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개발 R&D 지원 기간 짧다"…과제 선정 기준 '기술' 중요시 해야

[반도체가 미래다-1부] ⑥ K-팹리스 육성...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도약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22/06/23 09:05    수정: 2022/06/23 15:08

반도체 없이 살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반도체는 이제 사회와 산업의 생명수이자 권력입니다. 모든 것을 움직이고 연결시킬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멈추고 파괴시킬 수도 있습니다. 1960~70년대 노동집약적인 우리 경제를 첨단·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킨 반도체 산업이 이제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과 4차산업 혁명 속에 새로운 전환시대를 맞았습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생태계 확장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지디넷코리아가 창간 22주년을 맞아 '반도체가 미래다' 시리즈를 3부에 걸쳐 연재합니다. 우리 수출산업의 첨병을 넘어 경제안보 자산으로 평가받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를 면밀히 짚어보고, 무엇을 준비하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그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부: 세계는 반도체 전쟁

2부: 한국 반도체 신화는 계속된다

3부: 전문가에게 듣는다


최근 정부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팹리스 R&D 지원 사업' 규모를 늘리며 K-팹리스 육성에 나섰다. 메모리에 비해 그동안 미흡했던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키워, 한국이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목표다.

반도체 업계는 정부의 팹리스 지원 정책으로 최근 반도체 스타트업이 이전 보다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반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기간이 반도체를 개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에만 지원이 집중된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9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내 위치한 나노종합기술원을 방문해 반도체 클린룸 및 테스트 베드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사진=뉴스1)

■ 한국 팹리스 글로벌 점유율 1% 수준…정부, K-팹리스 육성 나선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전세계 점유율 1위로 막강하지만,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는 전세계 1% 점유율로 미흡한 상황이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21년 전세계 팹리스 시장에서 미국(68%), 대만(21%)이 주도하고 있으며, 한국(1%)은 중국(9%) 보다도 점유율이 낮다.

업계에서는 그간 국내 팹리스가 성장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특정 고객(대기업) 의존 ▲규모의 영세성 ▲인력 부족 등에서 취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모바일용 이미지센서(CIS) 등 국내 대기업 수요와 연계된 일부 품목에만 한정된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2021년 반도체 분야별 국가 점유율(자료=IC인사이츠)

정부는 뒤늦게 국내 팹리스 기업 키우기에 나섰다.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시스템반도체 기술혁신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국내 팹리스 업체에 총 2천400억원 규모의 R&D 지원을 시작했다. 또 지난해 처음으로 '팹리스 챌린지형 R&D' 과제를 신설해 기업당 3년간 55억원을 지원한다.

특히 정부는 전력 반도체, 차세대 센서, 인공지능 반도체 등 유망품목 집중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그 중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지원 규모를 2020년 831억원(82개 과제)에서 지난해 1천223억원(117개 과제)로 확대했다.

지난해 11월 '공동 설계자산(IP) 플랫폼'을 구축하며 중소 팹리스 기업의 생산 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도 마련됐다. '해외 IP를 구매해 제공하고, 동시에 IP의 국산화 개발을 지원한다는 정책이다. 

표=지디넷코리아

더불어 여러 팹리스가 공동으로 발주하는 '묶음발주' 시스템을 올해부터 도입했다. 정부가 시설과 장비를 지원해 구축한 나노종합기술원(대전)과 한국나노기술원(수원)에서는 중소 팹리스의 시제품 생산(MPW)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한 '컨소시엄형 기술개발사업'이 추가됐다. 이 사업은 중견 팹리스 기업 등의 R&D과제에 4개 이내의 중소 팹리스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중기부가 10개 과제를 선정해 4년간 최대 40억원의 R&D자금을 지원한다. 그간 단기·소액의 개별 기업 지원에 대한 한계를 보완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중기부는 지난 1월 말 '팹리스·파운드리 상생협의회'를 발족해 ▲중소 팹리스의 시제품(MPW) 공정 제공 확대 ▲팹리스-파운드리-정부 간 협업과제 추진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또 중기부는 지난 17일 팹리스에 대한 벤처투자가 확대되도록 ‘초격차펀드’를 내년에 신설한다고 밝혔다.

