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9人에게 물어보니..."'칩4 동맹' 선택 아닌 생존의 문제"

[이슈진단+] 반도체 칩4 동맹…우리의 선택은(上)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22/08/03 15:04    수정: 2022/08/05 09:18

반도체 산업은 이제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국가 간 헤게모니 전쟁으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보이지 않는 국제 관계와 힘의 논리가 작동한다는 얘기입니다. 미국이 우리와 일본-대만을 묶는 '반도체 칩4 동맹(가칭)'을 만들자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이 연일 견제에 나서고 있어 자칫 시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장기적으로 우리 반도체 기업들에게 죽고 사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지디넷코리아가 산학연 전문가 9명의 의견을 듣고 우리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편집자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만나 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이 웨이퍼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양산 예정인 3나노미터(nm·10억 분의 1m) 공정 웨이퍼다.(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뉴스1)

우리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동맹'에 참여를 고민 중인 가운데, 반도체 산업계 및 학계에서는 반도체 칩4 동맹에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IP 코어와 설계, 장비 역량을 갖춘 미국, 그리고 소재·원료 분야에서 강한 일본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지디넷코리아는 지난 일주일간 국내 반도체 전문가와 경제연구원 등 9명을 대상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과 생태계의 향후 10년, 20년을 좌우하는 중요한 선택이 될 '칩4 동맹'과 관련해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인터뷰에는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 유재희 반도체공학회 부회장겸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연구위원,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 대표와 국내 반도체 공학과 교수 A, B, C, 국내 반도체 업체 대표 A, B 등 모두 9명이 참여했다. 국가 경제 안보와 관련된 민감한 사항인 만큼, 일부 전문가들은 기사에 익명을 요구했다.

<자문 주신 분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 유재희 반도체공학회 부회장겸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연구위원,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 대표

*국내 반도체 공학과 C, L, Y모 교수, 국내 반도체 업체 L, S모 대표

■ 칩4 동맹에 참여해야..."반도체 만들 수 없다면 팔 수도 없다"

그래픽=지디넷코리아

지디넷코리아가 취재한 반도체 및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칩4 동맹에 협력할 수밖에 없다는 공통된 의견을 내놓고 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우리나라가 칩4 동맹에 가입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사업단장은 "미국은 반도체 설계 기술, 장비뿐 아니라 퀄컴, 브로드컴 등 강력한 팹리스 기업들을 가지고 있고, 일본은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에 강하다"며 "최근 미국과 대만, 일본과 미국, 대만과 일본은 반도체 얼라이언스를 구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칩4 가입을 안 하면 외톨이가 될 확률이 높다. 미국과 적대관계를 두는 것은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대만 TSMC는 일본 소니와 공동으로 구마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고, 미국 애리조나주에서도 120억 달러(15조7천억원)을 투입해 반도체 신공장을 짓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우리나라가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장비, EDA(반도체 설계 툴) 등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면 반도체 자체를 생산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반도체 장비 톱5 중 3곳(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KLA)이 미국 기업이다. EDA 또한 미국 기업인 시놉시스(점유율 33%), 케이던스(23%) 등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반도체 기업 L모 대표는 "칩4 가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며 "만약 한국이 칩4 동맹에 안 들어 간다면, 몇 년 전 일본이 했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보다 훨씬 큰 내용의 규제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염려했다. 이어 그는 "칩을 만들 수 없게 되면, 팔 수도 없기 때문에 미국과 손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 대표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만약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 반도체 기술 제재를 받게 되면, 생산 능력이 있어도 반도체를 만들 수가 없게 된다"며 중국 화웨이 사례를 언급했다. 미·중 무역 전쟁으로 화웨이는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기술 및 공급 제재를 받으면서, 전세계 스마트폰 점유율 1, 2위에서 6위로 추락했다.

홍 대표는 "이런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감안해 우리는 굉장히 다른 전략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21세기 반도체는 경제 안보와 맞물려 있기에 산업의 재정의가 필요하다"라며 "우리 한국이 반도체 초강국으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본다"며 "메모리뿐 아니라 비메모리 부분을 어떻게 장악해 가느냐에 따라 국부 창출의 중요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칩4를 바라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연구위원은 "칩4는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과 굉장히 유사한 것 같다"라며 "반도체 기술 협력, 인재육성 등 차원의 협력이라고 봤을 때 정부의 칩4 협력은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 칩4 가입 조건, 유리하게 이끌어야..."성급히 결정할 문제 아니야" "플랜B 가져야" 의견도

반도체 학계에서는 우리나라가 칩4에 참여해 공조하더라도 국익을 위해 가입 조건을 유리하게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재희 반도체공학회 부회장겸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가 반도체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칩4에 가입해야 하지만, 중국의 보복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경제, 통상, 외교, 기술의 통합된 시각에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우리는 국익을 위해 칩4 가입 조건을 유리하게 이끌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한 세대 지난 기술 등에 선택적 기술 이전 재량권을 제공하거나 한국과 미국 모두가 원하는 외국 기업의 중국 현지 반도체 공장 증설 제한을 완화 또는 중국 반도체 수출 제한을 완화하는 것을 미국에 적극 설득하고 중국에는 당근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또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수출 부분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미국 또는 유럽 등의 시장 개척과 확장에 지렛대를 동시에 확보해 수출 안정화를 꾀하고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단, 이는 한국이 메모리와 파운드리 분야에서 기술 초격차를 유지함과 동시에 부족한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기술을 확보해 종합 반도체 회사로서 기술상 우위를 유지할 때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래픽=지디넷코리아

칩4 가입을 가급적 늦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반도체학과 C모 교수는 "미국의 압력 때문에 성급하게 칩4 가입을 하면 반도체 해외 수출 비중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큰 위기 상황에 봉착될 것"이라며 "가급적 칩4 가입을 보류 또는 늦추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칩4 가입을 거절하거나 미룰 명분이 없는 상황이다. 

