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조원짜리 엔비디아 ARM 인수, 왜 불발됐나

[이슈진단+] 반도체 패권 경쟁 속 반발·각국 정부 규제로 불확실성 증폭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22/02/08 16:38    수정: 2022/02/09 10:39

엔비디아가 2020년 9월부터 약 1년 반동안 추진하던 ARM 인수가 결국 무산됐다.

엔비디아와 소프트뱅크 그룹이 8일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양사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각국 규제로 거래를 완수할 수 없는 중대한 제약사항이 발생했기 때문에 인수-양도 계약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엔비디아가 8일 ARM 인수를 중단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사진=엔비디아)

■ 주요 IT 기업들 일제히 반대 의사 표명

ARM은 프로세서 명령어 세트와 아키텍처 등 설계도만 만들어서 주요 기업들에 라이선스 형태로 공급하고 판매 금액 중 일부분을 수수료로 받는 경영 구조를 고수하고 있다.

퀄컴 스냅드래곤, 삼성전자 엑시노스, 미디어텍 디멘전 등 스마트폰·태블릿용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뿐만 아니라 IoT(사물인터넷)용 저전력 칩 등 거의 모든 반도체가 ARM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퀄컴과 삼성전자는 ARM 아키텍처 기반으로 모바일용 AP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ARM)

ARM의 명령어 세트와 아키텍처는 사실상 대체재가 없는 공공재에 가깝다. 대안으로는 오픈소스 기반 명령어 구조인 리스크V(RISC-V) 등이 꼽히지만 전환에는 시간이 걸린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마치면 주요 경쟁사에 IP(지적재산권)를 공급하지 않거나 차별할 수 있다는 반발과 우려가 컸다.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삼성전자, 테슬라, 아마존 등 주요 기업들도 미국 FTC(연방거래위원회)에 반대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국가 안보 차원에서 반대한 영국 정부

현재 전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업체는 대부분 미국 소재 기업이다. 영국에 기반을 둔 반도체 관련 기업 중 존재감을 드러내는 회사는 ARM이 독보적이다.

ARM 창립자 중 한 명인 헤르만 하우저도 엔비디아 ARM 인수 공식화 이전인 2020년 9월 초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영국 기술 주도권에 치명타를 입히고 ARM 자체도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헤르만 하우저는 ”ARM 매각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진=ACP)

이에 따라 영국 정부도 엔비디아의 ARM 인수 시도 초창기부터 이 문제를 '반도체 국가 안보' 차원에서 꾸준히 다뤄왔다.

영국 CMA(경쟁시장청)는 지난 해 8월 말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공정경쟁 문제를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를 드러내며 최장 24주(6개월)간 심층 심사에 들어갈 것임을 예고했다.

■ 미국 FTC 제소가 결정타..."불법적인 수직 결합"

엔비디아는 ARM 인수 의사를 처음 밝혔던 지난 해 9월부터 계속해서 각국 경쟁당국과 이해 관계자를 설득하기 위해 다양한 논리를 펼쳐왔다.

엔비디아는 "ARM의 현재는 물론 앞으로 출시될 모든 제품에 대한 라이선스 관행을 전세계 모든 업계, 모든 고객사에 대해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FTC 본부.

그러나 미국 FTC는 엔비디아의 ARM 인수를 무산시킨 '결정타'를 날렸다. FTC는 엔비디아의 ARM 인수를 '불법적인 수직 결합'이라고 규정하고 아예 인수를 무산시키기 위한 절차로 제소를 선택했다.

FTC는 지난 해 12월 초 보도자료를 통해 "칩 설계도를 제공하는 ARM과 이를 공급받아 칩을 생산하는 엔비디아의 결합은 다음 세대 기술의 경쟁을 가로막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 기업 결합 심사 강화에 불확실성 증폭

엔비디아가 2020년 9월 ARM 인수를 공식화하던 당시 젠슨황 엔비디아 CEO는 "오는 2022년 3월에 인수 절차가 종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영국 CMA의 심층 심사 결과는 빨라도 올해 5월 이후에나 나온다. 또 미국 FTC도 이번 제소의 첫 심리를 올해 8월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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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경쟁시장청이 지난 해 시작한 엔비디아-ARM 인수 절차와 관련 2단계 심층조사 결과는 일러도 올 5월에 나올 예정이었다.

올해 3월에 마무리 될 예정이었던 인수 일정이 크게 지연된 것은 물론 불확실성도 한층 커진 최악의 상황인 것이다.

결국 엔비디아와 소프트뱅크는 반도체 업계의 반발보다는 각국 정부 경쟁당국의 심층 심사를 돌파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이번 ARM 매각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