■ "칩 개발하기에, R&D 지원 기간 짧다"…과제 선정 기준 '기술' 중요시 해야

반도체 업계에서는 정부가 다양한 팹리스 지원 정책을 내놓는 것에 대해 반기는 입장이다. 그러나 개발 기간이 오래 소요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 상 과제 지원 기간이 짧고, 금액이 적어 아쉽다는 의견도 다수 나오고 있다. 정부의 반도체 R&D 지원은 과제마다 다르지만, 평균 3년이다.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 관계자는 "현재 정부 지원 팹리스 프로그램은 반도체 개발에 3년간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인공지능 반도체를 포함해 팹리스 분야에서는 단기간에 반도체를 개발하고, 성과를 내기가 힘들다"라며 "만약 가능했으면 이미 국내에 큰 팹리스 회사들이 대거 배출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팹리스 업체는 "반도체는 개발에서 양산까지 막대한 초기 자금이 필요하다”라며 "반도체 스타트업이 칩 양산까지 이뤄지려면 정부의 지원금 뿐 아니라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전했다.

팹리스 R&D 정부 과제를 선정하는 방식이 개선됐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팹리스 업체 관계자는 "정부는 3~4년 단기적으로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과제를 우선적으로 선정하고 있다"며 "외형적인 부분만 보지 말고 차별화된 기술로 시장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팹리스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팹리스 국책 과제 신청 당시 미국의 N사 제품 대비 OO배 빠른 AI 칩을 만들 것이란 목표를 제시했지만 정부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고, 굉장히 도전적'이라고 평가했다"며 "정부는 가능성이 없다고 평가했지만, 몇 년이 지나 칩 개발에 성공해 기술력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스타트업은 창의적인 기술을 개발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며 "정부가 기술을 잘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반도체 웨이퍼 (사진=삼성전자)

■ MPW 지원 확대…대기업이 반도체 스타트업 인수해 '생태계 확장' 필요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팹리스 업체는 "대만에서는 대학교 연구실, 팹리스 스타트업들이 TSMC에서 거의 헐값으로 시제품 생산(MPW)를 만들 수 있다"라며 "국가적으로 지원을 많이 해주고 있고, TSMC도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현재 삼성전자 또한 오랜 기간 동안 국내 스타트업에게 MPW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지금 보다 더 용량 확대와 첨단 공정 지원을 늘렸으면 좋겠다"며 "지난 2년간 반도체 숏티지로 글로벌 파운드리 업체들이 고객사 생산 물량을 늘리면서 중소 팹리스 업체들은 MPW 물량을 확보하기가 전 보다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 "인공지능 반도체는 14나노, 8나노, 5나노 등 첨단 공정에서 생산되야 글로벌 경쟁이 된다”라며 "미세 공정 지원이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현재 삼성전자, DB하이텍, 나노종합기술원 등은 국내 중소 팹리스 업체를 대상으로 시제품 MPW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사장은 지난 1월 '팹리스·파운드리 상생협의회’ 발족 당시 "국내 중소 팹리스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삼성전자도 힘을 보태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중기부와 삼성전자는 오는 7월 우수 팹리스 창업기업을 선발·지원하는 '팹리스 챌린지 대회'를 개최해 팹리스와 파운드리 간 상생의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을 조성할 계획이다.

관련기사

국내 반도체 생태계 성장을 위해 국내 대기업이 반도체 스타트업을 인수할 때 규제를 완화해 주는 제도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스라엘은 반도체 스타트업의 인수를 통해 동반성장이 이뤄지고 있는 것과 달리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경우가 드물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국가적으로 대기업이 기업을 인수할 때 독과점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손자회사는 100% 지분을 인수할 수 없는 등의 규제가 많다"며 "외국의 경우에는 스타트업이 인수되서 대기업 안에서 사업을 확장시키고, 대기업 내부 인력이 나와 또 창업을 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생태계가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출신이 창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글로벌과 비교하면 비중이 적은 편"이라며 "국내에서도 의미 있는 반도체 스타트업의 인수합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