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쓰는 과학 이야기] 우영우의 자폐, 기억, 그리고 지능

자폐스펙트럼장애 가진 사람은 정보와 감각 처리 방식 달라…지능 진화와 연관성 찾는 연구도

과학입력 :2022/07/25 07:42    수정: 2022/07/25 12:35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여성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스펙트럼장애(ASD)를 갖고 있지만, 한번 읽은 책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탁월한 기억력을 바탕으로 멋지게 재판을 승소로 이끈다.

자폐를 앓고 있지만 의뢰인의 마음을 공감하기 위해 애쓰며, 주변 사람들의 도움 속에 조금씩 성장해 간다.

[사진1]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_메인 포스터1

우영우는 사람들이 흔히 자폐에 대해 가진 이미지들을 모아 놓은 캐릭터이다. 어눌하고 부자연스러운 말투, 몸을 좌우로 흔들거나 의미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 상대방의 말을 따라하는 반향어, 일반적이지 않은 특정 주제에 대한 집착 등은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전형적 모습이다.

또 법전을 줄줄 외는 놀라운 기억력은 자폐를 가진 천재, 혹은 서번트 증후군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맞닿아있다. 영화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카드놀이의 수를 모두 읽는 능력을 가진 자폐증 캐릭터나 헬리콥터를 타고 훑어 본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해 그려내는 스티븐 윌트셔 같은 사람은 대중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우영우는 ASD를 앓고 있지만 높은 수준의 학업이나 업무가 가능한 수준이다. 게다가 놀라운 기억력이라는 특출난 능력도 갖췄으며, 이 능력을 생활에 긍정적으로 활용한다. 이런 인물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을까?

■ 자폐는 대부분 지능 저하 동반...특별한 능력 갖기도

자폐는 사회적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반복적이거나 틀에 박힌 행동 문제가 유아 시절 시작돼 거의 평생 지속되는 뇌 신경 발달장애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이름에서 보듯 자폐와 관련된 증상과 발달 정도는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난다.

ASD 환자의 60% 이상은 정신 지체나 언어 발달 지연이 동반된다. 나머지는 '고기능성 자폐'라 부르기도 한다. 다만, 고기능(high-functioning)이란 말은 일반적 수준의 지능을 가졌다는 의미이지, 통상 수준보다 꼭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다.

더스틴 호프만이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자폐 환자로 출연한 영화 '레인맨'의 한 장면

자폐 등 발달 문제나 신경계 이상을 겪는 사람 중 어떤 분야에 특별한 능력이나 재능을 보이는 경우를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이라 한다. 본인의 전반적 지능이나 인지 능력에 비해 특정 분야에선 나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고, 일반인과 비교해서도 특출난 능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서번트 증후군은 음악, 미술, 계산 등의 분야에서 많이 나타나며, 많은 경우 뛰어난 기억력과 연관된 능력을 보인다.

ASD 환자의 10%에서 최고 30% 정도가 서번트 능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레인맨' 같이 특별한 능력을 보이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서번트 능력이 반드시 삶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전화번호부를 통째로 외우거나 5년 후 어떤 날이 무슨 요일인지 바로 대답하는 능력을 유용하게 쓰기는 어렵다.

ASD와 무관하게 '사진 기억'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눈으로 본 것들의 세부사항을 마치 사진을 찍듯 정확하게 기억하는 증상이다.

■ 우영우는 서번트 증후군?

우영우가 서번트 증후군 혹은 사진 기억 능력을 갖고 있는지는 극중에서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우영우가 스스로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갖고 있다" 또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장면은 나온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사회적 관계를 맺기 어려워하는 ASD의 일종이지만, 언어나 지능 발달에 큰 문제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일런 머스크 테슬라 CEO가 2021년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런 머스크 테슬라 CEO는 2021년 5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출연해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갖고 있음을 밝혔다. (자료=NBC)

우영우의 모델이라 할만한 실존 인물은 아마 미국의 여성 변호사 헤일리 모스일 것이다. 그는 3살 때 자폐 진단을 받았고, 마이애미대학 로스쿨을 졸업해 2019년부터 플로리다주의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10대 때 자폐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고, 팝아트 미술가로도 활동한다.

