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EU위원회에서 임직원 500명 이상 대기업 등에 대해 공급망 실사 의무를 부여하는 법안인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법(A directive on 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을 채택했다. 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올 3월 미국 상장 기업들을 대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포함해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기후변화 대응 공시 표준안 초안’을 공개했다.
다행스럽게도 EU와 미국에서 중소기업을 직접 대상으로 하는 추가적인 규제를 발표하지 않았다. 이로써 당분간 중소기업은 공급망 실사 의무 등 ESG 관련 규제에서 안전할 전망이다.
하지만 삼성, 현대자동차 등 유럽에 일정 규모 이상 지사와 공장이 있는 한국 대기업은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법의 직접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즉, 글로벌 기업이라면 본사가 어디에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공급망 실사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고, 이러한 글로벌 기업에 납품하는 국내 중소기업들도 ESG 규제를 피해 갈 수 없게 됐다. 이런 저런 이유로 기업의 ESG 경영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어디서부터 ESG를 시작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러한 때에 ESG 추진의 첫발자국으로서 지난해 12월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K-ESG 가이드라인 v1.0’을 펴냈다.
'K-ESG 가이드라인'의 특징 중 하나는 정보공시에 별도의 점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ESG 평가요소에는 E, S, G만 있는 것이 아니라 P라는 정보공시 항목이 별개로 있다. ESG 관련 정보를 홈페이지 등에 정기적으로 공개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스타트업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ESG 항목이다.
E(환경)와 관련하여,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온실가스 배출량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이 사활을 걸었다 싶을 정도로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항목이다. 필자가 ESG 자문을 한 어느 기업에서는 사용자가 직접적으로 소유하고 통제하는 온실가스 배출원을 줄이기 위해(Scope 1) 기업 내부적으로 사용하는 냉매를 온실가스가 아닌 다른 물질로 변경하기도 했고, 전기와 열 등의 에너지를 사용할 때 간접적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Scope 2)를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 사용으로 눈길을 돌리기도 했다. 또한 어느 외국계 기업에서는 내부적으로 생산되는 폐기물처리 방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ESG 컨설팅을 받기도 했다.
다만, 환경적으로 괄목할만한 ESG 성과를 얻을 수 있는지 여부는 사업과 업종 특성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ESG 중 E(환경)의 개선을 추천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만약 독자의 기업이 제조업에 해당한다면 환경 부분에 중점을 두고 기업 전반에 대한 ESG 변화를 도모해보는 것도 추천할만하다.
그러나 S와 G, 즉, 사회와 지배구조 분야는 업종과 상관없이, 특히 스타트업을 위시한 중소기업도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는 영역이다. 사회(S)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정규직 비율, 여성 구성원 비율, 장애인 고용률, 산업안전 및 지역사회 관련 부분이다. 조직 전체 인력 대비해 정규직 비율이 높을수록 ESG 평가 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조직 전체 구성원 중 여성 비율과 미등기임원 중 여성 비율의 차이를 측정해 여성 구성원이 적절히 배치되고 있는지 여부도 평가 항목에 포함된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을 포함한 소비자보호법, 산업안전보건법 등과 관련된 산업재해 발생 여부도 중요한 지표이고, 지역사회 발전에 얼마나 공헌하고 있는지 여부도 평가한다. 참고로 매년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지역사회공헌인정제가 있다. 지역사회공헌인정제의 경우, 신청 비용이 저렴한데 이것마저 심사 통과 후 인정을 받은 경우에만 지급하도록 돼 있다. 지역사회공헌인정제 심사에 참여해 인정을 받는다면 최소한 사회(S) 분야에서는 다른 기업과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G의 지배구조에서는 이사회 구성과 주주권리, 윤리경영이 가장 큰 쟁점이다. 이사회가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사회 내에 ESG 안건이 상정되고 있는지 여부를 평가한다. 이때 전체 이사의 출석률 또한 중요하다. 즉, 이사들이 이사회에 제대로 출석만 해도 최저점은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이사회의 운영이 경영진과 분리되어 자율적으로 되고 있으면 더 높은 가점을 받을 수 있으며, 자율적으로 운영되는지 여부는 안건 다양성, ESG 안건 존재, 안건 부결 정도 등에 비춰 도출할 수 있다.
ESG와 관련된 지속가능 보고서를 펴내고 있는 국내의 몇 개 안 되는 대기업 중에도 ESG라기 보다는 기존의 CSR 측면에서 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하고 있는 회사가 많다. 대기업도 이러한데, 스타트업을 포함한 중소기업들의 경우, 더욱 ESG와 관련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때에 K-ESG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고 있는 중소,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 ESG 평가 기준은 최소한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 필자는 스타트업들에게 돈이 드는 거창한 ESG 경영 컨설팅을 받기 보다는, 지금 당장 K-ESG가이드라인을 펼친 후,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체에 대한 ESG 점수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해 보기를 추천한다. 이러한 자가 진단만으로도 스타트업은 ESG 경영 첫발을 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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