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떠난 고위직 0명…젤렌스키의 리더십

NYT, 전쟁 2개월 맞아 우크라 대러 선전 배경 분석

인터넷입력 :2022/04/26 10:25    수정: 2022/04/26 14:12

온라인이슈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전 초기 수도 키이우 대통령궁 3km까지 러시아군 탱크가 진입하고 시가전이 벌어지면서 러시아는 물론 많은 서방 정부가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와해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키이우 이곳저곳에서 셀피를 찍어 올리면서 수도에 남을 것임을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믿도록 만들었다. 또 자신의 고위 보좌관, 각료들도 위험을 감수하고 남도록 명령했다.

[키이우=AP/뉴시스] 우크라이나 대통령 공보실이 25일(현지시간) 제공한 사진으로, 왼쪽부터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만나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04.25.

그러자 젤렌스키 정부의 여러 기관들이 서로 조율하면서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요 정치인들도 수십년 고질인 정치 공방을 멈추고 지금까지 단합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외 망명하거나 탈출한 고위 당국자가 한명도 없이 공직사회 전체가 재빠르게 전시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 두달을 맞아 러시아의 침공에 효과적으로 맞서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비결은 바로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도력과 우크라이나 정부의 효율적 대처라고 강조하는 기사를 실었다.

세르히 니키포로우 젤렌스키 대통령 대변인은 "전쟁 초기 모두가 충격에 빠져 어쩔 줄 몰랐다. 키이우에 남아야 하는 지 탈출해야 하는지. 대통령이 아무도 떠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우린 키이우에 남아 싸웠다. 그게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매일같이 동영상 연설을 통해 용기와 대항의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붇돋우고 동맹국들이 무기, 자금, 정신적 지원을 하도록 촉구한다. 24일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키이우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을 만나 추가 군사지원 약속을 받았다. 또 미국이 키이우에 대사관을 재개할 것이라는 상징성 큰 약속도 받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배경은 정부가 경제 유지를 위해 각종 규제를 재빨리 없애고 생필품을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등 기민하게 움직인 점도 크다.

예컨대 우크라이나 정부는 키이우의 심각한 식량부족 사태를 예견하고 화물운송 관련 규정을 완화하면서 지난달 부가가치세를 2%로 낮추었으며 뒤에 다시 원하는 사람만 내도록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당시 "낼 수 있으면 내고 못내도 독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과거 서로 지나친 경쟁으로 대립하던 여섯곳의 TV 방송국을 하나로 통합했다. 국가 안보를 위한 통합이라고 강조했지만 야당과 자유언론 지지자들의 반대가 있었다. 또 전쟁 직전까지 치열하게 대립하던 정적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과 분쟁을 멈췄다.

정치전문지 우크라이나 월드(Ukraine World) 볼로디미르 예르몰렌코 편집국장은 애국심이 폭발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일하기 쉬워진 것이 사실이라면서 "우크라이나의 각 단체들이 특정 정치인에 속해 있지 않다는 점이 우크라이나 정치의 특징이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 속해 있으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에 용기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젤렌스키의 노력을 무시해선 안된다"며 그가 전쟁전의 대중주의 정치에서 벗어나 위기속 리더십을 잘 발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코바가에 있는 젤렌스키 집무실은 군인들로 북적인다. 대통령궁 복도와 계단 참마다 모래주머니로 총좌를 만들어두고 있다. 니키포로우 대변인은 "우리는 바로 이 건물 안에서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코미디언 시절 함께 일하던 사람들을 측근으로 배치해 정실인사를 한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팀들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가며 효과적으로 일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과 직접 통화한다. 아침 첫 전화일 때도 많다. 이어 총리 또는 장관, 군 및 정보국 지도자와 화상회의를 하면서 군사 문제 및 민간 문제를 함께 논의한다.

미국, 영국, 이스라엘은 물론 전세계 여러나라 의회를 상대로 한 화상연설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전시 역할을 대표하는 장면들이다.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치열하게 전투하고 있더라도 정보전에서 만큼은 우크라이나가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있는 것이다.

배우 출신으로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극적 요소를 잘 살리는 열정적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물론 전세계의 지지를 이끌어내 왔다. 원고를 보고 하는 발언도, 즉석 발언도 있다. 38살의 언론인 출신 정치 분석가 드미트로 리트빈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이 터지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즉시 국내 정치 분쟁을 끝냈다. 러시아군이 국경 근처에 집결할 때까지 티격태격해온 끝에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최대 정적 포로셴코 전 대통령과 화해했다. 러시아군이 침공하자 포로셴코는 3월 "젤렌스키를 만나 악수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대통령을 확고히 지지한다. 우리의 적은 하나다. 그 적의 이름은 바로 푸틴"이라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친러 야당을 불법화하면서 여당인 '국민의 일꾼'이 2019년 선거에서 의회 다수당이 됐다. 이에 따라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이 터지기전 자기 인물들로 내각을 구성할 수 있었고 덕분에 전쟁에 일사불란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 우크라이나 내각은 대통령측 사람들과 야당 사람들이 섞여 늘 분란이 있었다.

측근들은 대부분 언론, 영화, 코미디업계 출신들이다. 영화제작자 출신 비서실장 안드리 예르막은 우크라이나 정계의 실질적 2인자로 꼽힌다. 헌법상으로는 전쟁 초기 서부로 도피한 루슬란 스테판축 의회의장이 권력서열 2위다. 또다른 측근인 언론인 출신 보좌관 미하일로 포돌략은 러시아와 협상을 전담하고 있다. 극작각 출신 세르히 셰피르가 국내 정치 보좌관, 촬영감독 출신 키릴 티모셴코는 인도 지원 담당 보좌관이다. 군 수뇌부는 발루지니 총사령관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러시아 반군과 8년 동안 전투를 벌인 경험을 가진 장교들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초기 정부 부처에 무기 확보, 식량 등 물품의 운송, 휘발유와 중유 공급을 우선하도록 지시했다. 각 부처는 이를 위해 관련 규정을 있는대로 고쳤다. 덕분에 러시아군에 포위된 키이우에서 식량 공급 부족 현상이 크게 일지 않았다.

공급문제가 불거지자 대통령궁이 직접 나서서 식품점 체인, 운송회사, 자원봉사 운전자를 주선해 트럭 1대가 모든 식자재를 운송할 수 있도록 했다. 상점들이 웹사이트에 주문하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트럭이 바로 물자를 공급하도록 했다. 운송비는 공짜거나 연료비값만 받았다.

6개 TV 채널을 하나로 묶어 하나의 뉴스 채널만 남긴 것과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 위험 때문에 의회가 불규칙하거나 비공개로 잠시잠시 열리는 것이 전쟁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꼽힌다. 의회는 시간에 쫒기면서 충분한 토의없이 법안을 통과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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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미로바노우 대통령 경제고문은 당장은 단결이 필요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다원주의적 정치 문화가 복원될 것이라고 말했다.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자유주의 또는 보호주의 경제 정책, 가격 통제, 투자 유치 방안 등 모든 것을 두고 다시 싸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공=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