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보이스피싱' 전화번호는 어디서 올까

통신 사업자 과실로 대다수 발생…대면 편취 범죄는 번호 차단 근거 없어

컴퓨팅입력 :2021/11/07 12:01    수정: 2021/11/08 08:33

보이스피싱, 스미싱, 스팸 등 범죄에 쓰이는 전화번호는 어떻게 계속 생겨나는 것일까? 이런 범죄 행위의 사전 작업으로, 실제 발신 전화번호와 다른 전화번호를 나타내게 하는 '발신번호 변작'이 이뤄지곤 한다. 공공, 금융기관이나 타인의 연락처인 것처럼 위장해 피해자를 속이기 위해서다.

발신번호 변작은 법적으로 허용된 경우 외에는 기본적으로 불법이다. 그러나 통신사업자들이 발신번호 변경 신청 민원을 부실하게 처리하면서, 이런 틈을 노려 변작된 전화번호를 획득하는 경우가 상당한 것으로 분석됐다.

김종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전화사기예방팀장은 발신번호 거짓표시 방지 검사 업무에 대한 KISA의 지원 내용을 소개하면서 지난 5일 이같이 밝혔다.

김종표 KISA 전화사기예방팀장

발신번호 변작이 허용되는 상황은 ▲공공 분야 대국민 서비스를 위해 사용하는 경우(112, 119 등) ▲국외 통신사에서 인입되는 전화에 대해 국제전화 식별 번호를 붙이는 경우(001, 002, 005 등) ▲대표번호 서비스(15**, 16** 등), 착신과금 서비스(080)에 연결된 착신 전화에서 발신번호를 변경하는 경우 ▲동일 명의자가 개통한 유선(010 번호는 불가)로 변경하는 경우 등이 있다.

범죄자들이 주로 노리는 것은 마지막 사례다. 김종표 KISA 팀장은 중국 등 해외에 있는 보이스피싱, 스팸 등 범죄 조직이 070 인터넷 전화 통신 회선을 발급받은 뒤, 이에 대해 발신번호 변경을 신청해 사기 행각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 '1588', '02', '010' 등으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로 시도되는 보이스피싱이나 스팸 문자들이 이에 해당된다.

발신번호 변작 신고 접수를 받는 KISA는 해당 업무 주체인 중앙전파관리소와 함께 신고 내용이 확인된 사업자 및 이전에 지적을 받았던 사업자 등을 검사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자 중 발신번호 변작이 가능한 전화 및 문자 사업자 200곳이 그 대상이다.

김 팀장은 이런 업무를 수행하며 확인한 발신번호 불법 변작 과정을 전화와 문자로 나눠 설명했다.

전화는 ▲기간통신사업자가 발신번화 변경 신청자에 대해 변경하고자 하는 전화번호 명의자와의 신원 일치 여부를 확인하지 않거나 ▲자사 명의 전화번호를 제공하는 경우 ▲발신번호 변경 신청이 없었음에도 변경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등이 발견됐다.

문자는 ▲문자중계사업자가 사전 등록 과정을 거치지 않은 발신번호를 입력할 수 있게 해둔 경우 ▲회원가입 시 이용자 본인확인을 하지 않거나, 이용자 명의와 전화번호 명의가 다름에도 회원가입을 승인한 경우 ▲발신번호 사전 등록 신청 시 계정 명의자와 해당 전화번호 명의자가 다름에도 허용하는 경우 등이 적발됐다.

그 외  전기통신사업자가 외국 사업자로부터 발신될 때 국제전화식별번호를 표시하지 않는 경우, 전기통신사업자가 변작 의심 신고를 받은 전화번호 회선을 중지하지 않는 경우는 전화·문자 모두에서 나타났다.

통신사업자가 이런 발신번호 불법 변작에 일조했거나 방치 또는 정부 제재를 발행할 경우 전기통신사업법 상 제재를 받게 된다. 3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 3천만원 이하 과태료 등이 규정돼 있다.

그럼에도 발신번호 불법 변작은 늘고 있다. KISA에 따르면 연간 발신번호 변작 신고 접수는 약 4~5만건이며, 점진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김 팀장은 "사업자들과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대책을 준비 중"이라며 "문제가 심각한 사업자에 대해서는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하고 있으며,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사업자 폐업까지도 이뤄지고 있다"고 첨언했다.

발신번호 변작을 악용하는 범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변작 신고된 전화번호에 대한 즉각적인 차단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행법이 범죄의 변화상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설명이 나왔다.

김 팀장은 "보이스피싱은 최근 계좌이체 방식이 아니라, 피해자를 직접 만나 현금을 갈취하는 대면 편취 수법이 악용되고 있는데, 이 경우 쓰인 전화번호 이용을 중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또 피싱에 악용됐지만, 실제 피해까지 이어지지 않은 경우, 스미싱의 경우에도 이용 중지 근거가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에 KISA는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 개정 대신 통신사 이용약관에 발신번호 변작 회선에 대한 이용 차단 조항을 넣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청-KISA-통신사를 거쳐 번호 이용을 중지하는 데 2~5일이 걸렸다면, 약관 개정 후 경찰청이 통신사에게 바로 요청을 넣어 1일 내 번호 이용이 중지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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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통 3사 및 70여개 알뜰폰 사업자와 8개 기간통신사업자가 이런 약관 개정을 완료했다. KISA는 연내 500여개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해서도 약관 개정을 완료하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김 팀장은 "이런 대응은 사업자와의 협의를 거쳐야 하고, 무조건 대응을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임시 조치 성격을 띤다"며 법 개정 작업도 여전히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