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근절vs검열" 대항 기술마다 논란

텔레그램·다크웹 등 범죄 은신처 방지책 도입 두고 의견 갈려

컴퓨팅입력 :2022/01/11 10:34    수정: 2022/01/25 23:33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주목을 받으면서, 수사를 지원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기술적 해결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이미지, 영상의 'DNA'로 비유되는 해시값 기반 자동 차단 기술이 대표적이다. 범죄자들이 수사망을 우회하고자 보안이 강력한 메신저 '텔레그램'과 웹사이트 '다크웹'을 사용하는 점을 감안, 수사기관의 기기 데이터 접근 권한을 확대하는 방안도 언급된다.

범죄 특성상 피해가 한 번 발생하면 이를 완전히 복구하기 어렵고, 피해자의 삶 전반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근절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그러나 이를 지원하는 기술에 대해 일종의 검열로서 프라이버시 침해를 유발한다는 반발도 잇따르고 있다.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

■"불법 촬영물인지 검토중입니다"…검열로 볼 수 있나

지난달 10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n번방 방지법'은 해시값 기반 성 착취물 유포 차단을 ▲웹하드 사업자 ▲연 매출 10억원 이상 사업자 ▲일 평균 이용자 10만명 이상 인터넷 사업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관련 시정요구를 2년 내 받은 사업자 중 방통위 지정 부가통신사업자 등이 의무 적용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네이버, 카카오 등 포털을 비롯한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이 법 적용을 받게 됐다. 다만 일대일 대화방 같은 사적 공간이 아닌, 공개된 인터넷 공간에 성착취물 차단 기술이 적용된다.

법이 본격 시행됨에 따라, 일부 이용자가 글 작성 과정에서 차단되는 일을 겪자 검열이라는 비판 목소리를 냈다. 이를 두고 여야 대선 후보 간 논쟁도 불거지는 등, n번방 방지법이 논란의 중심에 서는 상황이 초래됐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13일 n번방 방지법에 대해 "불법 촬영물의 재유통을 막기 위해 온라인 상에 공개된 서비스에 적용되며, 통신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사적 대화방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방심위가 불법촬영물로 심의, 의결한 영상물이 공개게시판 등에 게재되지 않도록 인터넷사업자가 디지털특징정보(해시값)만을 추출해 단순 비교하는 방식으로,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검열 이슈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n번방 방지법 준수를 지원하는 기술 업체는 보다 구체적으로 기술 방식을 설명, 검열이라는 비판은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영상물을 업로드하면 '불법촬영물에 해당하는지 검토중'이라는 안내 메시지가 나오는데, 검토라는 표현이 검열이라는 오해를 안겨준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는 이용자가 업로드한 영상물과, 이미 불법촬영물로 판명난 영상물 해시값을 단순 대조해 일치 여부만 추출해내는 과정을 거치는 등 사람이 모니터링을 하는 과정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튜브에 영상을 등록하면, 영상에 삽입된 음원의 저작권 침해 여부를 검토해 표시하듯이, 불법촬영물 필터링도 당연히 필요한 조치라고 간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n번방 방지법에 의해 게시물 업로드의 자유가 제한됐다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지만, 반대로 피해자 입장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이 제한 없이 유통되는 게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일 수 있냐고 토로할 수 있다"며 "해시값 기반 성범죄물 유포 차단은 무고한 피해자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 조치"라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 사전 조치 움직임에는 국내외 반발 거세

현행 디지털 성범죄 수사의 한계점들이 제기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사 권한을 보다 강화하자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왔다.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가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 수행기관으로서 지난 4일 발표한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예방과 인권적 구제 방안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디지털 성 착취 범죄에 대한 온라인 수색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보고서는 국가기관이 원격 통신 감시 소프트웨어 등 기술적 수단을 사용해 이용자의 정보기술시스템에 비밀리에 접근해 이용자 시스템 이용 내역과 저장 내용을 열람 또는 수집하는 행위를 온라인 수색으로 칭했다. 아동·청소년 성 착취 범죄의 경우 예방과 수사를 위해 디지털 기술의 역할이 커진 만큼, 효율적인 대처를 위해 범죄 예방 측면의 온라인 수색이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다만 국가 영장주의나 절차적 기본권 침해 우려가 크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고자 하는 사회적 논의를 전제로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이 유사한 방식으로 온라인 수색을 도입했다고도 덧붙였다.

사진 = 이미지투데이

디지털 성범죄 수사 목적에서 사용자 소유 데이터를 검색하자는 주장은 해외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애플은 AI를 활용해 사용자가 아이클라우드에 등록한 이미지를 아동 성범죄물 해시 DB와 비교 분석하고, 이미지가 성범죄물로 분류될 경우 이를 당국에 보고하는 정책을 iOS 15, 아이패드OS 15, 워치OS 8, 맥OS 몬터레이에 도입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용자 데이터를 무단으로 열람하는 것이 아님을 설득하기 위해 애플은 기술 요약 문서를 공개하고, 해시 DB와 일치하는 이미지에 한해서만 애플 서버가 데이터를 복호화할 수 있도록 기술을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신고 대상으로 분류된 이미지는 사전에 수기로 검토하고, 이용자의 이의 제기 절차도 마련할 예정임을 알렸다.

아동 성범죄물 탐지 시스템 기술 요약 문서

그럼에도 프라이버시 침해를 우려하는 반발이 거셌다. 해당 정책이 발표됐을 당시 매튜 그린 존스홉킨스대 부교수는 권위적인 정부기관의 경우 검열에 악용할 소지가 있으며, 성범죄물 여부를 가려내는 해시 DB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없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이런 식의 접근이 종단 간 암호화(E2E) 메시지 시스템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애플은 이 정책 도입 시기를 지난해 말로 예고했으나, 이런 비판이 잇따르자 도입 시기를 몇 달 가량 미루고, 추가 의견 수렴을 거쳐 정책을 개선하기로 했다. 지난달 애플 고객지원 페이지에서 해당 정책 관련 언급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되자 애플이 도입을 포기했다는 분석도 제기됐으나, 애플은 "계획에 변경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런 사전 대응 성격의 조치는 기대할 수 있는 사회적 이익에 비해, 악용 소지가 상당해 정책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왔다.

개인정보전문가협회장을 맡고 있는 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는 "합법적 해킹을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 도입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수사 대상 외 데이터도 살펴보게 되기 때문에, 사용자의 내밀한 데이터도 수사기관에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라며 "안타까운 일이지만 범죄를 사전 예방한다는 건 쉽지 않고, 이를 위해 사전 영장 없는 해킹을 허용하는 것은 남용 위험성이 너무 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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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 온라인 수색이 도입될 경우, 다른 범죄 행위에 대해서도 심각성을 근거로 들어 확대 도입되기 쉽다"며 "위험한 발상"이라고 언급했다.

애플의 아이클라우드 이미지 스캔 정책에 대해서도 "누구나 접근 가능한 인터넷 공간이라면 강력한 디지털 성범죄 유포 방지 정책을 적용할 여지가 있지만, 개인적 공간에 등록된 파일에 대해서도 해시 조회를 하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