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부는 조립PC 시장..."그래픽카드가 문제"

인텔 12세대 칩은 초기비용 부담, AMD 라이젠도 가격 상승

홈&모바일입력 :2021/11/08 16:11    수정: 2021/11/08 16:53

국내 조립PC 업계가 지난 10월부터 극심한 수요 절벽을 마주했다. 중소·중견업체의 지난 10월 조립PC 판매 실적은 지난 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대형 업체 역시 수요 감소에 고민하고 있다.

조립PC 수요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난 8월 말부터 다시 가격이 뛴 그래픽카드가 꼽힌다. 디아블로2: 레저렉션과 배틀필드 2042 등 하반기 기대작이 연이어 출시되고 있지만 부쩍 오른 그래픽카드 가격이 전체 PC 수요를 억누르고 있다.

대/중/소 조립PC가 다수 입주한 용산전자상가 전경. (사진=지디넷코리아)

■ 9월 말부터 수요 감소..."하루에 한 대도 못 판다"

8일 용산전자상가에 입주한 대형·중소규모 조립PC 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조립PC 출고량은 지난 9월 말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10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급감했다.

한 중견업체 관계자는 "지난 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하루에 한 대를 판매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마저도 기존 고객사를 많이 확보하고 있어서 가능한 것이며 가격비교 사이트에만 의존하고 있는 업체들은 더 심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립PC의 핵심 부품으로 꼽히는 PC케이스 출하량도 크게 줄었다. 점유율 기준 국내 3위 안에 드는 한 대형 업체 관계자는 "고정적으로 발생하는 사무용 PC 교체 수요 때문에 2-3만원대 케이스만 팔리며 이마저도 많이 줄어 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 엔비디아 채굴 제한 조치 무력화로 그래픽카드 가격 상승

조립PC 수요를 크게 떨어뜨린 가장 큰 원인으로 엔비디아 지포스 RTX 30 시리즈 그래픽카드 가격 상승이 꼽힌다.

엔비디아는 게임용 고성능 그래픽카드가 암호화폐 채굴용으로 쓰이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올 초부터 여러가지 시도를 해 왔다. 드라이버와 펌웨어 차원에서 이더리움 채굴 효율을 제한하는 LHR(로우해시레이트) 그래픽카드를 투입하기도 했다.

엔비디아는 암호화폐 채굴 성능을 제한한 새 그래픽카드를 공급했지만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사진=엔비디아)

이런 엔비디아의 조치가 일부 효과를 발휘하기는 했지만 지난 8월 새로운 채굴 프로그램을 통해 무력화됐다. 또 LHR 그래픽카드에서도 85% 이상의 효율로 채굴을 진행하는 레이븐코인 등 새로운 암호화폐가 등장하며 그래픽카드 가격은 수직상승했다.

8일 가격비교사이트 다나와에 따르면 지포스 RTX 3080 탑재 그래픽카드 가격은 8월 대비 40만원 이상 오른 180만원대 후반에, 지포스 RTX 3070 Ti 그래픽카드 가격은 70만원 이상 오른 190만원대 후반에 형성되었다.

■ 인텔 12세대 칩은 부대 비용 부담 ↑

하반기 기대주로 꼽혔던 인텔 12세대 코어 프로세서도 수요 창출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2세대 코어 프로세서는 LGA 1700 소켓과 Z690 칩셋을 탑재한 새 메인보드가 필요하다. 또 DDR4 메모리를 쓰는 메인보드는 아직 국내 시장에 공급되지 않은 상황이다. Z690 메인보드와 DDR5 메모리를 장만하는데 적게는 60만원에서 많게는 9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

현재 12세대 코어 프로세서 시스템 구축에는 고가 Z690 메인보드와 DDR5 메모리가 필요하다. (사진=지디넷코리아)

AMD 라이젠 프로세서 중 일부 제품도 지난 10월 말부터 가격이 4-5만원 가량 올랐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 업체 관계자는 "소매상이 가격을 올린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국내 유통사가 마케팅 예산을 보조금처럼 활용해 가격을 내리고 있었는데 그 예산이 소진되어 정상 가격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인텔 "아크 그래픽칩셋에 암호화폐 제한 조치 없다"

인텔은 내년 1분기부터 데스크톱용 아크(ARC) 브랜드 그래픽카드를 시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는 엔비디아와 AMD 양강 구도로 굳어진 그래픽카드 시장에 제3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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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은 오는 2022년 1분기 출시할 데스크톱PC용 그래픽카드에 채굴 제한 기능을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인텔)

그러나 인텔은 지난 10월 초 "새 그래픽칩셋에 암호화폐 채굴 제한을 위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인텔 아크 칩 탑재 그래픽카드도 실수요자인 일반 소비자 대신 채굴장으로 흘러갈 소지가 있다.

취재에 응한 각 조립PC 업체 관게자들은 "암호화폐 채굴 수요가 꺾이거나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한 현재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며 지금은 그저 버티는 것 이외에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