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 닮은 뉴로모픽 반도체 '기술 독립' 선언

KIST, 스파이킹 신경망 기반 하드웨어 개발 포트폴리오 확보

과학입력 :2022/08/17 12:58    수정: 2022/08/17 13:15

뇌의 구조와 기능을 모방한 뉴로모픽 반도체는 인공지능(AI) 시대를 이끌 궁극의 차세대 반도체 기술로 꼽힌다. 마치 뇌와 같이 수많은 신호 중 꼭 필요한 신호만 전달해 효율을 높이는 스파이킹 신경망(SNN)의 구현은 뉴로모픽 기술의 핵심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윤석진)이 뉴로모픽 반도체 연구의 기반이 될 뉴로모픽 프로세서와 시스템을 개발했다. 인공뇌융합연구단 박종길 박사 연구팀이 뇌 신경망의 동작 원리를 모사한 대규모 디지털 뉴로모픽 시스템 '뉴플러스(Neu+)'를, 김재욱 박사 연구팀이 경험을 통해 피드백을 받아 최적의 행동을 학습하는 아날로그 뉴로모픽 프로세서 '뉴로핏(NeuroFit)'을 개발했다.

KIST 김재욱 박사(왼쪽)와 박종길 박사가 각각 개발한 뉴로모픽 반도체를 선보이고 있다. (자료=KIST)

이번에 확보한 스파이킹 신경망 반도체 개발 포트폴리오는 향후 뉴로모픽 반도체 개발을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형준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변방에 있는 우리나라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 등 외부 요인에 휘둘리기 쉽다"라며 "시장을 선도할 원천 기술을 개발해 기업이 상용화하는 선순환 생태계 구축을 위해 뉴로모픽 반도체라는 과제에 도전했다"라고 말했다.

■ 뇌처럼 효율적인 반도체 가능할까?

2016년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이세돌 기사와 대국할 때 알파고 가동에 약 7천만원의 전기료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바둑 한판 두는데 7천만원을 쓴 셈이다.

전력 소모는 심층신경망(DNN) 기반 AI 확산의 최대 걸림돌이다. AI는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자연어 처리와 디지털 휴먼 등 인류의 미래를 바꿀 서비스의 기반 기술이다. 하지만 전력 소모를 줄이지 못 하면 경제성이나 환경적 이유로 확대 도입이 어렵다. 이 때문에 AI 성능과 효율을 높이는 AI 특화 반도체가 애플, 구글, 테슬라 등 글로벌 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뉴로모픽 반도체 기술 발전 과정 (자료=KIST)

뉴로모픽 컴퓨팅은 여기서 더 나아가 사람 뇌의 효율성과 성능을 따라갈 새로운 구조를 추구한다. 사람의 뇌는 전구 하나를 밝힐 정도인 20W의 에너지로 고도의 지적 기능을 수행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스파이크 신호를 중심으로 하는 SNN이다. 뇌 신경세포(뉴런) 사이를 연결하는 시냅스는 의미 있는 자극만 전달해 잡음을 줄이고 효율을 높인다. 평소에는 신호가 평탄한 모습을 보이다가 의미있는 자극이 있을 때에는 스파이크처럼 뾰족하게 튀어 오로는 모습을 보인다 해서 스파이킹 신경망이라 부른다.

반면 기존 컴퓨터는 연산을 담당하는 CPU와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가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아야 하는 '폰노이만' 구조라 전력 소모가 크고 효율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 KIST, SNN 기반 하드웨어 포트폴리오 확보

뉴플러스는 뉴런의 동작 방식을 모방한 SNN 방식 프로세서와 주변 장치를 결합한 대규모 디지털 뉴로모픽 시스템이다. 100만개의 스파이킹 뉴런과 10억개의 시냅스를 실시간, 디지털 방식으로 모사해 집적도를 높였다.

뉴플러스가 외부 기업이나 연구소 등이 SNN 기반 응용 기술 개발에 활용할 범용 플랫폼 역할을 할 것으로 KIST는 기대한다. 드론이나 자율주행차, 서비스 로봇 등 모바일 환경에서 낮은 전력으로 움직여야 하는 자율 시스템의 AI 반도체로 활용 가능하다.

KIST 인공뇌융합연구단에서 개발한 디지털 뉴로모픽 반도체 KIST 'Neu+'의 실물 모습 (자료=KIST)

박종길 박사는 "인간 두뇌를 모사한 고차원 인지 기능이 가능한 AI 기술 개발을 위한 SNN 연구 플랫폼이 국내 최초로 도입된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뉴로핏은 피드백 신호를 받아들여 결과를 개선하는 적응형 운동학습이 가능한 SNN 기반 뉴로모픽 프로세서다. 1024개의 뉴런과 뉴런 1개당 64개의 시냅스를 탑재했다.

기존 뉴로모픽 프로세서는 두뇌 신경망 학습 방법의 일부만 모사하기 때문에 피드백 신호를 학습에 반영할 수 없었다. 뉴로핏은 피드백 신호를 받아들이는 경로를 만들어 출력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로봇 팔이 과일을 집을 때 너무 힘을 주어 과일이 터졌다면, 그같은 결과를 받아들여 행동을 수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뉴로핏은 전력 소모가 적은 아날로그 회로를 사용할 수 있었다. 연속된 신호를 처리하는 아날로그 회로는 운용 비용이 적게 들지만, 신호에 오류가 잘 생기기 때문에 높은 정확도와 신뢰성이 필요한 기존 CPU나 GPU엔 쓰기 어려웠다. 반면 뉴로핏은 피드백을 통한 학습으로 오차를 줄일 수 있어 아날로그 회로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인공뇌융합연구단에서 개발한 아날로그 뉴로모픽 반도체 KIST 'NeuroFit'의 실물 모습. (자료=KIST)

일상에서 움직이며 환경을 스스로 학습하는 저전력 이동형 로봇 개발 등에 활용할 수 있다. 김재욱 박사는 "피드백 신호를 반영하는 적응형 학습 방식의 도입은 앞으로 뉴로모픽 프로세서 설계에 저전력 아날날로그 회로의 비중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SNN 플랫폼 구축, 외부 기업-연구소 적극 협력

이번 연구는 기존 단위 소자의 실험실 연구 수준을 넘어, 집적도 높은 칩 제작을 기반으로 하드웨어까지 만드는 등 상용화에 근접한 프로세서를 개발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KIST는 설명했다. 뉴런과 시냅스 신소자 개발을 넘어 실제 응용에 필요한 SNN 프로세서까지 개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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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국가 간 외교안보 사안으로 번진 반도체 기술 경쟁에 대응할 원천 기술도 확보했다.

김형준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이 16일 KIST 서울본원에서뉴로모픽 반도체의 정책적 현황 및 필요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자료=KIST)

또 뉴로모픽 기술 개발을 위한 생태계 구축에도 나선다. 현재 인텔이 뉴로모픽 반도체 '로이히'를 개발하고 관련 연구개발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다만 핵심 전략 기술에 대한 접근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KIST는 "이번 연구로 확보한 SNN 뉴로모픽 칩을 활용해 자율주행이나 로봇 등의 산업화와 응용 연구를 수행할 기업이나 연구소와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