어요. 부모님께 동의를 받아내면 확실한 보상과 지원을 해주셨어요. 갑갑한 면도 있었지만 이 때 설득과 돈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 수학 과외로 목돈 마련해 창업 준비...임채경 심사역 만나 패스트벤처스와 인연
빠른 성공에 목말랐던 그는 자신의 미래를 그려봤을 때 무엇이 가장 빠른 지름길인지, 또 확실한 길인지를 설계해봤다. 주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대기업에 들어갈 수도 있고, 주식이나 채권 투자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도 있지만 여러 한계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길이 “창업으로 세상에 큰 임팩트를 주자”였다. 주변 똑똑한 동기들을 모아 팀을 꾸렸고, 약 1년 반 동안 여러 번의 실패를 맛봤다. 회사 운영 자금은 ‘수학 과외’로 마련, 동료이기도 한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면서 본격적인 창업가의 길을 걸었다. 김시화 대표 말에 따르면 그는 대전 둔산동의 ‘일타강사’였다.
“과외 선생 일을 열심히 했었어요. 그 때 목돈을 모았고, 이 돈으로 직원들 월급도 줬죠. 대전 둔산동 아파트 단지에서 유명한 일타강사였어요. 이 때의 경험으로 과외 선생님들의 프로필을 인증해주는 서비스를 개발해 운영했었는데, 고객들이 진짜 원하는 것과 제가 생각한 고충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문제와 고객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4명의 바인드 팀원들은 울산 자취방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던 중 김 대표는 패스트벤처스가 학교로 찾아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임채경 심사역을 만나게 됐다. “J커브 성장이 확실한 아이템을 찾을 때까지 절대 투자를 받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가졌던 김 대표는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임 심사역의 매력적인 설득에 끌렸다. 그리고 패스트벤처스가 만든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고, 사업 아이템이 없음에도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최종 선발 팀 중 하나로 꼽혔다.
“창업자가 오해하고 착각하고 있을 때 충격적인 질문을 던져주는 것이야말로 매력적인 투자자라고 생각해요. 임채경 심사역이 바로 그랬어요. 함께 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적으로 믿어주고 따라주는 팀원들과 서울로 오게 됐죠. 어떻게 저희가 스타트 프로그램에 선발됐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저희는 팔 수 있는 아이템이 없었잖아요. 대신 1년반 동안 고생하고 시행착오했던 경험, 우리의 꿈과 비전을 팔았죠.”
■ 호텔서 숙식하며 사업 아이템 발굴 몰두...패스트벤처스 창업가 정신 인상적
패스트벤처스로부터 투자금과 사무공간, 멘토링을 받게된 바인드 팀원 넷은 현재 호텔에 숙식하면서 선릉 패스트파이브에서 사업 아이템을 구체화 시켜나가고 있다. 지금은 커머스 분야로 사업 아이템을 잡고 최소 기능 제품(Minimum Viable Product)을 개발 중이다.
“서울에 와서 박지웅 대표와 미팅한 후 1천개가 넘는 글로벌 유니콘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우리나라에 적용 가능한 아이템들을 찾았어요. 이미 문제가 해결됐거나 할 수 없는 사업들을 지우고, 또 우리가 하기 싫은 것들을 지워가면서 200여개로 줄였고, 또 그 안에서 20개 정도로 추려냈죠. 그랬더니 ‘커머스’란 공통점이 보였어요. 아직 공개할 순 없지만 시장을 정하고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 계획을 짠 뒤, 현재 최소 기능 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드라마틱한 성공의 확신이 들기 전까지 투자를 받지 않겠다, 투자자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김 대표는 패스트벤처스 지원에 ‘진심’으로 만족감을 표했다. 세이프 제도(기업가치를 투자 시점에 정하지 않고 추후에 가치를 평가받는 제도) 하에 창업기업에 매우 좋은 조건으로 거의 바로 투자금을 쏴준 이유도 있지만, 그 보다는 박지웅 대표를 비롯해 임채경 심사역의 밀착 멘토링이 큰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심사역의 중요한 역할이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중요한 질문을 계속 잘 던져주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임채경 심사역은 시간을 너무 많이 써주시고 중요한 질문을 해주세요. 박지웅 대표도 일주일에 한두 번 직접 진행 상황을 공유 받는데, 매번 직접 공부를 하고 생각과 고민을 같이 해주죠. 시장에 없는 조건으로 투자를 받은 것도 좋지만 너희들은 일만해 나머지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해줄게 라는 친 창업가 마인드가 빈말이 아니고 진심으로 느껴져요.”
■ 가장 존경하는 창업가는 "여든 넘어서도 여전히 현역이신 외할머니"
그럼에도 창업가의 길은 외롭다. 생존 확률도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성공의 길로 들어서기 까지 ‘죽음의 계곡’도 넘어야 하고, 주변에서 바라보는 불안한 시선들도 모른 체 묵묵히 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 매달 빠르게 돌아오는 월급날에 혼자 속을 태울지도 모른다. 아직 어린 나이에 험난한 여정을 선택한 그의 용기가 대단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굳이 왜 저 길을 선택했을까 싶었다.
“외할머니가 여든 넘게 사업을 하시는데 중요하고 좋은 말씀들을 해주세요. 주변에서 좋은 대학 나와서 왜 돈도 안 되고 바보 같은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잘하고 있는 거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또 사람을 애써 바꾸려고 힘쓰지 말고, 사람을 남기는 방식으로 일하라고도 알려주셨죠. 좋은 사람들과 일하는 것 자체가 즐겁과 굉장히 의미있다는 것을 할머니를 통해 배웠어요.”
김시화 대표에게 많은 돈을 일찍 벌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물욕보다 인정욕, 명예욕이 강하다고 답했다. 쓰이지 않는 기술보다 세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도 말했다.
“환경공학과 환경정책 전공을 선택한 이유도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술이 사용됐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그랬어요.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계속 점점 더 많은 사람한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그런 일 말이죠.”
■ "기다려주고 함께 고민해줘서 고마워"
끝으로 박지웅 패스트벤처스 대표와, 패스트벤처스 차기 스타트 프로그램 지원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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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대표는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생각하려는 분 같아요. 회식 땐 웃고 인간적인 면도 느껴지고요. 볼수록 매력적인 분이죠. 답답했을 텐데 계속 기다려주고, 고민해줘서 고마워요. 투자 받는 일을 결혼에 비유하잖아요.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인데, 패스트벤처스 스타트업 보육 프로그램에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좋은 계약 조건이고, 심사역과 대표가 또 한 명의 팀원으로서 창업가 편에서 함께 공부하고 고민해주기 때문입니다.”
김시화 대표는 만 나이로 23살이다. 이른 나이에 ‘서버가 터질 만큼’ 영향력이 큰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그의 계획이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아보인다. 우연인듯 필연인듯 그가 자라온 환경과 그간의 여러 경험들이 김 대표를 강인한 창업가로 단련시켰기 때문이다. 패스트벤처스라는 든든한 지원군 아래 성장해 나갈 바인드를 기대하며, 한 단계 성장했을 즈음 다시 만나 또 한 번 그의 남다른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