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ARM 인수 불발되나

FTC 법원 제소..."불법적 수직결합, 경쟁 저해" 내년 8월 첫 심리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21/12/06 16:04    수정: 2021/12/06 16:38

엔비디아가 지난 해 9월부터 시작한 영국 반도체 기업 ARM 인수 작업이 암초를 만났다.

미국 FTC가 지난 2일(현지시간) 엔비디아의 인수 시도를 '불법적인 수직 결합'으로 규정하고 이를 막기 위해 법원 제소에 나섰다.

FTC의 제소에 따른 심리는 내년 8월 초에 시작될 예정이다. 이미 영국 경쟁시장청이 지난 달 중순부터 엔비디아 ARM 인수에 대한 심층 조사를 결정하면서 인수 작업 타임라인은 내년 3월에서 5월 이후로 지연된 상황이다.

엔비디아의 ARM 인수 시도가 미국 FTC의 제소를 만나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사진=엔비디아)

■ 주요 기업들, 2월부터 일제히 반대 의사 표명

ARM 아키텍처를 이용해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나 통신용 칩을 만들던 주요 기업들은 올 초부터 엔비디아의 ARM 인수를 반대해 왔다.

스냅드래곤 8 1세대 모바일 플랫폼. (사진=퀄컴)

최근 공개한 스냅드래곤 8 1세대 AP에 ARM 코어텍스 X2 아키텍처를 적용한 퀄컴과 픽셀6에 자체 개발한 텐서(Tensor) 칩을 탑재한 구글을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아마존, 자체 AP '엑시노스'를 개발하는 삼성전자 등이 대표적이다.

엔비디아는 지난 달 17일(미국 현지시간) 3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FTC가 ARM 인수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으며 이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협의중"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 '인수' 아예 없던 일로 만들겠다는 FTC

그러나 FTC는 엔비디아가 제시한 대안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국 CMA(경쟁시장청)처럼 단순히 조사 기간만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인수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 제소를 선택한 것이다.

미국 FTC 본부.

FTC는 지난 2일(미국 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이렇게 밝히고 "칩 설계도를 제공하는 ARM과 이를 공급받아 칩을 생산하는 엔비디아의 결합은 다음 세대 기술의 경쟁을 가로막을 것"이라고 우려를 드러냈다.

FTC가 특히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분야는 △차선 유지, 고속도로 진출입 등을 돕는 고도 주행 보조 시스템 △데이터센터 서버 네트워크에 탑재되는 DPU(데이터 처리 장치) △클라우드 컴퓨팅용 ARM 기반 CPU 등 3종이다.

미국 FTC는 엔비디아 ARM 인수로 자율주행 등 고도 주행 보조 시스템의 경쟁력이 저하될 것으로 우려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이 중 고도 주행 보조 시스템과 클라우드 컴퓨팅용 ARM CPU는 지난 8월 영국 CMA가 경쟁력 저하를 우려했던 분야와 일치한다. FTC가 설명한 제소 이유도 큰 차이가 없다.

■ FTC "경쟁력 저하·혁신 저해 가능성 크다"

FTC는 "엔비디아는 이번 ARM 인수를 통해 경쟁사의 민감한 정보에 접근하게 할 수 있고 ARM은 엔비디아의 이해를 침해할 수 있는 혁신 추구에 나서지 않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ARM 아키텍처를 쓰는 회사들은 민감한 정보를 ARM과 정기적으로 공유한다. 이렇게 민감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ARM이 중립적인 협력사라 가능한 일이며 인수는 ARM과 생태계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 Arm 테크콘 행사에 참석한 소프트뱅크 손 회장. (사진=Arm)

이번 제소는 엔비디아 뿐만 아니라 ARM 모기업인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도 대상에 올렸다. FTC는 "제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투표는 찬성 4, 반대 0으로 만장일치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 ARM 인수 불확실성↑...무산시 위약금만 12억 달러

엔비디아는 ARM 인수 의사를 처음 밝혔던 지난 해 9월부터 계속해서 각국 경쟁당국과 이해 관계자를 설득하기 위해 다양한 논리를 펼쳐왔다. "ARM의 현재는 물론 앞으로 출시될 모든 제품에 대한 라이선스 관행을 전세계 모든 업계, 모든 고객사에 대해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 CMA가 심층조사에 착수한데다 미국 FTC가 제소를 결정하며 400억 달러(약 47조 5천억원) 규모 M&A는 중대 기로를 맞게 됐다. 이해 관계가 있는 기업과 각국 정부가 모두 이번 합병을 반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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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무산될 경우 엔비디아가 물어야 하는 위약금만 12억5천만 달러에 이른다. (사진=Arm)

영국 CMA가 이르면 내년 5월에 내놓을 심층조사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와도 미국 FTC나 EU(유럽연합)의 심사 결과가 뒤집힐 수 있다. 또 FTC는 이번 제소의 첫 심리를 내년 8월부터 시작할 예정이며 내년 3월에 인수가 끝날 것이라는 엔비디아의 예상도 더 크게 빗나갔다.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무산될 경우 타격도 만만찮다. 인수 계약이 불발될 경우 엔비디아가 ARM에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12억 5천만 달러(약 1조 4천790억원)나 된다. 이는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위해 투자해야하는 금액의 30%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