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쓰는 과학 이야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오픈 액세스

한동훈 청문회 때 도마 위에 오른 '오픈 액세스'

과학입력 :2022/05/12 14:00    수정: 2022/07/01 00:51

※ 솔직히 과학 기사 읽기 어렵습니다. 알기 어려운 여러 개념과 용어가 쏟아져 나오는데, 학생 시절 배운 과학 지식은 가물가물 합니다. 과학계의 이슈는 외계어처럼 멀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과학의 주요 개념과 기술에 대한 이해는 현대를 살아가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필수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풀어 쓰는 과학 이야기'는 과학의 궁금증을 같은 눈높이에서 쉽게 설명하는 코너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때 고등학생 딸이 해외 학술지에 게재한 영어 '논문'을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대입 스펙을 쌓기 위해 고등학생이 작성하기 어려운 논문을 부당한 방법으로 써서 게재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 © News1 허경 기자

이에 대해 한 후보자측은 "논문이 아니라 고등학생 수준의 짧은 아티클"이라고 반박했다. "기사에서 언급된 '해외 학술지'는 간단한 투고 절차만 거치면 바로 기고가 완료되는 오픈 액세스 저널이라 문제 없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런데 한 후보자가 거론한 '오픈 액세스 저널'이란 말이 또 다른 논란의 불씨가 됐다.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 등 연구자 단체들이 "오픈 액세스 운동을 왜곡하지 말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범죄와 교정을 주로 다루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 청문회에서 난데 없이 과학 이슈가 논란 거리가 된 것이다. 한 후보자와 교수들이 서로 다르게 이야기하는 오픈 액세스란 도대체 뭘까?

■ 오픈 액세스란?

오픈 액세스란 학술 논문을 누구나 쉽게 무료로 볼 수 있게 하자는 운동이다. 비싼 구독료 때문에 개인 연구자는 물론, 대학이나 도서관까지 학술지를 구독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연구 활동에도 제약을 받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다.

1995년 미국 스탠퍼드대 도서관이 설립한 하이와이어(HighWire)가 학술지 '생화학저널(Journal of Biological Chemistry)'을 온라인 출판한 것이 시초다. 2002년 세계 과학자들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모여 "모든 연구 논문을 인터넷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부다페스트 선언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오픈 액세스 방식을 채택한 저널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기존 학술지가 오픈 액세스로 전환하기도 했다. 논문을 저널에서 무료 공개하거나, 연구자가 자신이 쓴 논문을 공통의 표준을 따르는 논문 보관 사이트에 올리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지난해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연구재단 등 주요 연구지원 및 공공학술정보서비스 기관들이 모여 오픈액세스 추진을 선언했다.

학술 출판이 소수의 글로벌 대형 출판사에 집중되면서, 구독료가 치솟는 상황이 이러한 움직임의 큰 이유다. 지난해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인 김명환 교수는 전체 학내 구성원에 메일을 보내 "전자자료 구독 비용으로 인한 적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오픈 액세스 운동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울대 도서관은 대형 과학 저널 출판사인 엘스비어의 전자자료 구독에만 예산의 3분의 1인 27억원을 지불했다고 한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국내 대학도서관이 2019년 지불한 해외 저널구독료는 1천623억 원으로, 2년 동안 71억 원 늘었다. 부담을 이기지 못한 기관들이 저널 구독을 줄이면서 연구 위축은 불가피해졌다.

오픈액세스 개념도 (자료=오슬로대학)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논문을 무료로 접할 수 있게 해 연구 성과의 확대와 재생산을 꾀하는 것이 오픈 액세스 운동의 핵심 취지다.

오픈 액세스 저널 역시 논문을 받아 게재할 때 일반 저널처럼 엄격한 '피어 리뷰' 절차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 논문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논문을 개방하는 것이 핵심이지, 논문을 쓰는 사람에게 검증 없이 출판의 문을 개방하는 것이 오픈 액세스는 아니다.

■ 그런데 오픈 액세스가...

