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억 한전 ERP 사업…'국산 SW 배제' 뒤집힐까

'디지털 뉴딜' 정책 기조에 사업자 교체 여부 관심

컴퓨팅입력 :2021/08/23 10:44    수정: 2021/08/23 16:04

남혁우, 김윤희 기자

올 하반기 약 3천억원 규모인 한국전력공사의 차세대 전사적자원관리(ERP) 구축 사업 수주전이 치러질 전망이다. 그간 공공 시장에서 부진한 성적을 냈던 토종 ERP가 해당 사업을 수주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공공 시장은 일반적으로 국내 SW 업체가 제품 성능을 일차적으로 검증받고, 확보한 레퍼런스를 사업 확장의 발판으로 삼는 성격이 짙다. 산업 진흥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국내 업체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ERP의 경우 공공 시장에서 이런 기능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중요성이 큰 SW라는 이유로 산업 진흥보다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시됐다. 때문에 국내 제품보다는 오랜 기간 광범위한 분야에서 쓰여온 외산 ERP를 선택하는 경우가 압도적이었다.

그간의 분위기와 달리 이번 사업에서는 국내 업체의 ERP가 채택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작년 발표한 국가발전전략 '디지털 뉴딜'을 비롯해 SW 산업 진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데 따른 관측이다. 동시에 최근 일부 공공기관이 국내 ERP를 채택한 사례들이 나타나면서, 국내 ERP가 공공기관으로부터 대형 사업도 수주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출처=이미지투데이

23일 SW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차세대 ERP 구축 사업을 통해 지난 2006년 도입된 기존 ERP를 클라우드로 옮기게 된다. 한전MCS, 한전FMS, 한전CSC 등 신설 자회사 시스템도 클라우드로 통합한 서비스로 구축될 예정이다.

기존 한전 ERP를 구축한 SAP는 차세대 ERP 사업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한전이 라이선스 감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지난 2016년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최근 이 소송을 취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세대 ERP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앞서 법적 분쟁 구도를 해소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법적 분쟁까지 갔음에도 SAP가 한전의 차세대 ERP 사업을 수주할 가능성은 적지 않게 점쳐진다. 그간 국내 ERP 시장에서 글로벌 1위 사업자인 SAP 선호 현상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IDC의 국내 ERP애플리케이션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SAP는 2019년 국내 ERP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31.56%를 기록, 1위 사업자로 분석됐다. 이런 현상은 공공 시장에서도 이어져 국내 ERP 사업자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최근 1년간 이런 분위기에 변화가 감지됐다. 한전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공기업인 동서발전이 더존비즈온 ERP를 채택한 사례가 나온 것이다. 매출 1천억원 이상 공기업 35곳 중에서는 첫 국산 ERP 도입 사례다. 동서발전은 이같이 결정한 이유로 비용 절감 및 업무 효율 확보 측면에서 국내 ERP를 채택하는 것이 이점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동서발전 본사 사옥 전경. 사진=한국동서발전

더존비즈온은 지난 6월 한국가스기술공사에도 차세대 ERP를 공급하기로 했다. 사업 규모는 총 80억원이다. 외산 ERP와의 수주 경쟁 끝에 더 높은 평가를 받아 사업을 수주했다.

이런 사례들이 등장한 배경에는 정부가 디지털 뉴딜 등 주도적으로 SW 산업을 진흥하기 위한 대형 정책 사업들을 실시하고 있는 점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디지털 뉴딜을 통해 비대면 산업을 육성한다는 목표 하에 오는 2025년까지 약 58조 2천억원이 투입할 전망이다. 정부가 국내 SW 산업 성장에 역점을 두고 있는 상황인만큼 공공기관도 이에 발맞춰 국산 SW 소외 현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산·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더존비즈온 관계자는 "최근에는 글로벌 ERP 벤더의 일방적인 라이선스 정책이나 과도한 유지보수 비용 과금으로 많은 공공기관이 '탈 외산 ERP'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이런 시장의 분위기와 맞물려 자사 ERP가 외산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점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공에서의 대형 사업 수주는 국내 SW 업체의 경쟁력 강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공공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민간, 해외 시장 대형 사업에 진출할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된다는 것.

ERP와 마찬가지로 외산 기업인 오라클이 국내 시장에서 독주 중인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부분에서 이런 사례가 나왔다. 지난달 100억원 규모 차세대 지방세입정보시스템 DBMS 사업을 국내 기업인 티맥스가 수주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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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회사는 국내 DBMS도 외산 못지않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이며, 더불어 앞으로 공공 분야의 국산 DMBS 확대에 대한 기대도 높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티맥스 관계자는 “차세대 지방세입정보시스템 DBMS 수주를 통해 다음 사업으로 확대할 수 있는 큰 레퍼런스를 확보하게 됐다”라며 “이번 사업을 토대로 케이스스터디를 진행해 다른 대형 사업에도 드라이브하려 한다”라고 말했다.