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슬지 않는 구리 만든다...나노회로에 금 대신 구리 사용 가능

韓 연구진, 원자 한 층 수준 구리 박막 성장 "산화 원리 세계 최초로 밝혀"

과학입력 :2022/03/17 02:00

녹슬지 않는 구리를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되면 현재 반도체 나노회로 등에 쓰이는 금을 전도도가 높고 가격이 싼 구리로 대체해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대폭 높일 수 있다.

한국인 연구자들이 구리 산화의 원리를 원자 수준에서 규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구리의 산화를 막는 방법도 찾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정세영 부산대 교수·김영민 성균관대 교수·김성곤 미시시피주립대 교수 연구팀이 단원자층 수준의 거칠기를 가진 초평탄 구리박막을 이용, 구리의 산화 작동 원리를 이론과 실험에서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15일 밝혔다. 

이 연구 성과는 학술지 '네이처'에 17일(현지시간) 게재됐다. 

구리산화에 대한 도식적 모델. 원자계단 한층의 초평탄면에서는 산소가 침투하지 못하고 원자계단 두층 이상에서는 산소가 침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료=정세영 부산대 교수)

■ 원자 한 층 수준 구리 박막을 만들다

연구진은 우선 자체 개발한 박막 성장 장치 ASE(atomic sputtering epitaxy)로 원자 한 층 수준의 초평탄 구리박막을 구현했다. 구리의 거친 부분에서부터 산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최대한 표면 상태가 좋은 박막 성장이 우선 과제였다.

그간 초평탄면 구리 박막을 단결정으로 성장하는 기술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박막을 성장하면 다결정에서 서로 다른 결정이 만나는 경계인 '낱알경계'의 결함이나 거친 표면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구리의 산화는 다결정구리에 1조 개 이상 있는 낱알경계와 거친 표면에서 무작위로 발생하기 때문에 제어되지 않는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함을 제거하고 박막을 단결정으로 성장시켰다. 동시에 표면 거칠기를 0.2㎚ 수준으로 제어했다. 거칠기는 박막 표면의 들쑥날쑥한 높이를 말하며, 지금까지는 1.5㎚가 거칠기 제어의 최고 수준이었다.

이렇게 만든 초평탄 구리박막을 1년간 공기 중에 노출된 상태로 고분해능 투과전자현미경 등으로 관측한 결과, 일반적으로 구리 표면에서 관찰되는 자연 산화막은 물론이고 원자 한층 수준의 산화조차 관찰되지 않았다.

■ 구리 산화, 원인 찾으니 막을 수도 있다 

연구진은 산소가 구리 내부로 들어가기 위한 에너지 변화를 계산했다. 그 결과 표면 거칠기가 두 원자 층 이상일 경우 구리 내부로 산소가 쉽게 침투하는 반면, 표면이 완벽하게 평평하거나 단원자층일 때는 산소 침투에 매우 큰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상온에서는 산화가 일어나지 않음을 밝혔다.

표면 거칠기에 따른 산소 침투 에너지의 변화 및 투과전자현미경 표면 분석 (자료=정세영 부산대 교수)

초평탄 박막 표면에 앉은 산소는 산소가 존재할 수 있는 자리의 50%가 차면 더 이상 다른 산소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밀어내 산화를 억제하는 자기 조절 기능이 있음도 밝혔다.

이번 연구는 구리의 산화 원인을 정확히 밝혔을 뿐만 아니라, 나노회로 등에 쓰이는 금을 구리 박막으로 교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원자 한 층 수준의 박막을 성장하는 기술 개발도 주목할만 하다. MBE나 PLD, ALD 등 고가의 반도체 증착 장비를 대체할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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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영 교수는 "이번 연구 성과는 구리 산화의 기원을 원자 수준에서 규명한 세계 최초 사례"라며 "변하지 않는 구리의 제조 가능성을 열었다"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과기정통부 개인기초연구(중견연구) 및 집단연구지원(기초연구실) 사업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