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문득 익숙한 냄새를 맡았을 뿐인데 왠지 그립고 아련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좋았던 추억이 되살아나는 기분에 순간 멍해지기도 한다. 이처럼 냄새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우리를 이동시키는 힘이 있다. 어린 시절의 집으로, 또 먼 해안의 불타는 태양 아래로 이동시켜준다.
왜 냄새는 이 같은 특정 기억(장면)을 떠올리는 역할을 할까.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후각과 위치가 뇌에서 같은 네트워크에서 처리되기 때문으로 확인됐다.
국제학술지 네이처와 테크놀로지네트워크, 기가진 등 외신에 따르면 사람이 냄새를 맡았을 때 향기의 분자는 코의 수용체를 자극하고, 그 자극이 비강(코 등쪽에 있는 코 안의 빈 곳) 위에 있는 후 신경구라는 조직에 전해진다. 그리고 향기 신호가 신경을 통해 후신경구에서 뇌의 후각 피질에 있는 ‘이상 피질’(후각 정보가 투사되는 일차 후각 피질로, 측두엽의 복내측 부위에 위치한 변연 피질의 일부)이라고 불리는 영역에 보내져 뇌 안에서 냄새 감각이 발생한다. 한편 기억을 관장하는 뇌 부위인 해마에는 특정 장소에 반응하는 ‘장소 세포’가 있는데, 사람은 이 장소 세포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다.
이처럼 뇌가 후각 등을 처리하는 개별 절차는 상세히 알려져 있는데, 냄새와 장소가 밀접하게 연결되는 것은 왜일까 하는 의문은 오랫동안 신경학자들의 숙제와 같았다. 이에 포르투갈에 있는 상팔리마우드 센터 신디 푸 박사 연구팀은 “야생 동물은 공간 탐색, 그리고 기억을 위해 냄새를 사용함으로써 음식과 같은 귀중한 자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힌트로, 이들 요소를 처리하고 있는 쥐의 뇌를 연구, 실험했다.
실험에는 사방이 갈라진 십자로가 사용됐다. 십자 모양 미로의 네 끝에는 감귤, 풀, 바나나 식초 등 4종류의 향기가 나오는 장치가 설치됐다. 이 향기가 난 후, 생쥐가 찾아낸 방향에서 보상이 주어지는 방식으로 실험이 이뤄졌다. 예를 들면 시트러스 향이 나면 남쪽에서 물이 나오는데, 쥐가 이 향기를 맡은 후 남쪽으로 가면 물을 먹게 되는 식이다. 쥐는 냄새와 위치의 정확한 연관성을 배우고 기억해야 했다. 이 훈련을 한 결과 생쥐는 약 3주 후 70% 확률로 향을 믿고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연구팀은 십자 미로에서 실험을 하면서 생쥐의 뇌를 모니터링한 결과, 해마에 있는 장소 세포와 같이, 특정 장소에서 반응하는 세포가 후각을 담당하는 이상피질에도 존재하는 것을 찾아냈다. 게다가 실험 중 생쥐의 머릿속에서는 해마와 이상피질의 반응이 동기화되는 것도 확인했다. 즉 기억을 처리하는 영역과 냄새를 처리하는 영역이 연결된 것이 판명된 것이다.
이 결과에 대해 신디 푸 박사는 “우리는 한 신경 세포가 냄새에 반응하며 또 다른 신경 세포가 장소에 반응하며, 또 다른 신경 세포가 냄새와 장소 양쪽에 반응하는 것을 알아냈다”며 “이들 신경 세포는 혼재하고, 아마도 상호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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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후각과 장소를 같은 영역에서 처리하도록 뇌가 진화한 것은 냄새가 장소와 강한 연관이 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했다. 예를 들면 지하철 역시와 레스토랑은 다른 냄새가 난다. 자연에서도 숲과 초원, 여우의 굴과 쥐의 둥지는 다른 냄새가 난다. 이처럼 냄새와 위치를 밀접하게 연결시키는 것이 동물 진화 과정에서 유효했기 때문에 이들이 같은 네트워크로 처리되도록 된 것 아닐까 한다는 것이다.
재커리 메이넨 수석 연구원은 “후각이 발달한 쥐와 달리 인간은 냄새보다 시각적 정보에 의존하는 일이 많은 생물”이라면서 “그러나 기억 속에서 과거에 간 적이 있는 곳을 떠올려 원하는 곳에 도착하는 과정은 매우 많이 닮아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