그런 점에서 오픈 액세스를 언급한 한 후보자의 해명은 적절하지 않다. 오픈 액세스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면 쉽게 하기 힘든 해명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런 인식이 근거가 없는 것만은 아니다. 많은 오픈 액세스 저널이 돈만 내면 별다른 검증 없이 논문을 마구 실어주는 '약탈적 학술지' 모습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오픈 액세스 저널도 기본적인 운영 경비가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구독료 기반의 기존 학술지와는 다른 수익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논문을 게재하는 사람이 돈을 내는 방식과 대학이나 도서관 등이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 등이다.

이중 게재를 원하는 사람이 돈을 내도록 하는 방식은 질 낮은 논문이 제약 없이 실리는 저널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신생 학회가 초기에 회원과 논문을 빠르게 모으기 위해 오픈 액세스 방식을 채택하고, 기고자의 돈을 받아 운영하다 보면 투고 문턱이 쉽게 낮아질 수 있다. 처음부터 이럴 목적으로 만들어진 저널에 오픈 액세스는 좋은 포장이 될 수 있다.

미국의 문헌정보학자 제프리 빌은 2010년 검증 없이 논문을 게재하는 오픈 액세스 저널들의 명단을 발표하며 '약탈적 저널'이란 말을 처음 썼다.

약탈적 오픈 액세스 저널에 대해 문제제기 한 제브리 빌 (자료=위키피디아)

오픈 액세스 저널이 '간단히 투고할 수 있는 저널'이라는 한 후보자의 인식은 이런 현실에서 나온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 후보자의 발언이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다. 오픈 액세스에 부정적 의미를 담으면서까지 자녀 활동을 해명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한 후보자의 자녀가 아티클을 게재한 ABC리서치얼럿은 우리 정부가 운영하는 건전학술활동지원시스템에 '주의'를 요하는 학술지로 분류돼 있다.

건전학술활동지원시스템에서 ABC리서치얼럿을 검색한 결과 (자료=국가오픈액세스플랫폼)

■ 오픈 액세스의 미래 

오픈 액세스는 연구 성과를 널리 확산하고 후속 연구를 촉진해 과학의 발전을 더욱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오픈 액세스가 싫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논문 검증과 편집, 저장과 유통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과학자와 학술지의 연구 윤리가 가장 중요하지만, 양심에만 맡겨서는 시스템을 확립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오픈 액세스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도 활발하다. 특히 공공기금의 지원을 받은 연구 성과물은 오픈 액세스 방식으로 공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은 공공 재원이 투입된 연구의 오픈 액세스 공개를 의무화 혹은 독려하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2008년 국립보건원(NIH)의 지원을 받은 연구 성과를 오픈 액세스 저널로 발표하게 하는 법을 제정, 정책적으로 오픈 액세스를 지원하는 첫 국가가 됐다. 2013년엔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공공연구 성과의 개방을 촉구하며 연방 기관에 관련 정책을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유럽은 연구 지원 사업 '호라이즌 2020'을 추진하며 연구 과제 계약 단계에서 오픈 액세스 저널 등재와 논문 공유 서비스 업로드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플랜S'라는 별도의 지원 계획도 수립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연구재단과 과총 등을 중심으로 정부 지원을 받은 연구 성과의 오픈 액세스 공개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세계 주요 국가 연구기관과 대학, 연구지원기관들도 GRC(Global Research Council)이나 OA 2020 등의 국제 연대 활동을 통해 오픈 액세스 확산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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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학계는 여전히 오픈 액세스로 전환하기 위한 과도기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대형 학술 출판사 위주의 구독 정책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이를 넘어설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런 전환 과정에서 연구기관의 부담이 오히려 늘어나거나 학술 윤리적으로 불투명한 영역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더 많은 지식을 더 자유롭게 만들고 전한다는 과학계의 기본 전제는 변하지 않는다. 결국 길을 찾겠다는 오픈 액세스 운동의 목표에 기대를 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