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며칠 만에 시가총액 수백억 달러가 증발한 암호화폐 '테라(UST)·루나(LUNA)' 사태를 계기로, 가상자산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를 최소화할 대책 마련에 각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까지 제시된 방안들을 보면 투자자가 참고할 만한 정보 공개와 상장 관련 규제 강화 등 보다 안전한 투자 환경을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암호화폐 백서 제출 의무화, 암호화폐 전문 공시 시스템 구축, 암호화폐 상장 심사 전담 외부 위원회 도입 등이 언급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해결책은 마땅치 않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기존 금융 시장이 아닌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투자 유인 자체가 높은 위험성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꾀하려는 데 있고, 급변하는 시장 때문이라도 사전에 암호화폐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고 투자를 단행하도록 유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자 보호 및 사업자 관리·감독 제도를 점진적으로 보완해나감으로써, 장기적으로 테라 사태처럼 투자자 불안이 단기간에 증폭하는 경우를 줄여나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확 커진 가상자산 시장, 증권에 준하는 규제 받아야"
테라 사태가 발생한 이후 정부와 국회는 재발 방지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국내에서만 UST·LUNA 폭락으로 약 28만명이 투자 손실을 입었다. LUNA 총 보유량은 700억개 수준으로 조사됐다.
이후 UST와 LUNA에 적용돼 있는 가치 유지 알고리즘에 맹점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거래소의 암호화폐 상장 심사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거래소 자체 심사로는 위험한 코인 상장을 막을 수 없다는 것.
지난해 말 자본시장연구원이 금융위 연구용역으로 발간한 '국회 발의 가상자산업법의 비교분석 및 관련 쟁점' 보고서도 "가상자산 상장 규정은 감독 당국의 승인을 얻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국내에서 거래되는 가상자산 시가총액을 고려할 때 상장 및 상장폐지를 위한 심사 및 실사 수준이 증권시장에 비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율규제의 성격이 강한 상장 규정의 경우 개별 가상자산 거래업자가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정책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루나·테라 사태, 원인과 대책은' 긴급세미나에서도 코인 평가를 전문으로 하는 공인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학계 목소리가 나왔다.
가상자산 관련 공시 서비스가 이번 사태에서 투자자 보호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현재 전문 플랫폼 '쟁글'이 가상자산 공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거래소들도 코인 관련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UST·LUNA 폭락이 급격히 발생함에 따라, 시세 폭락이 상당히 발생한 이후에야 투자자 안내가 이뤄지는 등의 한계가 드러났다.
이에 증권 시장과 유사한 정도로 공시 시스템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구체적으로 공시 의무 내용을 법제화하고, 가상자산에 특화된 '전자공시시스템(DART)'를 운영해 재발을 막자는 제안이다.
■"업권법 도입 좋지만"…'테라' 재발 막다 산업 후퇴 우려
가상자산 업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업권법 논의가 진전을 보이는 점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현재 언급되는 대책들로는 '불나방' 투심을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봤다. 자칫 투자자를 보호하려다 가상자산 산업에 악영향을 초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우려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상장 절차에 대한 투명성 문제는 지속적으로 언급돼온 만큼 거래소들이 전문성, 신뢰성을 확보하고자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법제가 도입되면 준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암호화폐 상장 심사 전문 위원회도 또 하나의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점, 상장되는 코인 종류가 동일하게 제한되는 만큼 유동성이 큰 거래소에 투자자가 몰릴 수 있다는 점, 시장 변화 속도가 빠른 만큼 수요가 많은 코인을 적시에 출시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국내 산업 활성화가 저해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업계와 당국 타협점이 있을 듯하나 아직 대안이 마땅치 않아보인다"고 봤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쟁글 같은 공시 플랫폼 외에도 거래소들이 개별 코인 관련해 유의할 정보를 제공 중이고, '묻지마' 투자가 만연했던 3~4년 전 대비 투자 정보 제공이 상당히 강화됐다"며 "투자자 보호가 강화돼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역사가 훨씬 긴 주식 시장과 빗대어 가상자산 시장을 문제삼고 산업 육성보다 규제 강화 위주로 업권법 논의를 재점화하는 현 분위기는 우려가 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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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업권법이나 상장, 공시 관련 가이드라인도 없어 사업자들이 자의적 판단을 통해 거래소를 운영해올 수밖에 없었다"며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상장한 코인에 대해 일일히 세밀하게 정보를 제공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 당국에 가상자산 백서 제출을 의무화하거나 정보 공시에 대한 구체적 규정을 마련하는 것은 제도 보완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고 본다"고 짚었다.
이 관계자는 "테라 사태를 보면 투자자들이 가상자산에 대해 잘 모르고 투자하다 보니 하락장에 따른 불안이 팽창되면서 상황이 더 악화됐고, 이런 불안이 코인 시장 전체로 퍼지는 양상을 보였다"며 "결국 코인이 위험자산이라는 점을 투자자가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공시 제도를 강화해 이번 사태처럼 불안 심리가 급속히 팽창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라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