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짜뉴스를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

영 연구진, '사실이 될 가능성' 있다면 거짓말 용납 경향 있음 밝혀

과학입력 :2022/04/15 09:42    수정: 2022/04/15 16:08

'될 때까지 되는 척 하라 (fake it till you make it)'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비록 실제 능력이나 자신감, 긍정적 태도가 없더라도 그런 척 하며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조언이다. 

이는 개인뿐 아니라 스타트업 기업이 초기 어려움을 이겨내고 무모한 도전을 버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칫 거짓을 사실로 믿어버리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피 한 방울로 250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며 투자자를 모았다가 사기죄로 유죄 평결을 받은 엘리자베스 홈즈 테라노스 창업자는 정말로 그런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을까? 그는 "기업가 정신은 1천 번 실패해도 1천 1번째 성공할 수 있다는 태도를 요구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포브스, 뉴욕타임스 스타일, 포츈 매거진의 표지 모델로 선정된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

언젠가 현실로 만들 가능성이 있으니 거짓말은 아니라고 스스로 설득한 셈이다. 그의 사례는 특이한 경우가 아니다. 기업이나 정치인, 광고주, 구직자 등 누구에게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어떻게든 현실이 되도록 할 가능성이 있다면, 사람들은 거짓말을 덜 나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거짓말임이 명백하더라도, 이를 현실로 만들 방법이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그 거짓말이 비윤리적이라 느끼는 정도가 약해졌다. 

■ 결국 그렇게 될 거야

이는 사람들이 거짓정보나 가짜뉴스를 쉽게 받아들이고 퍼뜨리는 이유 역시 설명해준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큰 틀에서는 사실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 연구진의 이 연구 결과는 미국심리학회(APA)가 발간하는 '성격 및 사회심리학 저널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14일(현지시간) 실렸다.  

가짜뉴스 (출처=픽사베이)

연구진은 3천 600명의 참가자에게 몇가지 질문과 진술을 보여주며 반응을 조사했다. 

이를테면, 59개 국가에서 온 447명의 MBA 학생에게는 "친구가 금융 모델링을 할 줄 모르면서도 할 줄 안다고 이력서에 거짓말을 적는다고 상상해 보라"고 요구했다. 이중 일부에게는 '친구가 다음 계절 학기에 금융 모델링 수업을 수강한다'와 같이 친구의 거짓말이 사실로 바뀔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을 생각해 보라고 요청했다. 이런 상상을 한 참가자는 친구의 거짓말이 윤리에 덜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컸다. 

또 599명의 미국인 참가자에게는 명백한 거짓정보를 담은 문장을 보여주었다. '지난 대선에서 수백만 명이 부정 투표에 참여했다'라거나 '미국 최고 기업군의 CEO는 평균적으로 평범한 미국인에 비해 500배 더 많은 돈을 번다' 등의 내용이었다. 참가자는 이들 문장이 잘못된 정보라고 안내를 받았다. 

이어 참가자에게 '미국 최고 기업군의 CEO는 평균적으로 평범한 미국인에 비해 265배 더 많은 돈을 번다'라는 정확한 문장을 들려주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들 CEO가 보통 사람에 비해 500배 더 많이 버는 일이 생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대답하게 했다. 

이 경우에도 잘못된 진술이 사실이 되는 경우를 상상해 본 참가자는 거짓말에 대해 덜 비윤리적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 진술이 보다 넓은 의미에서 사실이라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사진=미국 씨넷)

■ 믿고 싶은 것은 언제든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

심지어 연구진이 비윤리성 정도를 판단하기 앞서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라 요청해도 참가자들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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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실험 참가자들은 사실이 될 가능성을 상상해 본 사안이 자신의 정치사회적 의견과 일치할 경우 소셜미디어에 이같은 거짓정보를 더 자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짓정보일지라도 자신의 가치관과 맞는다면, '본질적으로는 맞는 이야기'라 합리화하며 소셜미디어에 퍼뜨릴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논문 제1저자 베스 헬가슨은 "이번 연구는 상상력이 정치적 불일치나 거짓정보를 다루는 우리의 의지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며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한 주장과 달리 무엇이 진실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주장은 팩트체크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문제의 사안이 거짓임을 알지만, 결국 진실이 될 것이라 믿는 사람은 답이 없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