그는 "칩4가 아닌 칩5에 유럽연합 (EU)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역제안 할 수도 있다"며 "정부는 중립을 표방하고 물밑에서는 EU를 가입시킨다는 전제에 우리 정부는 동의하겠다고 밝힌다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반도체 굴기를 시도하는 EU가 칩5에 들어오게 되면 레버리지 역할을 하게 돼 한국이 떠안게 될 리스크를 덜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C모 교수는 또 "만약 정부가 칩4에 가입할 수밖에 없다면, 플랜B로 미국에 다른 요구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반도체 수출에서 손실이 발생될 수 있으니 다른 대미 수출 분야에서 손실 보상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미국과 적극 협상하고, 안보 분야에서도 우리가 바라는 사항이 있다면 관철될 수 있도록 요청해야 한다"며 "호주처럼 핵잠수함 기술 개발을 허용하고 기술 일부를 이전을 해주는 것을 빅딜로 교환해야 한다. 이런 것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선택·거절 중에서 하나만 덜컥 골라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반면, 반도체 기업 S모 대표는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은 다른 문제"라며 칩5 동맹 가능성이 낮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는 "유럽에는 칩5로 들어올 수 있을 만한 결집된 힘이 없다"며 "유럽 내에서 독일 반도체 업체와 자동차 관련 업체들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 "중국 사드(THAAD) 때처럼 보복하지 못할 것"

우리나라가 칩4 동맹에 참여할 경우 가장 우려되는 사안은 과거 사드(THAAD) 배치 때처럼 우리 기업에 대한 경제 보복이다. 당시 중국 정부의 보복으로 인해 롯데를 포함해 현지에 진출한 우리 유통 회사들은 줄줄이 사업을 철수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칩4 동맹에는 중국이 사드 때처럼 보복하지 못할 것으로 관측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도 "중국은 사드때처럼 우리에게 보복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며 "반도체 산업의 피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서 "다른 산업(관광, 화장품, 엔터테인먼트 등)으로도 전면 보복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도체공학 L모 교수는 "우리가 메모리를 공급하지 않으면 중국이 아쉬운 상황"이라며 "중국은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를 사용하지 않으면 당장 IT 기기들을 만들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굴기를 목표로 하고 있는 중국이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협력하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픽=지디넷코리아

반도체학과 C모 교수는 "중국이 만약 보복을 한다면, 우리나라는 중국에 D램과 낸드플래시 수출을 중단하면 된다"며 "이것은 끝까지 해보자는 최후의 카드"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는 반도체가 부족해서 기존 가전에 있는 칩을 떼어서 쓴다고 한다. 전세계 메모리 시장의 70%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가 금수조치를 하면 중국도 피해를 입게 된다"며 "그럴 경우 최악의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중국의 경제 보복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칩4에 가입을 하더라도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고 중국에 안정적인 메모리 공급을 약속하며 안심시켜주는 것이 필요하다.

김형준 단장은 "미국의 관심사는 사실상 파운드리이기 때문에 중국에 위치한 한국 메모리 공장과 공급에 대해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양국을 잘 설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중국에 더 강한 자세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 대표는 "호주 또한 중국 수출 비중이 높고, 중국 유학생 비중이 높아 중국의 보복이 우려되는 상황에도 단호하게 대처하고 핵잠수함 기술 관련 오커스 동맹에 가입했다"며 "한국도 중국에 당당하게 맞설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경제 규모 순위에서 한국은 10위, 호주는 14위"라고 상기시키며 "한국이 약소국 태도를 보이는 것이 오히려 손실을 유발시키고 있다. 중국에 반도체에 대한 부분을 확실하게 얘기하고 당당하게 협상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 대만·일본은 칩4 가입 확정...中 보복 걱정없어 韓과 상황 달라

일본과 대만은 현재 미국 주도의 칩4 동맹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일본과 대만은 우리와 달리 중국의 보복에 대한 우려가 덜한 상황이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연구위원은 "작년 수출 데이터를 살펴보면, 대만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비중은 60%로 한국만큼 높고, 일본과 미국의 경우에는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각각 32%, 34% 정도"라며 "대만도 칩4 협력에 대해 한국과 동일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을 텐데도, 적극적 협력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단지 항공사진. (사진=삼성전자)

연 위원은 "만약 칩4가 대중 견제의 성격이라는 오해를 받거나, 보복을 당할 우려가 된다면 두 국가가 협력할 여지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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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일본으로부터 반도체 소재, 장비를 공급받고 있다. 일본이 중국에 수출하지 않으면 중국이 오히려 아쉬운 상황이다. 대만도 중국에 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 포함) 상당 부분을 수출하며 중국 의존도가 높으나, 우리와 달리 칩4 동맹으로 인한 중국의 보복에 눈치를 보고 있지 않다.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타워(사진=SK하이닉스)

반도체공학과 Y모 교수는 "일본은 기술을 가지고 있기에 중국과 대립각을 세워도 스스로 중국과 대적할 수 있는 상황이고, 중국은 대만의 경제가 붕괴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의 반도체 굴기의 핵심 인재들로 대만 출신이 많기 때문에, 대만에 보복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며 대만을 자국으로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