뉴스 영상 등에 나오는 그의 모습을 보면 일반적인 자폐 증상은 거의 느낄 수 없다. 지능이 정상 수준인 고기능 자폐이고, 어린 시절부터 집중적인 치료와 가족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처럼 자폐 증상을 가졌지만 지능에 문제가 없고 ASD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특정 분야에 대한 강한 관심이 직업적 필요와 잘 맞을 경우 학업을 잘 마치고 전문 직종에 종사하기도 한다. 지능이 높아 사회적 관계나 사람을 대하는 법을 학습해 겉보기에 티나지 않게 지내기도 한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변호사 헤일리 모스 (자료=헤일리 모스 홈페이지)

종합해 보면 우영우 같은 사람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만, 일반적 자폐 증상의 특징과 높은 지능, 특출한 서번트 능력을 함께 '눈에 잘 띄는' 모습으로 가진 인물은 드라마의 재미를 위한 설정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 나을 듯하다.

다만 ASD를 겪는 사람이 가진 기억 능력의 특성이 우영우와 비슷한 부분은 있다. 자폐인은 살면서 겪은 사건이나 상황의 전체적인 의미나 인상은 잘 기억하지 못 하지만, 어떤 개별 사건이나 세부 사항, 사물의 특징은 매우 잘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숲은 잘 보지 못 하지만 나무는 자세히 보는 셈이다. 또 시각적 자극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특성이 일반인과는 다른 우수한 기억력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는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경중을 판단하는 기능이 약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번 본 것을 자세한 세부 사항과 함께 그리는 능력을 가진 스티븐 윌트셔 (자료=윌트셔 홈페이지)

■ 자폐 유발 유전자가 지능 발달과도 연관 있다?  

나아가 자폐와 높은 지능 사이의 연관성을 암시하는 연구도 있다. 자폐를 일으키는 유전자와 우수한 지능을 발현하는 유전자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영국 에딘버러대학 연구진이 2015년 스코틀랜드 지역 거주자 1만명을 대상으로 인지능력 테스트와 DNA 분석을 실시한 결과, 자폐가 없지만 자폐와 연관된 유전적 특성을 가진 사람은 인지능력 테스트에서 더 높은 점수를 나타냈다.

연구를 주도한 에딘버러대 심리학과 토니-킴 클라크 박사는 "이 연구는 자폐 위험을 높이는 유전 변이가 자폐 증상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는 높은 지능과 연관됨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자폐를 가진 사람과 지능이 높은 사람은 뇌가 크고 빨리 자라며, 감각과 시공간 인지 능력이 예민하며 집중력이 높다는 등의 공통점을 갖는다.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 버나드 크레스피 교수는 2016년 학술지 '프론티어 인 뉴로사이언스(Frontiers in Neurosice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자폐 발생 위험을 높이는 여러 대립형질들이 동시에 지능을 높이는 데도 기여함을 보인 연구들을 거론하며 "진화 과정에서 지능이 높아지는 변화가 일어날 때 일어난 지능 관련 요소들의 불균형이 자폐 원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주로 인지 능력이 약한 자폐 증상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높은 지능 발현과도 연관되는 역설을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 신경다양성 포용할 수 있을까?

자폐에 대한 과학의 이해는 아직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며, 사람 간 소통과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많은 ASD 환자와 그 가족들이 큰 고통 속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드라마 '우영우'가 자폐를 드러내는 방식에 대해서도 찬반 의견은 있다.    

관련기사

다만 우영우 캐릭터가 판타지이건 아니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ASD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변화를 일으킨 것은 분명하다. 특히 이들이 환경에서 감각을 받아들이고 정보를 처리하거나, 기억을 저장하고 회상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 것이 가장 큰 기여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다름은 사회가 신경써야 할 약점이기도 하지만, 인류의 여정에 필요한 다양성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