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아더 왕 이야기 있을까? 문학이 생태학에 묻다

유럽 연구자, 생태학 통계 기법 활용해 소실된 중세 문학 비중 추정

과학입력 :2022/02/18 04:00

과거의 문학이나 역사에 대한 연구는 현재 남아 있는 문헌과 기록을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사라진 문헌이 얼마나 되는지, 남아 있는 기록이 얼마나 대표성이 있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아더 왕이나 바이킹 라그나 로스브록 말고도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가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영국과 네덜란드 문헌 학자들이 생태학 기법을 활용,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사라진 중세 기사도 문학의 비중을 추정했다. 영국의 기사도 이야기가 대부분 소실된데 반해 아일랜드나 아이슬란드의 중세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보존된 것으로 나타났다. 

생태학의 통계적 추정 모델을 문학 연구에 도입, 문화 유산의 손실과 보존에 관한 연구에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다. 이 연구 결과는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되었다.

인기 TV 시리즈 '바이킹'에 등장하는 중세 스칸디나비아 영웅 라그나 로스브록 (자료=IMDB)

연구진은 생태학 분야에서 생태계 내 동물의 개체 수와 종류를 파악하는데 쓰는 통계적 기법을 문헌 연구에 접목했다. 생태학자들이 연구 대상 지역 안에서 관측되는 생물의 종류와 종별 관측 횟수 등을 근거로 관측되지 않은 생물의 종류와 개체 수까지 추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보이지 않는 종 모델(unseen species model)'을 빌어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세 기사도와 영웅의 이야기를 담은 필사본의 90%가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중세 기사도와 영웅 이야기의 32%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공교롭게도 이는 과거 학계에서 다른 방식으로 추정한 보존 비율과 대략 들어맞는다. 

중세 유럽 모험담에 등장하는 시구르트

보존 비율은 나라와 언어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였다. 연구진은 중세 아일랜드 로맨스와 모험담의 81%가 오늘날까지 전해진 반면, 비슷한 장르의 영국 이야기는 38%만 남은 것으로 추산했다. 이야기를 적은 사본의 생존 비율도 두 나라에서 각각 19%와 7%로 큰 차이를 보였다. 

아이슬란드 중세 로맨스와 모험담은 77%가 현대에 전해졌고, 사본은 17%가 살아남은 것으로 추산했다. 

연구진은 이같은 차이를 가져온 원인으로 문화 콘텐츠 생산의 다양성 여부를 꼽았다. 아일랜드나 아이슬란드에서는 이야기별 필사본의 평균 숫자가 다른 문화권에 비해 균등하게 분포해 있었다. 

영국에서는 '아더 왕과 원탁의 기사' 같은 이야기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자국 전래 이야기들 사이의 보존 비율은 양극화가 심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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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왕과 원탁의 기사 (자료=위키피디아)

또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에선 인쇄술 보급 이후에도 필사 문화가 상당 기간 유지됐다는 점도 중세 이야기 보존 비율의 차이를 일으킨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영국은 이 시기 프랑스 노르망 왕조의 지배를 받으며 유럽 대륙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점이 보존 비율을 떨어뜨리는데 일조했다. 

연구진은 과학적 방법론을 문화 유산 연구에 폭넓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연구에 참여한 고대 스칸디나비아어 연구자 카타르지나 카피탄 박사는 "학제간 연구를 통해 지엽적 문헌 연구를 넘어 여러 지역과 전통, 언어 사이의 비교 연구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